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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joonProfile Articl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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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밀레니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경험
연말 모 라디오 방송국에서 '20세기 대중음악'을 주제로 한 특집방송이 있었다. 예비역 록 스타인 B모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요즘 한창 잘나가는 '테크노' 스타(사족: 나는 한국에서 테크노라는 단어가 무슨 뜻으로 쓰이는지 정말 모르겠다) L양이 거들었고, 패널로는 C일보의 K 기자와 유명 가요평론가 K씨가 나왔다. 내가 기억나는 대목은 K기자와 K평론가가 "요즘 대중음악의 문제점은...."이라고 몇 가지 얘기를 하고 B씨가 L양에 "정작 본인은 어떤 문제점을 느끼는가"라고 묻자, L양은 "글쎄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저는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데요"라고 답변했다. 그녀의 답변 속에 스타로 등극한 자의 거만함이 들어있지는 않았다. 내가 듣기에는 그랬다. 거만함이라기보다는 문제점에 대한 무관심 혹은 무지였다. 문제점은 '없다'는 게 그녀의 답이었다. 그렇다면 '아저씨'들은 어떤 문제점을 지적했는가. '1990년대 이후 대중음악계가 댄스 음악 일변도로 흘러가고 있다'라든가 '장르의 다양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진단은 더 나아가 '요즘 애들'은 디스크나 테이프를 '듣다가 싫어지면 버린다'는 말로 이어지기도 했다. 다소의 한탄과 원망이 곁들여진 표현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하긴 그때는 없는 살림에 한푼두푼 쪼개서 판을 샀으니 그랬겠죠"라는 B씨 특유의 뼈있는 농담으로 마무리되었다. 몇 시간 뒤 나는 TV 앞에 앉게 되었다. 임진각에서 개최되는 DMZ 2000이라는 행사에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중심으로 비주류 음악인들의 다양한 공연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 방송국의 TV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렇지만 TV 카메라는 주로 광화문을 비춰주었고, 임진각은 자정 10분 전쯤 2-3분 가량 잠시 나왔을 뿐이었다. 김민기 작곡의 "철망 앞에서"가 연주되고 있었는데, 연주 장면을 상세히 보여준 것도 아니고 아나운서의 멘트 뒤로 연주인들의 희미한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방영된 것은 자정이 10분 이상 지난 뒤였다. 그것도 전작이 아니라 미리 편집한 화면만을 방영해 주었다. 아, 비주류 음악인들은 비디오 아트가 하기 전에 '시간 때워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구나. 하필이면 비주류 음악인들을 초청한 것은 주류 음악인들이 바빠서 그랬던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다른 방송국으로 채널을 돌려보니 광화문 인근의 특설 무대에서 '인기 가수'들의 축하 공연이 전개되고 있었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 립씽크였다. 이런 날까지도. 그렇게 습성화된 것이 하루 아침에 바뀌기는 힘들다. 이런 이야기는 지루하다: 가요계가 댄스음악 일변도로 흘러가고 있다, 댄스음악은 듣는 음악이 아니라 보는 음악이다, 십대들이 대중음악 시장을 좌지우지한다, 방송 등 매스 미디어가 이를 부추기고 있다, 유통구조도 잘 팔리는 음반만을 주로 취급한다 등등. 그래서 조금만 새로운 것이 있으면 '댄스 음악 일변도의 가요계에서 대안을 모색한다'는 문구로 소개한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대안은 '없다'. 이렇게 말하면 좀 심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평가는 사실 '인디' 음악과 간접적으로 연관된 나같은 사람에게는 패배적이고 자조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해봐도 안된다', '이제는 좀 지쳤다'라는 게 이쪽 사람들의 요즘 심기다. 불편한 심기라기 보다는 피곤한 심기에 가깝다. 이렇게 짜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필자와 독자 모두의 정신건강에 안 좋을 듯하다. 그래도 짜증을 낸 것은 하지만 20세기에 해결되었으면 좋았을 일이 고스란이 21세기로 넘어왔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20세기와 21세기가 달력 종이 한 장 차이인 바에 조급해 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 문제점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는 스타들과 그들의 '대중'은 내게는 공포스럽다. 그렇다고 '아저씨'의 주장이 옳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건 아무래도 지나간 좋은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니까. 그래,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시작하는 게 나을 지 모른다. 아무 문제 없다. 아무 문제 없다. 아무 문제 없다. 근데 왜 그녀는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라고 말할까. 돈벌려고?
20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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