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Review:

  • 이적, 《Dead End》
       

이적은 특이한 존재다. 10대 청소년용 잡지에 핀업 사진과 가십 기사가 실리는가 하면 주류 저널리즘에서 진지한 평론가들에게 대체로 호평을 받는다. TV화면에서도 <인기가요 50>과 <수요예술무대>와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모두 어울려 보인다. 관행적 표현을 따르면 대중성과 예술성을 고루 갖춘 뮤지션이고, '스타'이자 '아티스트'다.

그런데 음악 애호가들 중에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무조건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애증이 엇갈린다고 말한다. 초점은 그의 음악적 재능이 아니라 재능을 활용하는 방법에 맞춰져 있다. 그러니까 패닉의 두 장의 파격적 앨범 이후의 작업들, 그러니까 한국형 뽕발라드의 업그레이더 김동률과의 프로젝트 음반 카니발 그리고 작년에 나온 패닉의 3집이 조금 논란을 일으켰다. 얼바의 원로이자 2인자(히히)인 성기완 옹이 카니발에 대해 <데일리 센터>지에 쓴 글로 나우누리 모 동호회와 심히 불편한 관계에 처하기도 했던 일이 새삼스럽다.

불만자들의 주장의 요지는 탁월한 재능을 '보통보다 조금 좋은 가요'를 만들어내는데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뭐 그가 낭비했는지 알뜰하게 저축했는지는 이번 솔로 음반을 들어보면 실마리가 잡힐 듯도 하다. 처음 들었을 때 얼핏 드는 느낌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부연하면 어쿠스틱한 음악과 일렉트로닉한 음악, 복고적 스타일과 첨단적 스타일, 발랄한 감성과 비판적 시각이 뒤섞여 있다.

라디오 방송에 친숙할 만한 곡은 소울풍의 발라드 <Rain>(이적은 발라드에 가장 강한 듯하다)이나 Beatlesque pop(특히 '랄랄랄라'하는 코러스가 그렇다) <해피 엔딩>이고, 그 외에도 뮤지컬과 하드록이 뒤섞인 듯한 <적>, 춤추기 좋은 훵키한 그루브가 있는 <Game Over>, 포크 록 스타일의 <지구 위에서> 등도 대중성의 경계 내부에 안착하고 있다. 이 중에서 <지구 위에서>는 3집의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제목 맞나 모르겠다)와 더불어 Me and my wife의 카 스테레오 애청곡이니 이적은 어덜트 컨템포러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뛰어!>, <죽은 새들 날다>, <회의> 등은 이와는 좀 다르다. 첨단의 일렉트로닉 음향이전면에 부각되기 때문이다. <뛰어!>는 횃 보이 슬림 식의 '빅 비트(big beat)'를, <죽은 새들 날다>는 런던 클럽에 가면 널려 있을 듯한 는 '드럼&베이스'를, <회의>는 너무나 유명하여 이름을 말하기도 힘든 '트립합(trip-hop)'이라는 리듬이 깔리고 있다. 반면 곡의 구조는 친숙하고 고전적인데, 그렇다고 해서 전자 음향을 '가요 반주'로 사용하는 보통의 가요와는 또 다르다. 차갑고 기계적인 전자 음향이 비교적 친숙한 가요 형식과 만날 때는 탄탄한 매개항들이 있다. 때로는 록 기타 사운드가, 때로는 현악기의 오케스트라음이, 때로는 여러 음향 효과들이 이런 역할을 수행한다. 소닉 아키텍춰의 재능이 어느 정도 보이는 부분이다.

아마도 이적에 대한 애증과 논란은 그가 이런 시도에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공'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듯하다. 이런 시도가 딜레탕트적이고(테크노/일렉트로니카 딜레탕티즘은 요즘 한국 대중음악계를 특징짓는 유행병인 듯하다. 여기에는 어떤 책도 포함되고 쩝. 물론 딜레탕티즘이 아닌 프로페셔널리즘도 꽤 있고 둘 사이의 구분도 모호하지만), 기껏해야 또하나의 가요의 변종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마디 할 사람이 꽤 있을 듯하다. 또한 일관된 스타일에 천착하지 않고 '이것저것' 손대본다는 핀잔도 있을 듯하다(앞서 봤듯 그는 최근 유행하는 테크노 음악의 세 가지 조류를 한 음반에 '모두' 수용했다). 이런 비판들은 '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다양한 영향력을 자기 스타일로 소화했다'는 찬사와 하나를 이룰 것이다. 즉, 이건 두 개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의' 평가의 양면이다.

이에 대한 그의 입장은 "하루에도 우린 몇번씩 철천지 원수를 만들지"(<적>)라는 자기성찰인 듯하다. 그는 분명 흥미로운 인물이다. 풍성한 이야기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은 좋은 대중문화인의 자격이자 역할이다. 이런 일반적 이유 외에도 그가 곧 군에 입대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허물이 있다고 해도 눈감아줄 만하다. 물론 만의 하나 그가 '박진영 식'으로 일을 처리한다면 평가는 달라질 수도 있다. 19990805

* <주간조선>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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