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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평론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작년 연말에 개봉한 영화에서 영화감독이 영화평론가를 비난한 장면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는 모양이다. 영화감독과 영화평론가 사이의 불편한 관계가 드러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사실은 나같은 문외한도 알고 있다. 영화잡지에서 '사건 일지'를 정리하고 분석 기사를 실은 것도 보았다. 서두를 이렇게 시작한 것은 영화계와 달리 대중음악계에서는 창작자와 평론가 사이에 불화가 '없다'는 점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사이가 원만한가?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다. 대중음악 평론가는 음악인 및 음악산업계와 밀착된 존재 아니면 아예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이다. '도 아니면 모'라는 이야기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TV에 가끔 등장하는 '가요평론가'의 원로들은 대중음악 관계자들과 동고동락하는 인물들처럼 보인다. 반면 (나처럼) 1990년대에 갑자기 등장한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대중음악계나 음악산업계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가요평론가'와 '대중음악 평론가'는 뭐가 다를까. 웃기는 구분이지만 가요평론가는 '지식인'이 아니고, 대중음악 평론가는 지식인'이다'. 잠깐, 한국에서 지식인은 '학벌' 개념에 가깝고, 요즘 지식인이란 거의 비웃음거리다. 어떤 사람의 표현에 의하면 '우등생 출신 허접쓰레기'다. 정말 그 말이 많는 건지 '지식인 출신 대중음악 평론가'의 글쓰기는 대중음악계에 별로 영향력이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고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전망이다. 경제학자의 글쓰기가 재벌 총수에게 영향력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자기 직업에 대해서 '사회적 영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자조적으로 들리겠지만 객관적으로 그렇다. 이 글은 어차피 자기 얘기가 될 모양이다. 주관적인(그리고 때로 궁상맞은) 자기고백의 형태가 되더라도 용서와 아량을! 이런 일이 있었다. 조성모의 2집 음반에 대해서 주류 언론사에서 발행하는 주간지에 평을 쓴 일이 있다. 별로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고, 특히 뮤직 비디오에 대해서는 '악평' 비슷한 것도 했다. 그렇지만 다 알 듯이 조성모의 음반은 날개 돋힌 듯 팔려서 무슨 기록도 세웠고 급기야는 연말의 가요대상을 휩쓸었다. 내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데 한 방송관계자가 사석에서 조성모에 대해서는 "1집에서는 음악을 베끼더니 2집에서는 자켓을 베꼈다"고 했더니, 몇 일 뒤 체격좋은 관계자들의 '항의방문'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런 말을 전해듣는 나의 심정은 오히려 비감하다. 주류 언론에 공적으로 쓴 글은 방송관계자가 사적으로 한 말보다 파급력이 작다는 뜻이니까. '글을 못써서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한 김에 하나 더. 주류 대중음악(이른바 '땐스'나 '발라드')의 음반을 리뷰할 일이 생기면 주머니를 털어서 음반을 구매해야 한다. 달라고 연락하면 줄 지도 모르지만 싫은 공짜로 받으면 글을 쓸 때 아무래도 싫은 소리가 잘 안나온다. 용기를 내어 기획사에 전화를 걸어봐도 전화가 불통이거나 담당자가 자리에 없을 때가 많고, 어쩌다가 통화가 되더라도 이쪽의 '효용'을 의심하는 말투가 얼마 남지 않은 자존심을 긁어댄다. 직배사에서 발매하는 '팝 음반'이 오히려 덜한 편이다. 나보다는 영향력이 있어 보이는 동료 평론가도 '국내 음반은 음반사에서 안 준다'라고 씁쓸하게 말한 적이 있다.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닌데 그런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거 보고 그간의 불편한 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 입으로 '나보다 영향력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따져보니 그가 라디오나 TV 등 지상파 대중매체에 많이 등장했다는 판단에 기초한 듯하다. 이것도 마찬가지구나. 평론가라도 대중음악계에 영향력을 미치려면 방송과 연관되어야 하는구나. 이런 간단하고 자명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 괜히 지면만 낭비한 듯하다. 정리하면 음악산업 외부에 있는 '글쟁이' 가운데 대중음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직업인은 대략 다음과 같은 순서일 듯하다. 텔리비전 프로그램 구성작가 → 라디오 프로그램 구성작가 → 스포츠신문 기자 → 일간신문 기자 → 무가지(無價誌) 기자 → 잡지사 기자. 그리고 마지막이 신문사나 잡지사에 기고하는 나같은 '프리랜서' 평론가인 듯하다. 영향력이 없는 게 아니라 때로는 '정반대'의 영향력을 확인할 때도 있다. 그동안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뮤지션의 음반에 대해 모처럼 호의적으로 평가했더니 음반이 망해 버린 일도 있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면 대중음악 평론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잘 안 풀릴 때는 원론적인 얘기를 꺼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 생각으로 평론가란 '직업적 소비자'다. 생산이 아니라 소비가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다. 생산이란 음악의 창작이고, 소비란 창작된 음악의 감상이다. 따라서 음악을 듣는 행위가 '여가'가 아니라 '노동'이 되어버린 사람이다(물론 그게 전직(轉職)이 될 정도로 생계가 보장되는가는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원론적으로 평론가는 소비자 편에 설 수밖에 없다. 소비자단체가 낮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게 항의하듯, 대중문화 평론가는 질이 낮은 문화생산물에 대해 항의를 표한다. 아마도 그동안 '진지한' 대중음악 평론가들이 주류 대중음악을 '무조건' 비난하거나 무시했던 것은 이런 차원일 것이다. 독자들이 좀 오해할 듯하다. 영향력 없다는 사실에 비감함을 느끼는 것은 영향력 있는 실력자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 때문 아니냐고, 그건 결국 주류에서 인정받기를 바라는 것이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사명감 넘치는 운동가를 자처하지 않는 이상 그런 류의 속물적 욕망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도 힘들겠다. 하지만 '맞아, 정말 그렇군'이라고 반성하면서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넘어가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도대체 '평론가인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반문하게 된다. '공짜로 음반받기'나 '방송에 얼굴 내밀기'가 아니라 나의 텍스트가 적절한 매체를 발견하여 소통의 구조를 확립하는 일이다. 대중음악을 듣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다른 사람도 좋아할 것'이라는 믿음이고,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가 젊은 애들의 소굴인 인디 음악계를 기웃거렸던 것은 '음악산업계로부터 독립적인' 글쓰기가 가능할 것이라는 상상이 작용했기 때문인 듯하다. 나아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가급적 많은 사람이 좋아하리라는 기대를 접은 다음에도 '확고한 취향을 가진 소수'와 소통하고 싶은 열망은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강렬해졌다. 그렇지만 아직 인디 음악의 시스템(혹은 인프러스트럭춰)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그쪽 관계자들은 요즘 지쳐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내가 진짜 비감해질 때는 '방송사나 기획사가 평론가를 무시할 때'가 아니다. 11월경 인터넷 상에서 '젊은애들'과 언쟁을 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다. 나의 글을 지켜본 듯한 익명의 열혈 인디 록 '매니아'는 나의 글쓰기가 인디 씬에 별반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잘라 말했다. '잘 몰라서 그렇게 말했겠지',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넘어가고 싶었는데, 그는 내가 주류 대중음악에 대한 비판한 것도 없다고 덧붙였다(그는 물론 한국의 주류 대중음악은 모두 '쓰레기'라고 간주하고 있었다). 1999년만 해도 조성모, H.O.T.나 이정현의 음악을 비판한 글을 쓴 적이 있다고 답변하자 그는 '그런 글은 본 적이 없었다'고 사과하면서도 어차피 주류언론계의 지면은 인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는 곳은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갑자기 그때 입었던 상처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 글은 과연 누가 읽을까. 미술평론가? 그들은 무엇으로 살까.
200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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