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VIEW:
  • 2000년 한국의 실용음악

돌아온 서태지 신드롬

2000년 한국의 대중음악계의 가장 큰 사건이라면 단연 서태지의 컴백을 들 수 있다. 지난 1996년 홀연이 은퇴를 선언하고 미국 어딘가에 살고 있던 서태지는 9월에 새 음반 발매와 더불어 귀국하여 방송과 공연 활동을 재개했다. 솔로로서는 두 번째 앨범인 이번 음반에 수록된 음악 스타일은 본인 표현을 빌면 '하드코어 계열의 핌프 록'이라는 장르를 선보였다. 하드코어 혹은 핌프 록이란 무거우면서도 신나는 비트와 강력하고 거친 기타 반복구(riff)가 이끄는 록 음악의 한 장르다. 또한 랩과 스크래칭(scratching) 등 힙합의 기법을 섞기도 한다.

서태지 신드롬은 단지 음악만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귀국할 때부터 뉴스를 만들었는데 일정을 앞당겨 8월 29일 김포공항에 내린 그날 전화사서함으로 귀국을 알렸다. 공항은 마중 나온 극성 팬들과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루었지만 서태지는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를 피하고서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왔다. 추석 연휴인 9월 12일 저녁에는 한 TV를 통해 그의 '컴백 쇼'가 녹화방송되었다. 이 방송사는 다른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서태지의 뮤직 비디오 "울트라 맨이야"를 방영했다. 한편 9월 17일에는 다른 방송사에서는 도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는 이례적으로 서태지 신드롬을 다뤘다.

서태지는 특정 방송국과 계약하여 다른 방송국에는 출연하지 않았고, 특정 방송국에서도 생방송 출연은 하지 않고 사전 녹화를 고집했다. 이는 그동안 방송과 관련된 대중음악의 병폐를 한순간에 드러내는 것이었다. 즉, 음악을 직접 연주하지 않고 음악을 '틀어주면서' 립씽크를 일삼았던 방송국의 안이한 태도가 문제가 된 것이다. 대중음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송국에서 음향시설을 제대로 관리할 만한 기술적 노하우가 없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셈이다. 서태지측은 제대로 된 음향을 들려주기 위해서는 '사전 녹화'라는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서태지의 '라이브 공연'도 구설수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일단 9월 12일 방영된 컴백쇼는 100% 라이브 연주가 아니라 미리 녹음된 음향을 틀어준 것이었다. 이에 대해 '서태지도 립씽크를 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10월 19일 서태지는 KBS가 주최한 <평화 콘서트>에 외국의 베테랑 뮤지션들, 그리고 조수미같은 순수음악인과 함께 출연했는데 몇 일 뒤 이 공연이 녹화방영되면서 다시 한번 논란이 발생했다. 전반적 음향상태가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발해를 꿈꾸며"라는 곡을 노래하다가 실수했던 것이다. 가창력과 연주력 등에 대한 시비와 '음향 제대로 못 잡는 방송국의 한심함에 대한 논란이 평행선을 달렸다. 서태지는 이 공연을 제외하고는 이후에도 미리 녹음된 음향과 라이브 연주를 반반씩 섞어 연주했는데 이에 대한 논란이 분분했다.

음악 그자체나 음악 활동 이외에도 서태지에 대해서는 온갖 말들이 끊이질 않았다. 15억이라는 거액을 받고 한 업체가 광고계약을 체결한 일도 놀라왔고, 심지어는 "야간 유흥업소 출입"같은 사생활까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대부분들은 황색 언론에서 만들어낸 것이었는데, 진위를 가리기 앞서 대중음악인의 활동이 이처럼 많은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실 자체가 이례적인 것이었다.  

서태지를 비판한 측이 서태지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가수들, 그리고 그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언론들 뿐만 아니다. 서태지에 대한 비판을 가장 강력하게 제기한 쪽은 뜻밖에도 인디 밴드들이었다. 9월 18일 홍대앞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는 '서태지를 위하여'라는 역설적인 이름의 연합공연이 열렸는데, 주최측은 '안티 서태지 연대'라는 곳이었다. '서태지는 거대한 기업이 되었다. 서태지의 우상화에 반대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언더그라운드 밴드들 일부가 모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일각에서는 서태지를 이용하여 관심을 끌려는 졸렬한 행동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조촐한' 행사까지도 언론과 방송의 관심을 불러 카메라를 든 취재진들이 평소에는 잘 찾지 않던 곳을 취재하러 찾아올 정도로 반향이 컸다. 이 공연 이후 PC 통신과 인터넷의 게시판들은 서태지와 서태지의 음악에 대한 평 뿐만 아니라 서태지에 대해 평하는 사람에 대한 평으로 가득 메워졌고 일부 게시판은 마비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슈퍼스타들 사이의 경쟁

서태지는 문화적 영향력은 압도적이었지만 대중적 인기의 정상은 조성모의 몫이었다. 1999년 말에 발매된 리메이크 음반 [클래식]에 이어 10월에 발매된 정규 3집 음반 [Let Me Love]도 100만장의 판매고를 가볍게 넘어서 1999년에 등극한 정상의 지위를 재확인했다. 발라드곡 "아시나요"와 댄스곡 "다짐" 등을 섞은 이 음반은 성급한 사람들의 입에서 '국민가수'라는 호칭이 나올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계속했다. 음악은 별달리 새로울 것이 없고 이전 작품들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었지만그런 비판이 대세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두 음반 모두 몇 개의 구설수에 휘말렸다. [클래식]의 경우 한국대중음악작가연대(회장 김명곤)측으로부터 "저작권자들과 상의없이 인세제가 아닌 정액제로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항의를 받았다. 여기에는 저작권과 관련된 한국의 음반제작관행의 문제점이 고스란이 드러났다. 즉, 판매량에 비례하여 수입의 일정 부분을 인세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한 곡 당 얼마'라는 식으로 정액(이른바 '곡비')을 지급하는 비합리적 관행이 아직도 보편적인데, 이런 제도상의 헛점이 낳은 문제였다.

두 번째로 "아시나요"는 음악이 아니라 뮤직 비디오가 문제가 되었다.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촬영된 이 뮤직 비디오에 나오는 군 부대에서 '군인들의 사기를 실추시킨다'는 이유로 뮤직 비디오의 방영을 금지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결국 뮤직 비디오는 문제가 된 장면을 삭제하고,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 전쟁에 참전 전우회의 명예는 남아있지 않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며 이 뮤직 비디오를 평화의 전사들에게 헌정한다"는 자막을 추가한 뒤 방송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 사건은 불필요할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군 당국의 엄숙주의와 민감한 문제를 소재로 삼아 스타를 홍보하려는 기획사의 상업주의 사이의 미묘한 마찰이었다.  

결국 10월 경에는 '서태지 대 조성모'라는 슈퍼스타 사이의 대립구도가 형성되었고 몇몇 사건도 발생했다. 앞서 언급한 서태지의 '사전 녹화 아니면 출연 불가'라는 방침에 대해 조성모측은 '특정 가수에 대한 특혜'라고 주장하면서 해당 방송국의 출연을 거부하였다. 서태지의 노래는 한 방송사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는 1위를 차지했지만, 같은 주의 타 방송사의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는 20위권 내의 순위에도 들지 않았다. 또한 서태지측은 11월 이후 음반 판매량을 음반산업협회측에 밝히지 않아 음반판매 차트에서 서태지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도 벌어졌다.

조성모와 더불어 하반기의 대중음악의 흐름을 주도한 또하나의 존재는 g.o.d였다. 이미 가수로서 성공을 거둔 작곡가 박진영의 지도를 받은 g.o.d는 세 번째 정규 음반인 [Chapter 3]를 밀리언 셀러로 만들면서 일약 대중음악계 정상의 지위에 올라섰다. 앨범에 실린 곡 중에서 부르더운 R&B 발라드 "거짓말"이 크게 히트했고 나머지 곡들도 '성의없다'는 평을 듣지 않았다. g.o.d는 연말에 열리는 방송국의 가요 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조성모와 나누어 가졌다.  

한편 소속 기획사(매니지먼트사)의 탄탄한 지원 하에 몇 년 째 아이돌 스타의 지위를 누려온 H.O.T의 지위는 약보합세를 보였다. H.O.T는 5집 앨범 [Outside Castle]을 발표해서 여전한 인기를 과시했지만 이전과 달리 '열렬한 극성 팬들' 이외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 현상을 보였다. H.O.T와 더불어 SM 엔터테인먼트사에 소속되어 있는 남성 그룹 신화, 여성 그룹 S.E.S, 신인 여가수 보아도 비슷한 활동을 보였다.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들은 강타(H.O.T의 멤버)의 음주운전 사고, 유진(S.E.S.의 멤버)의 대학교 부정입학 사건이 불거져 활동에 차질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들의 인기가 답보하는 현상은 세대별로 취향의 골이 깊어진 현 대중음악계의 문제점의 반영이라는 더욱 근본적인 지적이 있다. 핑클, 베이비복스같은 여성 그룹이나 샵, 쿨같은 혼성 그룹, 클론, 컨츄리 꼬꼬 등의 남성 그룹들도 인기를 유지했지만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를 넘어서는 경우는 없었다.

힙합민국 2000

기획사의 매니지먼트에 의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그룹이라는 한계를 넘어선 경우가없지는 않았다.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인 DJ DOC 였다. 4년의 공백 끝에 발표한 [The life...DOC Blues]는 방송출연에 얽매이지 않고도 70만장 가량의 판매고를 기록하여 재기에 성공했다. 더구나 기존 기획사에 거액의 위약금을 지불하고도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기획사의 꼭두각시'라는 비판을 받는 다른 그룹들과의 차이가 부각되는 프리미엄도 획득했다. 또한 이들은 댄스 그룹이 아니라 '힙합 그룹'이라는 정체성을 보다 강하게 내세웠고, 이를 통해 언더그라운드 힙합 그룹들과도 함께 무대를 서는 등 색다른 활동을 전개했다.

달리 표현한다면 힙합이라는 이름은 댄스 그룹의 '전위'의 상징이 되었다. 힙합은 개별 그룹이 아니라 일종의 사단을 만들어 냈다. 1999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두 멤버였던 양현석과 이주노가 YG 패밀리와 허니 패밀리라는 힙합 그룹을 만들어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였고, 이들 중 양군기획은 1TYM(원타임), 지누션 등을 스타로 길러내고 힙합 클럽도 운영하면서 힙합의 새로운 본산으로 자리잡았다. 이들과는 별도로 드렁큰 타이거, 조 PD, 업타운 등 '본토'의 물을 먹은 그룹들도 각자 힙합의 정통을 자처하면서 힙합은 하나의 씬(scene)이라고 부를 만한 성장을 보였다.

2000년 힙합 씬에서 특기할 만한 현상은 개별 그룹들의 앨범 발매 외에도 힙합 그룹들 여럿이 참여한 컴필레이션 앨범의 제작이 붐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연초에 발표된[2000 대한민국]에는 지상과 지하를 가리지 않고 힙합 그룹들이 총출동했고,  한 언더그라운드 클럽에 모이는 힙합 음악인들을 중심으로 제작된 [MP Hip Hop Project 2000 超]는 언더그라운드에서 나온 음반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판매량 차트 중상위권에 올랐다. 마스터플랜에 소속된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나 DJ 주석이 발표한 음반들은 히트곡은 없었어도 언더그라운드 힙합 매니아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힙합은 국제교류에도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지누션의 세 번째 앨범 [The Reign]의 레코딩에는 미국의 힙합 그룹 사이프러스 힐(Cypress Hill)의 비-리얼(B-Real), 일본의 엠-플로(M-Flo), 맙 딥(Mobb Deep)의 프로디지(Prodigy) 등 외국의 힙합 뮤지션이 참여했다. 그 전인 3월에는 홍콩의 DJ Tommy가 왔었고 4월에는 일본의 저명한 힙합 뮤지션 디제이 크러시(DJ Krush)측의 뮤지션 한 명이 클럽 마스터플랜의 작업을 도와주었다.

힙합에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닌데 힙합 특유의 그룹간 반목이 적정 수위를 넘어서는 현상이 발생했고, 드렁큰 타이거와 업타운의 멤버들이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불필요한 반목과 적대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솔로 가수들의 정체와 베테랑들의 컴백

남성 솔로 가수들 중에는 신승훈, 임창정, 김장훈, 김경호 등 이제 중견급이 된 가수들이나 상대적으로 신인급에 속하는 홍경민, 최재훈, 이지훈, 조장혁 등이 인기를 유지했지만 음악적으로 혁신적 돌파를 보여준 케이스는 없었다. 시장이 안정된 성장을 보인다면 음악적 혁신이 없다는 게 문제는 아니겠지만 전반적인 시장의 침체를 돌파할 만한 활약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이 점은 솔로 여가수들의 경우도 비슷하다. 솔로 여가수들은 1998-99년 경에 맹활약한 박지윤, 김현정, 백지영, 엄정화, 이정현, 소찬휘 등이 꾸준한 활동을 보였지만 이전의 음악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신인들 중에서는 제이(J), 박화요비, 이수영 정도가 주목받았는데, 이들도 'R&B 발라드'라는 기존의 형식을 답습하는데 머물렀다는 것이 중론이다. 어떤 신인 여가수의 경우는 뮤직 비디오 제작, 전광판 광고 등 '조성모 수준의' 과다한 투자를 서슴지 않아 대중음악계의 고질적인 고비용구조를 악화시켰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한편 '성인가요'라고 불리는 트로트는 태진아가 뮤직 비디오까지 제작하면서 "사랑은아무나 하나"를 히트시켜 건재를 과시했다. 그렇지만 몇 년 째 '4대 천왕'(태진아, 송대관, 현철, 설운도)이 지배하는 구도가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성인가요 중에서 새로운 시도를 보인 쪽은 '포크' 계열의 가수들이었다. 5월에는 한 방송국 주최로 <포크 페스티벌>이 열려서 임창제, 이장희, 시인과 촌장, 송창식, 양희은, 서유석, 해바라기, 조동진, 한대수, 이정선 등 1970년대의 '통기타 문화'를 주도했던 인물들이 후배들과 함께 오랜만에 같은 무대에 섰다. 이들 중 송창식, 윤형주, 양희은과 김세환은 11월 초 세종문화회관에서 이 <포크 빅 4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같은 무대에 섰다. 각 방송사에서도 평일 심야시간대에 1970-80년대 유행했던 대중가요를 연주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젊은 층으로부터 소외되는 중년들의 음악문화를 부활시키고자 노력했다. 이를 두고 '어덜트 컨템퍼러리'가 성립할 가능성을 보였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공연이나 방송이 베테랑 음악인들의 '신곡'이 아니라 '그 시절 그 노래'를 반복한다는 뚜렷한 한계를 보였다.

한대수는 여기서 예외로 볼 수 있다. '한국 포크송의 선구자'였던 한대수는 자신의 과거의 작품들을 묶어 두 장짜리 CD로 발매했다. 한 장은 1집 [멀고 먼 길](1974)과 3집 [무한대](1989)를, 다른 한 장은 4집 [기억상실](1990), 5집 [천사들의 담화](1991)을 묶었다. 이어 연말 경에는 새 앨범 [Eternal Sorrow]을 발표하여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렇지만 중국의 한국계 록 뮤지션 츠이 지엔(崔建)과의 합동 공연은 무산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트로트 가수가 아닌 베테랑 음악인을 프로모션하는 방법은 아직도 '개발 중'이다.

포크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들국화도 컴백했다. 이들은 컴백한 음악인들 중에 팬들의 박수를 가장 많이 받은 존재일 것이다. 1998년 재결성되었다가 멤버인 전인권이 마약사건으로 구속되어 다시금 활동을 중단했던 들국화는 9월 1일과 2일 예술의 전당 야외무대에서 컴백 공연을 가졌다. 물론 이 공연도 신곡 중심이라기보다는 예전의 히트곡을 중심으로 한 공연이었지만 솔로 가수가 아닌 그룹으로 활동하기 힘든 현실을 감안해 볼 때 이들의 컴백은 젊은 음악인들에게도 많은 자극이 되었다.

노장들이 서서히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한 현상은 '트리뷰트 음반(헌정 음반)' 제작 붐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음반은 김현식, 김광석 두 고인(故人)에 대한 헌정 음반이었다(김광석 트리뷰트 음반은 해를 넘겨 출시되었다). 헌정 음반은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음악인을 기린다는 취지와 흥행면에서 상대적으로 위험부담이 적다는 동기가 결합하여 당분간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페스티벌, 절반의 실패     

2000년 봄에는 여러 대형 음악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홍보가 많았다. 대표적인 대형행사는 미사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트라이포드 록 페스티벌 2000>과 속초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대한민국 록 페스티벌>이었다. 그렇지만 이 두 행사는 만 이들 중 가장 큰 페스티벌이었던 미사리와 속초의 페스티벌은 이런저런 사정을 이유로 취소되었고, 예매 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대형 행사를 취소해버리는 기획사의 상업주의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한편 동두천의 <SBS 소요 록 페스티벌 2000>, 창원의 <Forever Peace 2000 (Asian Music Festival)>이, 부산의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 2000> 등 지방에서 치러진 페스티벌들도 있었다. 반면 '인디펜던트'한 규모로 치러지는 페스티벌들도 지속적으로 개최되었다. 5년째를 맞이하는 <자유 2000>, 3년째를 맞이하는 <독립예술제 2000>, 최초의 여성 음악인 페스티벌 <여락여락(女樂女樂)> 등은 고정 팬을 확보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난하게 개최되었다.

음악 페스티벌은 지방자치제에 따른 지방정부의 문화행사와 결합하여 치러지고 있는데 몇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는 지역의 문화적 특징과 연계시키려는 노력이 많지 않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기획력의 부족에 따른 졸속 행사가 많다는 점이며, 마지막으로는 음향시설 등을 다루는 노하우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 꾸준히 개선시켜 나가야 할 부분이다.

기타

우선 연초에 있었던 16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대중음악인들이 목소리를 높였던 사건은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는 한국저작권협회의 운영에 불만을 품고 별도의 단체를 결성한 한국대중음악작가연대(공동대표 김명곤, 유영건)의 역할이 컸다. 이 단체에 소속된 작곡·작사·편곡자 207명은 1월 26일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하고 "낙천 낙선운동 대상 정치인들이 우리 노래를 로고송 등으로 사용할 경우 저작권법 위반 등으로 사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 결과 낙천·낙선 운동의 대상이 된 정치인들은 이 단체가 보유한 로고송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선거과정에서 이정현의 "바꿔"(최준영 곡), 엄정화의 "페스티벌"(주영훈 곡) 등이 로고송으로 인기를 얻기도 했다. 허벅지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 윤도현 밴드 등 인디 음악인들도 3월 14일 '총선연대의 낙선운동 지지'를 선언했다. 한 클럽에서 활동하는 8개 정도의 밴드는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각 정당과 후보자들을 패러디한 뮤지컬 음반 [개판 5분전]을 발매했다.

6월 일본 문화 3차 개방이 이루어진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 국적 음악인의 한국 공연은 전면 허용되었고, 음반의 경우 일본어 가창을 제외하고 모든 음반에 대한 개방이 단행되었다. 일본 문화의 개방은  어차피 개방될 것이라면 협력을 통해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을 개발해보자는 인식을 낳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문화의 개방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일본 대중음악을 모방해 온 한국 대중음악계의 문제점을 표면화시킬 전망이고, 이를 위해 보다 탄탄한 문화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인터넷 문화의 대중화와 더불어 현재 오프라인 중심의 음반유통을 온라인과 어떻게 연계시켜야 할 것인가의 논의도 많았다. 특히 온라인 상에서 음악 파일을 다운로드받아 음악을 듣는 방법, 이른바 디지털 배급(digital distribution)에 관한 문제점도 2000년 내내 논란이 많았다. '불법 복제를 통한 저작권의 침해'라는 음반산업계의 주장과 '공정한 사용이라는 소비자의 권리'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 있는 상태다.  

마지막으로 아직도 현대화되지 못한 음반유통을 개혁하기 위해 전문물류를 전담하는 한국음반센터 네트워크(KRCnet)이 출범했다. KRCnet은 중복물류에 따르는 고비용구조를 현대화시키고 전산 시스템을 통해 정보화를 이룩하겠다는 양대 목표를 가지고 출범했지만 업계 종사자들 사이의 이해관계의 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근대적'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표현을 벗고 현대화된 유통 시스템을 확보하여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비자에게 배급하는 작업이 원활하게 수행되기 위해서는 문화관광부 등 정부의 다각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 월간 <문화예술>에 게재됨.

앞화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