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Review:

  • 크랑잉 너트, [서커스 매직 유랑단] 

인디 음악이라는 게 있다. '그게 뭔데?'라고 물을 독자들이 태반이겠지만 나름대로 그 동네 있는 사람들은 중요성을 부여하는 음악이다. 그 동네는 대략 '홍대앞'이라고 알려져 있고, 인디 밴드란 인근의 라이브 클럽에서 연주하는 밴드들을 말한다.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진 밴드가 있을까? 자우림이나 델리 스파이스가 이곳 출신이라는 점은 사실이지만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인디 밴드가 아니다. 그러면 누구? 일반인이라도 모 제과회사의 아이스크림 CF에 등장하는 "말 달리자"라는 이상한 고함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고함의 주인공은 크라잉 너트라는 4인조 밴드다.

[드럭]이라는 라이브 클럽(이자 인디 레이블)의 간판인 크라잉 너트는 그곳에서는 나름대로 '스타'고 혹자는 '인디계의 에쵸티'라고 부르기도 한다. 멤버들은 모두 '단신'이고, 용모는 보기에 따라 괴상할 수도 있고 귀여울 수도 있다. 음악은 한마디로 '펑크'다. '한국 최초의 인디 음반'이라고 불리는 [아워 네이션 vol.1](1996)과 정규 1집(1997)에서 이들은 막나가는 '달리자 펑크'를 선보였다. 기타는 단순한 코드웍(chordwork)으로 징징거리고, 드럼은 쿵딱쿵딱거리면서 쎄려대고, 보컬은 의도적으로 '노래 못부르기'를 추구했다.

이번 음반에서도 이런 기조는 유지된다. 특이한 것은 스카, 레게, 폴카, 뽕짝 등 '싸구려'스럽고 '민속적'인 느낌을 주는 리듬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트럼펫, 아코디언, 피아노같이 펑크와는 이질적인 악기도 종종 등장한다. 앨범 제목 자체가 [써커스 매직 유랑단]이고, 자기들은 "써커스 유랑단의 떠돌이 신사"라고 말한다. 지난번 대형 공연장에서 성공리에 가진 단독공연에서 본 이들의 모습은 곡마단이 공연을 할 때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난쟁이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했다. 아니면 몇 년 전에 국내에 소개된 영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의 한 장면도 떠올랐다.

펑크의 특성 상 곡들은 그리 길지 않고 이들 특유의 익살과 장난끼가 있어서 조금만 익숙해지면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때로는 이들의 이전 스타일과는 상이한 곡들도 발견된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불협화음으로 바뀌다가 끝내는 "다죽자"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다죽자'라든가 한국 민요풍의 가락을 느릿느릿 불어제끼는 '탈출기'가 대표적이다. 가장 인상적인 곡은 마지막 트랙인 '게릴라식 집중호우'이다. 흥겹고 때로는 왁자하기까지 하면서도 자기를 낮춰야 하는 '연행예술인'의 쓸쓸함이 묻어있다. 이런 느낌 때문인지 '탈출기'는 산울림의 '청춘'같은 곡을, '게릴라식 집중호우'는 신중현과 이남이의 곡을 떠올리게 만든다.

총평하자면 크라잉 너트는 '뿌리없는' 펑크 로커로 출발하여 나름의 뿌리를 찾아나서는 듯하다. 그게 1970년대의 그룹 사운드들이든, 더 오래된 악극단(혹은 곡마단)이든, 혹은 다른 나라의 떠돌이 민속음악 그룹이든. 물론 이런 뿌리들은 변형되고 가공되기 때문에 '전통의 계승'과는 거리가 멀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런 시도가 아이러니를 보여주기는 하되 아이러니를 넘어서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음악적 진정성을 성립시키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진정성을 희화화시키는 데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괜히 어려운 말 썼나? 그렇다면 죄송! 쉽게 말하면 재미는 충분하지만 감동은 부족하다는 말이다. 물론 한 밴드의 경력 중에서는 훌륭한 단계지만, 현재 대중음악계의 고질병인 '작위성'에 대해서는 '허약한' 비판일 것 같다. 19991223

*[뉴스피플]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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