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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초대석 / 시스템의 권태, 그리고 인디의 불안
: 델리 스파이스(Deli Spice) 김민규와의 어떤 대담

 

인터뷰를 위해 찾은 목동은 비가 올 것만 같은 날씨에 이미 어스름이 지고 있었다. 잠시 후 방송회관의 건물 안에서 나타나는 신현준씨는 재기 넘치는 글을 보고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수더분하고 느긋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의 체형(?)은 그의 홈페이지에 등장하는 만화주인공 '호머 심슨'의 이미지와 너무 닮아 재미있었다.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김민규씨. 빨간 후드티가 눈길을 끄는 그의 모습은 공연장에서 느꼈던 단단하고도 깔끔한 느낌이나 사진에서 보이는 조금 씨니컬한 느낌과는 또 다른 인상이었다. 상상했던 여러 이미지들이 통합되면서도 새로운 그런 느낌.

조금 덜 유명한 스타

라디오를 켠다. 잡다한 농담과 끊임없는 수다만 이어지는 라디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보면, 조금은 낯선 목소리의 두 남자가 진행하는 음악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93.9MHz (오후 10시-12시) CBS FM <델리 스파이스의 우리들>은 이렇게 쉼터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음반을 내고 신문이나 음악잡지에 인터뷰 기사가 실리고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는다. 그들은 이미 자리잡은 대중음악 스타인 것만 같다. 하지만 김종서나 윤도현, 아니면 자우림보다도 훨씬 덜(!) 유명하다. 이들은 누구인가?

델리 스파이스의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공동리더 김민규씨의 음악에 대한 중고등학교 시절의 관심은 마치 아이들이 멋진 장난감을 갖고 싶어하는 것과도 비슷한 것이었단다. 나만의 CD 컬렉션을 갖추는 것과 취미삼아 기타를 연주하는 일의 은밀한 즐거움. 민규씨는 94-5년 즈음해서 통신이라는 것을 접하면서 동호회의 음악감상모임에 나가게 되고, '드럭'이라는 클럽이 생기게 되면서 나도 한 번 기타를 들고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PC통신 하이텔의 음악동호회에 구인광고를 내어 지금의 델리 스파이스의 멤버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결성된 델리는 그 후 95년 8월 '드럭'에서 라이브공연을 시작으로 홍대앞의 몇몇 클럽을 돌며 공연을 하다가 97년 8월 첫 앨범인 를 낸다.

인디와 주류의 경계 넘나들기

인디 밴드들에게는 하나의 전형적인 자기규정이 있는 듯하다. 저예산주의와 로우파이 정신(?)으로 무장하고 주류 대중음악의 규격화된 음악생산과 유통방식을 거부하면서, 소수이지만 독창적인 취향을 갖는 일군의 팬들 속에서 거의 비상업적으로 음악활동을 한다는 것. 그렇게 본다면 델리 스파이스는 전형적인 인디 밴드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델리라는 밴드는 음반을 내는 단계부터는 이미 '감각 있는 모던록 밴드'라는 브랜드를 붙이고 주류 대중음악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것 같은 느낌이다. 글쎄, 델리 스파이스가 자의든 타의든 인디와 주류의 경계선에서 '층메우기'라는 역할을 하게 된 내력에 대해서 민규씨의 말을 들어본다.

김민규 : 델리 스파이스로 활동을 시작하던 초창기에, 홍대근처 클럽을 중심으로 한 인디 씬에서도 우리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밴드였던 것 같아요. 당시 클럽들도 이미 색깔이 나오기 시작해서, 홍대 씬에서조차 펑크나 그런지와 같은 흐름이 정해지고 그에 맞추지 않으면 사실상 외면을 당하는 실정이였죠. 그렇다고 우리의 음악이 쥬류 음악산업의 입맛에 완전히 맞았던 것도 아니었어요. 음반을 내보겠다는 생각으로 몇 군데 데모 테입을 보내고 의사를 타진해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음반 제작이란 것이 기획사가 주도하여 사람을 모으고 하나의 상품을 만드는 것으로 이해되던 당시로서는 음반기획을 하는 입장에서도 꺼리는 부분이 있었겠죠. 또한 우리도 음악의 색깔을 바꾸거나 멤버를 보충하면서까지 음반을 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음악이 좋긴 했지만 절실하지는 않았어요. 한동안 음반을 내지 못하다가 결국 한 레이블에서 음반이 나오게 되었죠.

어쨌든 델리의 1집 음반이 나왔고, 이 음반은 음악전문지 SUB가 음악산업 관계자들의 추천을 받아 선정한 한국대중음악 명반순위에서 들국화 1집, 산울림 1집, 어떤날 1집에 이어 4위로 선정된 바 있다. 방송에서도 많이 나와 우리 귀에도 익숙한 <차우차우>가 바로 이 앨범에 들어 있는 곡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단 두 줄의 가사. 민규씨의 차분한 목소리와 단정한 아르페지오에 이은 강렬한 리듬 배킹. 환청으로 인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별 뒤의 심경을 노래한 연가로 들리겠지만, 사실은 어떤 분노 같은 것을 표현한 노래라고 한다. 어느새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얼터너티브, 밴드의 해프닝 등 외면적인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 그리고 99년 3월 2집 를 발매하였는데, "자신들의 역량과시가 느껴질 정도로 밀도 높은 편곡이 꽉 찬 사운드를 만들어내어 전혀 아마추어리즘이 느껴지지 않는다"라는 평을 받는다.

또 하나의 기타록, 그러나 다른 감수성

델리가 클럽에서 소리없는 호응을 모으던 96년부터 이미 이들의 사운드와 스타일에 동감하고 후원하던 음악평론가가 있었다. 80년대에는 학생운동 '대중'으로, 좌파 사회이론가로 고단한(!) 청춘을 날려보내고 90년대에 들어서는 록음악에 늦바람이 난 신현준씨가 그이다. 80년대의 이념적 완고함이 아직 다 사그러들지 않은 90년대 초 사회주의 경제이론의 논객으로 이미 평판이 나버린 그가 어느 날 뜬금없이 존 레논에 관한 책 <이매진, 세상으로 만든 노래>(새길, 1993)를 냈을 때 주위의 지인들은 당연히 조금 황당해했다고 한다.

그가 90년대에 들어 고등학교 시절 빠져 있던 록 음악으로 회귀한 대목에는 너바나를 필두로 한 '그런지 폭발'이 큰 흔적을 남기고 있다. 얼터너티브 록에서 다시 시작된 그의 여정은 영국 인디 팝/록에 대한 탐색을 통해 록의 진정성(authenticity)이라는 오래된 관습에 시비거는가 하면, 일렉트로닉 댄스음악도 기웃거리면서 대중음악의 다른 실천형태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로 이어진다. <얼트 문화와 록 음악 1, 2>(공저)(한나래, 1996/1997), <록 음악의 아홉 가지 갈래들>(문학과 지성사, 1997), <입 닥치고 춤이나 춰>(공저)(한나래, 1998) 등은 이러한 그의 작업의 부산물이다.

현준씨가 이야기하는 델리의 음악을 들어본다.

신현준 : 제가 델리의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은 96년 즈음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진부한 이야기지만 당시 일부 평단에서는 '록은 저항의 음악'이라는 식의 담론이 퍼져있었죠. 영미문화에서는 '저항'의 의미가 사실 좀 일상적인 것인데, 한국에서는 문화적 코드가 다르니까 정치적인 의미를 자꾸 부여하려고 하더군요. 델리의 음악은 이런 맥락에서 '저항에 대한 저항'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 같았습니다. 얼핏 듣기에는 그저 말랑말랑한 것 같지만 그들의 음악에서는 어떤 절박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딥 퍼플(Deep purple),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블랙 새버스(Black Sabbath)를 좋아했던 메틀 키드들의 '정통' 계보와 달리 또 하나의 맥을 이어온 감수성의 갈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밴드가 바로 델리였습니다. 델리의 음악은 매니아 아닌 사람이 들어도 충분히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이죠.

스미스(The Smiths) 같은 영국 인디 밴드들에서 느낄 수 있는 소년적 감성의 보컬, U2의 에지(The Edge)가 펑크의 에너지를 계승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단정하게 전개했던 기타 주법, 큐어(The Cure)가 그랬던 것처럼 신스 팝이나 테크노의 새로운 소재들을 록에 결합시키는 개방성 따위가 그들의 음악을 다른 감수성의 갈래로 느끼게 하는 것들이리라.

90년대, 취향의 정치

90년대는 문화라는 주제가 소란을 피운 10년인 것 같다. 거대 담론과 정치 논쟁이 사라진 자리에 욕망과 신체와 일상이 밀려들어와 멋을 부렸고, 대중음악에서는 70년대 펑크부터 90년대 트립합까지 모든 경향들이 단번에 수입되고 복습되었다. 그러한 소동과 좌충우돌 속에서라도 우리 대중음악에 독립적인 경향과 실천들이 나름대로의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분명 성과라고 볼 수 있다. 트렌드의 거품이 걷혀가는 요즈음 두 사람은 인디 씬이라는 철지난 주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신현준 : 제가 처음 델리를 만난 것은 96년 가을, '소란' 이라는 조그만 록 페스티벌(rock festival)을 만들면서부터였습니다. 평론을 하는 일도 내 삶에 있어서는 대안적(얼터너티브)인 의미를 갖는 것이었지만, 글을 쓰는 이외에 어설프지만 씬을 만들어보는데 한번 거들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현 시점에서 대중음악계 전반을 떠올려본다면 주류음악계와 완전히 독립된 씬이라는 것이- 그것이 인디든 뭐든 -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예요.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죠. 우습게도 뭔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일을 해나가면서 인디 음악계라는 게 좁으면서도 '말많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디 내에서도 세분된 '취향'이 있고, 그 취향간에 경쟁과 협력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흥미있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PC 통신활동을 하고, 몇몇 인디 밴드들과 정서적인 공감을 갖고, 취향의 교류나 소통을 하려고 애썼습니다. '소란'이라는 공연은 어떻게 보면 초라했지만, '취향의 커뮤니티'로서의 의미는 가졌던 것이죠.

김민규 : 처음에 델리의 음악을 가지고 활동을 시작할 당시, 저와 2,3-4년의 연배가 차이나는 사람들은 모두 80년대를 직접, 간접으로 경험하면서, 결과적으로 정말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생각, 무너지지 않는 벽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자기 안으로 움츠려들었던 것 같아요. 저같은 경우도 '내가 이 씬을 맡아서'라든가, '이 한 몸 불태워서 이 씬을 일으켜 보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연주하는 것이 재미있었고, 누군가 내 음악을 들어준다는 것이 신기했을 따름이죠. 80년대 음악을 하려던 사람들에게는 '연주력'이라는 필수적인 요건이 구비되어야 했어요. 이에 반해 90년대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았어요. '드럭'이라는 곳은 어쨌든 연주를 잘 하지 못했던 밴드들에게도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클럽의 성격을 떠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의 음악은 하나의 흐름을 가지는 인디 씬에서도 비주류로 취급받았습니다. 인디 씬의 실정은 현재도 많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아요. 예전보다는 좀더 다양해지기는 했지만, 얼터너티브의 의미를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로 봤을 때, 그런 측면은 거기도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직도 우리같은 '외모'로 음악을 하는 것, '비주류의 비주류'에 속하는 음악을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죠.

미래 - 뿌리내리기 그리고 벗어나기

두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주류음악계에 대한 대안적 방식으로 나타난 인디 씬의 미래가 그리 평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신현준 : 그런데 인디 씬의 지배적 조류가 클럽 안에서는 광적인 반응을 얻지만 그 범주만 벗어나면 일반대중은 낯설어하는 것과는 달리, 델리는 인디 씬에서도 비주류였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서 익명의 대중에게 주는 음악적인 감흥은 오히려 컸던 것 같아요. 저들이 속해있는 지역의 정서에서 유래된, 분명히 저 사람들만이 낼 수 있는 사운드라는 느낌을 주는 동시에 보편적 취향도 충족시키는 묘한 양면성이 요구되던 시기에 델리가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며 등장한 것이죠.

인디 씬이 고립적 회로 안에서 자생하는 것이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적어도 한국이라는 지역-시장에서는 '완결된 인디'라는 이미지와는 다른 지향이 필요하다는 생각 같다. 우리 대중음악은 주류든 인디든 새로운 장르를 수입해서 그 문법을 훈련하고 퍼뜨리는 것을 음악 생산의 거의 전부로 생각하는 듯한 관습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현준씨는 최근의 한 예로 엘리엇 스미스(Elliot Smith)나 벨 앤 세바스천(Belle & Sebastian) 같은 최근의 '포키들(folkies)'처럼 그 나라-지역의 정서와 감성에 정통하고 이것을 그곳의 청중이 공감하는 언어와 선율로 표현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델리는 인디의 컬트가 아니라 로컬 스타(local star)가 되어야 한다고. 델리에게 덧붙이는 현준씨의 위로. "글로벌 스타(global star)로 뜨기에는 좀 늦었지?"

그런 의미에서 근자에 신중현 트리뷰트, 산울림 트리뷰트 등의 작업과 함께 유행했던 한국 록 계보 세우기라는 것도 그 어설픔과 과장을 비켜서 본다면 그리 무의미한 일만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현준씨는 어떤 글에서 들국화, 조동익, 하덕규, 한영애의 86년 - 억눌린 슬픔이 터져 나온 해였다는 - 과 델리 스파이스, 미선이, 언니네 이발관의 97년을 연결시킨 적이 있다. 그들이 서울 또는 남한의 일상, 우리의 나날의 전쟁, 이곳의 문필과 논쟁과 유머와 눈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노래를 끄집어내 퍼뜨려주기를 기대해 본다.

인디를 위한 시스템?

시스템은 효율성과 안정성을 보장하는 대가로 필연적으로 타성과 관료주의를 낳는다. 그래서 창조적 소수자들은 제도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고립의 길을 택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무작정의 고립은 명상가의 길인지는 몰라도 음악이 갈 길은 아닐 것이다. 90년대에 한국에서도 자리잡기 시작한 인디 씬도 이제 신기한 얘기거리의 단계를 지나서 자기 나름의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한 것 같다.

김민규 : 주위의 밴드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못 견디고 넘어지는 것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착잡합니다. 우리도 앨범을 낼 때마다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생각을 하죠. 이런 스트레스가 없이 음악을 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좋아서 한다라는 태도로 음악을 계속할 수 있으려면 그 뒤에 든든한 준비를 해 놓아야 하죠. 그래서 요즈음은 인디 레이블, 독립 제작, 독립 유통이라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그 전에는 그냥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일 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신현준 : "90년대 인디라는 것이 존재하며, 인디 레이블과 클럽들도 여전히 버티고 있지만 계속 이 상태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시스템에 대한 대안이 필요합니다. 인디 음악계는 '우리들만의' 음악, 감성, 공간, 유통구조 등을 강조하다보니 스스로 벽을 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쪽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그렇게 흘러간다면 결국 시스템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죠."

게토 ghetto 밖으로

민규씨는 요즘들어 인디의 정체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하고, 어떤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무브먼트'의 필요성 같은 것도 느낀다고 한다. 인디 문화라는 것이 주류문화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심하게 말하면 게토(ghetto)화 -"거기서만 놀고 밖으로는 나오지 마!"하는 식으로- 되어 간다면 전혀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현준씨의 개탄(?). 본래 영미의 인디 음악은 컬리지 록(College Rock)의 다른 이름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대학을 중심으로 유통되고 향유되는 것이었는데, 한국에서는 대학에서조차 소통되지 않는다는 점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 조금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김민규 : 작년 여름에 미국엘 다녀왔는데 거기서는 인디와 주류 음악계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더군요. 서로 개입하지 않지만 어쨌든 인디는 자기 고유의 확고한 입지가 있었어요. 또한 클럽이나 라이브하우스로 공연장의 개념이 통일되어 있었는데, 우리나라보다 입장료는 비쌌지만 전문공연장으로서의 시설과 스태프를 갖추고 있어서 부러웠습니다. 무대에 서는 팀도 다양해서 무명의 클럽밴드와 유수의 인기밴드가 같은 곳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여 클럽이 '열려 있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반면 한국의 시장은 좁을 뿐만 아니라 인디 씬에서는 공연이 음반활동 이외에 생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방안이 되는데 클럽도 정체되고, 전문공연장도 마땅치 않고, 설 무대가 많지 않다는 것이 인디 밴드들의 현실입니다.

신현준 : 한국 방송의 현황을 보면 KBS, MBC 이외의 지역방송이나 종교방송 등이 마이너의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거기도 제약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수준에서는 인디 음악에 비교적 개방적인 몇몇 프로그램에 선곡 리스트에 영향을 미치는 것 말고는 방송을 활용하여 대중에게 접근할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역방송이나 대학방송과 같은 본격적인 마이너 방송국 시스템은 너무나 큰 제도개혁의 문제라서 지금 언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그렇다면 대중을 만나는 다른 방법으로 공연문화의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그와 관련해서는 아직도 학교주변에 공연장을 짓기 어렵도록 하거나, 부가가치세와 문예진흥기금의 징수로 공연 기획자에게 재정적 부담을 주는 각종 법제상의 독소조항이 개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클럽합법화라는 오랜 숙제가 해결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공연문화활성화가 여전한 화두가 될 것 같습니다.

인디 음악의 현실과 장래, 그리고 그 언저리에 위치한 음악평론가와 인디 밴드 리더가 함께 하는 대화는 얘기거리가 끊이질 않았지만, '우리들' 방송녹음 관계로 김민규씨가 자리를 정리하면서 아쉽게도 인터뷰는 이쯤에서 끝내야 했다. 수줍은 미소를 남기고 방송국을 향해 달려가는 김민규씨에게서 음악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꿋꿋한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적재적소의 위트와 대중음악에 대한 세련된 시각으로 화제를 이끌어준 신현준씨. 그와 함께 한 강변에서의 맥주 한 캔의 뒷풀이는 두고두고 기억될 즐거운 경험이었다.

몇 일 뒤, 델리의 공연을 보기 위해 대학로 S.H클럽을 찾아갔다. 하드코어니 트립합이니 하는 것에 대해서 읽고 포스트록에 대해서 수다를 떨기 전에 먼저, 아니 읽고 수다떠는 것도 좋지만 그와 함께, 이 밴드들과 같이 '로킹(rocking)'해 보아야 한다. 이곳은 이미 작은 공화국이다. 청중들은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있고, 밴드는 조금은 초라한 대기실에서 일상처럼 시작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델리의 차례다. 바쁜 스케줄에 힘들어하던 대기실의 모습은 간데 없이, 무대에 선 그들은 이미 온 몸으로 노래하고 연주하는 참 예쁜 젊은이들이다.

"오늘도 난 접어 날려 보내, 이 작은 종이비행기를. 누군가 이걸 보겠지 잡아주겠지 하는 기댈 갖고"(델리 스파이스 2집, '종이비행기' 중에서)

 

델리를 읽을 수 있는 사이트 : http://home.tinc.co.kr/~deli
신현준씨의 개인 홈페이지 : https://members.tripod.com/Hyunjoon_Shin

 

*인터뷰: 1999. 10. 12.
참여 : 조규훈, 성언주
정리 : 성언주

 

*사법연수원의 회지에 게재될 예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