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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joonProfile Articl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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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과 돈
지난 일요일 밤 한 TV의 시사 프로그램을 본 뒤 의욕상실증에 빠져버렸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코스닥 시장 열풍'에 관한 것이었다. 코스닥과 나스닥을 구분하기 시작한 지도 몇 달 안 되는 나에게 보도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어떤 벤처 기업의 직원('사장'이 아니다)의 평균 재산이 자그만치 9억원이라는 사실, 강남의 고급 룸살롱에서 2-30대 벤처기업 사장들의 하룻밤 술값이 800만원이라는 사실등은 간간이 루머로 들어 왔는데 정말인 모양이다. 이른바 '돈벼락'이다. 그래서 돈을 주제로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돈도 못버는 주제에 내가 무슨...'이라는 것이었다. '경제학과 박사과정 수료'라는 최종 학력에도 불구하고 '돈 문제'는 일상생활에서 내가 관심을 기울이는 영역은 아니다. 아니다. '돈벌이가 시원찮다'는 이야기를 괜히 빙빙 돌려서 한 것 같다. 사실은 늘 돈 문제로 시달린다. 동인들의 회비를 받아야 낼 수 있는 사무실 월세는 늘 밀리고, 들어와야 할 원고료는 제때 들어오는 적이 별로 없다. '들어오는' 돈은 느려터지건만 '나가는' 돈은 칼같이 나간다. 전기료, 전화료 등 각종 공과금으로부터 신용카드 대금, PC통신 사용료, PCS폰 사용료 등에 이르기까지 자동 이체로 즉각 잘도 빠져 나간다. 돈은 이렇게 흘러다닌다. 그래서 나는 대학생 시절 "화폐는 유량변수가 아니라 저량변수다"라는 경제학 교과서의 문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유량(flow)이 뭐고 저량(stock)이 뭐시냐고? 유량은 강물처럼 흘러 다니고, 저량은 저수지물처럼 고여있다고 말하면 될까. 아무튼 '화폐처럼 흘러 다니는 것이 왜 저량일까'라는 것이 나의 의문이었다. 의문을 풀기 위해서 조금 번거롭지만 경제학 교과서를 뒤져 보자(뭔 '경제학 강의냐, 지루하다'라고 느끼는 분은 한 문단 건너 뛰던가, 다른 글을 읽어주세욧). 우리가 일상 언어로 돈이라고 말하는 것은 경제학에서는 '소득'이다. 어떨 때는 '부' 혹은 '재산'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소득과 부는 다르다. 고소득자는 '돈 잘 버는 사람'이고, 부자란 '돈 많이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경제학 개념에서 부자와 고소득자를 구분하든 말든 현실에서는 가진 게 많아야 벌이도 좋다. 부자가 고소득자란 뜻이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그렇다. '가진 것'을 '재산'이라고 불러보자. 재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게 많으면 아무래도 재산 한푼 없이 일만 해서 버는 것보다는 벌이가 쏠쏠할 것이다. 정리하면, 재산소득의 비중이 크면 근로소득만 있는 경우보다는 돈벌이가 많다. 앞에 언급한 코스닥 시장 덕에 돈벼락 맞았다는 말도 당장의 벌이나 씀씀이가 많아졌다는 뜻보다도 앞으로 '재산소득'이 안정되게 흘러나올 것이라는 뜻에 가깝다. '미래가 현재를 지배한다'고 쓰면 그럴 듯한 표현이 되려나. 그런데 좀 이상한 게 있다. 코스닥 시장 열풍으로 돈벼락을 맞았다는 사람의 재산은 도대체 뭘까? 주식이라는 종이조각이다. 월남하신 아버지 탓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 은행의 주식은 지금은 진짜로 휴지에 불과하다. 사람 팔자 알 수 없다. 어떤 사람이 가진 종이조각은 휴지에 불과해서 쳐다보고 있으면 열불이 나지만, 다른 사람이 가진 종이조각은 평생을 보장해 주는 듯한 안도감을 선사한다.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재산이란 토지나 공장같이 형체가 명확한 대상(이른바 '부동산')이 주종을 이루었다. 요즘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결국 최근 돈벼락 맞은 사람의 재산은 '무형의 재산'이라는 말인데, 이게 참 묘한 것이다. 재산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권리'를 소유해야 한다는 말로 대충 정리해 보자. 주식을 소유했다는 말은 주식회사의 가치의 일정 부분(이른바 '지분')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글을 시작할 때는 음악과 돈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했다. 옆길로 많이 새버렸다. 그래도 다시 시작해보자. 음악을 비롯하여 '문화상품과 관련된 돈 이야기'는 저작권이라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작권이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쓰면 '저작물에 대한 저자의 권리'이고 영어 단어인 copyright라는 말을 떠올리면 '저작물을 복제할 수 있는 저자의 권리'이다. 저작권이 바로 '무형의 권리'의 좋은 예이다. 저작권은 상표권, 특허권과 더불어 '지적 재산권'에 속한다. 물적 재산권이 유형의 재산에 대한 권리라면 지적 재산권은 무형의 재산에 대한 권리고, 저작권은 예술 작품에 대한 권리다. 갑자기 경제학 강의에서 법학 강의로 바뀐 느낌이 들지만, 모르겠다 그냥 막가보자. 저작권을 음악의 경우에 적용해 보자. 레코딩된 작품(보통 '매스터테이프' 형태를 취한다)을 똑같이 복제한 물품, 즉 CD나 테이프를 판매할 수 있는 권리는 작사가·작곡가에게만 있다. 물론 이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라서 저작권은 작사가·작곡가에게 있지만 보통은 판권(출판권)을 소유한 음반사와 계약을 맺어 수입을 나눠야 하고, 노래만 부른 가수같은 경우는 저작권은 없지만 저작인접권은 가지고 있고, 저작권에는 CD나 테이프를 판매할 수 있는 복제권 뿐만 아니라 라디오나 노래방등에 사용을 허가하고 받는 실연권(實演權)이란 것도 있다는 등등 복잡한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뮤지션을 만나 보면 나보다도 이런 문제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음악 좋아하는 사람이 돈 문제에 어리숙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더군다나 저작권 제도가 최근 수준으로도 정비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황당한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옛날에는 음반사가 가수나 작곡가와 전속계약을 체결하면 계약기간 동안 레코딩한 작품에 대해서는 저작권까지도 소유해버리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저작권자인 음악인의 허락 없이도 음반사 맘대로 '베스트 음반' 등을 계속 발매해서 법정 소송도 발생한 일이 있다. 불행히도 '당시의 관행'이었음을 주장하는 재판부의 판결에 뮤지션이 분루를 삼켰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1980년대 이후 음반제작자들이 음반사에서 나와 기획사를 차리기 시작한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치 않았다. 그때에 비하면 요즘은 저작물에 대한 음악인의 '권리'가 많이 신장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소문으로 들었지만 한때 생활고에 시달렸던 원로 작곡가들이 갑자기 생활형편이 나아졌다고 한다. 그 이유는 1987년 이후 저작권 제도가 정비되고 노래방과 단란주점 등이 성업하면서 그곳으로부터 상당한 저작권료가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도 뭐 돈벼락이라면 돈벼락이다. 과거에 경제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분들이 뒤늦게라도 보상을 받는 일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요즘 잘 나가는 2-30대의 작곡가들이 저작권료로 한달 평균 몇 천만원을 번다는 말을 들으면 솔직히 좀 배가 아프다. 잘 나가는 작곡가는 작사·작곡을 하지 않는 '스타'들보다 수입이 좋은 현실은 공정한 것일까. '댄스그룹들 **같다'고 씹어온 나이지만 이런 생각이 들면 평소에는 없던 연민의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TV 방송국에 수차례 나와서 열심히 흔들어댄 대가는 '근로소득'에 가깝다. 반면 작사가·작곡가는 한번 작곡만 잘하면 '거저먹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가창료' 등의 개런티는 근로소득에 가깝고, '저작권료'는 재산소득에 가까워 보인다는 뜻이다. 히트곡을 쓰는 작곡가가 이 글을 보면 내심 불쾌해 하면서 '히트곡 쓰기가 그렇게 쉽냐'고 반문할 지 모르겠다. 물론 나보고 하라면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뼈를 깎는 예술적 창조일 것 같지도 않아서 해본 말이다. 여기저기 원고 써서 원고료라는 '근로소득'밖에 못 버는 주제라서 해본 말이기도 하다. 히트곡 쓰는 능력은 없는 듯하니 히트 책이나 써볼까. 서갑숙이나 박노해처럼? 그러려면 얼굴에 철판 깔아야할텐데...
20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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