Record Review:

  • 김종서, [김종서 7집], 한영애, [한영애 5집]

최근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한영애의 <따라가고 싶어>와 김종서의 <실연>은 우연하게도 동일한 리듬을 갖고 있다. 자메이카에서 유래한 레게와 스카가 그것인데, 두 리듬은 템포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 패턴은 같다(스카가 레게보다 템포가 빠르다). '뿜빠 뿜빠'거리는 레게(reggae)와 스카(ska) 리듬 위에 두 가수의 시원하고 자유스러운 가창이 전개되어 계절 감각과도 잘 어우러진다.

한영애와 김종서는 단지 '가수'가 아니라 '록 보컬리스트'다. 또한 '록 공동체'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 가요팬까지도 아우르는 대중성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두 뮤지션은 연배가 좀 다르고 활동 방식도 다르다. 단적인 예로 김종서의 신보는 '벌써' 7집(비정규 음반을 포함하면 8집)이고, 한영애의 신보는 '아직' 5집밖에 안된다. 이런 차이는 음반에 실린 다른 곡들의 특징이나 앨범의 전체적 컨셉트에서도 드러난다. 이제 앨범을 들어 보자.

두 앨범 모두 그간의 활동을 '중간결산'한다는 느낌을 주지만 그 방식은 다르다. 김종서는 이제까지 추구해 왔던 것을 완성하려고 하고, 변신과 탈피를 추구할 때도 '연속형'으로 접근한다. 한 예로 <하나>는 <희망가>의 진화형같고, <3 8 6>은 <타락천사>의 진화형같다. 그는 작곡 스타일을 다듬고, 편곡을 세련되게 하고, 사운드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주력한다. 외국의 트렌드를 수용할 때도 큰 변형은 없다. <Loving U>와 <나는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외국 뮤지션에게 '헌정'한 곡처럼 들린다(나는 앞의 곡을 들으면서 비틀스(The Beatles)를, 뒤의 곡을 들으면서 비스티 보이스(Beastie Boys)를 연상했다). 전혀 새로운 시도인 스카풍의 타이틀곡 <실연>이나 라틴 리듬을 도입한 <푸른 밤의 꿈>도 '김종서의 또하나의 노래'처럼 들린다.

반면 한영애의 중간 결산은 '단절형'에 가깝다. 앨범의 처음, 중간, 마지막에 포진한 <난.다(非常口)>, <문>, <감사의 마음>은 박자를 잘게 쪼개어 프로그래밍한 테크노 음향과 두터운 기타 사운드가 어우러져 있다. 첨단의 트렌드를 수용하고 있지만 변형이 많고, 여기에 그의 목소리가 얹히면 색다른 하이브리드(hybrid)가 된다. '한영애의 노래'가 아니라 새로운 무엇을 듣는 듯하다. 정도는 덜하지만 이런 점은 오래된 트로트곡인 <봄날은 간다>나 그가 경력을 시작한 포크송 <섬아이>, <꽃신 속의 바다> 등의 '다시부르기'에도 적용된다. 익숙한 곡조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그 노래'처럼 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미국인에게 들려준다면 한영애의 음반은 '한국적(그들에게는 이국적)'으로 들리겠지만, 김종서의 음반은 '미국적으로(그들에게는 자국 음악처럼)' 들릴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김종서의 음반이 더 많이 팔릴 듯하다(나도 더 많이 들을 지 모른다). 물론 한영애의 음반이 더 '오래' 팔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그 이유에 대해 생각 중이다. 음악의 대중성과 영향력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해서. 하지만 이런 자의적 비교에도 불구하고, 두 음반이 1999년 여름의 수작인 것만은 틀림없다. 19990715

* <주간조선>에 게재됨 

앞화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