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OVERVIEW:

박진영의 꿈, 멋진 섹스 그리고 시사평론

대중음악, 섹스에 대한 공개토론을 제기하다

"'성인식'이라는 노래가 스무살이 됐다고 성관계를 요구하는 노래라고 해석한다면 책 내용도 안 읽고, 책제목 가지고 시비 거는 거나 같아요. 기독교윤리실천협의회에서 청소년들에게 안 좋다고 얘기했다는데, 한 남녀가 어릴 때부터 사랑을 했지만 성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참다가, 드디어 스무살이 돼서, 성인이 돼서, 사랑을 나누는 내용이 성경 어디에 어긋나는지 얘기해 줬으면 좋겠어요".

1년 전 쯤 박진영의 발언이다. 그가 작사·작곡하고 박지윤이 불러서 히트한 노래에 대한 그의 '소신'이다. 이 발언을 보면 박진영의 음악에 대한 일부 기독교 단체들의 문제 제기가 이전부터 존재했음도 알 수 있다. 마침내 지난 6월 21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포함한 52개 단체가 "대중가요 음란저질화를 우려하는 시민사회단체 일동"의 명의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가 '음란 저질화'의 주범으로 지목한 대상은 바로 박진영이 최근 발표한 음반 [Game(놀이)] 이다. '일동'은 이 음반이 "청소년에게 성 행위를 선동하는 해괴망칙한 노래를 담고 있다"고 판단하여 이 앨범에 '연소자 이용불가' 판정을 내리고 '청소년 유해매체'로 고시하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 이전에 싸이(Psy)의 1집 음반에 대해서도 '일동'은 '청소년 유해매체 고시'와 더불어 '음반의 전량 수거'를 요구한 적이 있다. 이 경우에도 가사에 담긴 '욕설'과 더불어 음반 표지와 가사 내용의 성적 표현이 문제가 되었다. 이미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이런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싸이의 음반에 대해 '18세 미만 이용불가판정'을 내린 바 있다.

논란이 불거지자 시민단체가 나섰다.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이하 '문화연대'로 약함) 등 33개 단체가 6월 29일 '일동'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홈페이지 등을 통해 "박진영의 노래는 물론 기윤실이 문제시했던 싸이의 노래에 대해서도 청소년의 들을 권리를 차단할 만큼 심각하거나 치명적이라고 보지 않는다"면서 "이는 사회적 공론과 합의 속에서 토론할 대상이지 억압하거나 근절시킬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문화연대에서는 당사자인 박진영과 싸이, 그리고 기독교윤리실천위원회 관련 인사 등이 참여하는 공개토론회를 제안하기에 이르렀고, 그 취지는 다음과 같다.

불행히도 공개토론회가 열리는 시점인 7월 6일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과거'에 해당되지만 마감에 쫓기는 필자로서는 '미래'에 해당되므로 그 결과는 지면을 통해 밝힐 수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6월 28일 기독교윤리실천위원회에서 돌연 토론회 불참을 선언하여 '김빠진' 자리가 될 전망이다. 막연한 추측이지만 '일동'은 토론회에 참여하는 일이 큰 득이 되지 못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 같다. 또한 토론회의 결과와는 무관하게 '18세 미만 이용불가' 판정을 받는데는 별다른 지장이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듯하다.

섹스의 패키징

논쟁의 구도는 '청소년 보호 대 표현의 자유'로 집약할 수 있다. 왠지 익숙하다. 작년의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에 대한 논란도 그랬거니와 이런 구도는 몇 년째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현재 한국 사회의 성 도덕의 붕괴와 성 범죄의 만연을 비판하면서 그 주범으로 대중매체를 꼽으며, 다른 한쪽에서는 검열과 규제의 관행이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결론 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기분이다. 당분간은 이런 논란이 계속될 듯하다.

이상한 점은 논쟁 과정에서 음악 그자체에 대한 논의는 없다는 점이다. 어떤 음악이길래 그럴까. 보도자료를 보고 쓴 것이 분명한 스포츠신문의 기사를 요약하면 "R&B와 솔에 힙합 비트가 결합된 흑인음악"이다. 이건 박진영이 데뷔 이래 지금까지 추구해 왔던 음악 스타일이고, 따라서 이전 작품에 비해 달라진 점은 거의 없다. 프로듀싱이 보다 세련되었다는 점을 차이라고 지적한다면 모를까. 어쿠스틱 기타 반주가 인상적인 요즘 히트곡 "내겐 여자가 있는데", 팔세토(가성) 창법으로 일관하는 "놀이", 여자의 섹시한 노래가 등장하는 "방문에서 침대까지" 등이 귀에 들어오지만 그다지 새롭다할 만한 것은 없다. 나머지 곡들은 영미권 평단에서 '인터체인저블(interchangeable)'하다고 말하는 보통의 대중가요 이상은 아니다. '나쁘다'는 는 뜻은 아니라 다시 들어보고 싶은 마음까지는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보다 노골적이 되었다고는 해도 그가 섹스에 대해 노래한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토록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적으로 크게 달라진 점이 없으므로 음악만으로 이번 사건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결국 세간의 시선처럼 음악적 변화보다는 음악을 패키징하는 방법의 변화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게 '변함없는' 그의 음악이 장수하는 비결일 지도 모른다. 우선 곡의 '제목'이 자극적이다. "음음음", "창살없는 감옥", "처음 만난 남자와", "너의 손끝" 등의 제목은 음악을 듣기 이전부터 어떤 '기대감'을 안겨준다. 게다가 그는 '저속하다'고 간주되는 주제를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논리와 언변을 갖추었다. 성교육 상담가 구성애를 "섹스를 숭고하게만 간주한다고 비판했고([한겨레], 2001.6.15), 부부 사이에 '변태 섹스'를 권장하여 화제가 되었다. 결국 '인기방송인' 전여옥으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조선일보], 2001.7.4). 이 정도면 언론 매체를 '데리고 노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

섹스로 인간들을 위계화하기

이번 음반의 패키징에서 그의 이미지를 빼놓을 수 없다. 세속적 기준에서 '잘 생겼다'는 기준에서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그의 이미지는 섹스 어필로 가득하다. 이번 음반의 홍보차 촬영한 사진들 대부분에서 그는 웃통을 벗고 있거나 몸에 꽉 끼는 러닝 셔츠(이른바 '나시')를 걸치고 있다. 면도기나 속옷 광고에 등장할 만큼 '잘 빠진' 몸매고, 1980년대 이후 미국 등지에서 '여피 컬처(및 여피 시장)'이 탄생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한 체형이다. 한국에서는 촌스럽게도 유동근과 노주현같은 '힘센 남자'의 이미지가 지배해 왔지만. '남자도 외모와 체형'이 중요하다는 말은 이제 진부해져 버린 이야기지만 아직 '전형'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박진영은 틈새를 노려서 성공을 거두었다. 자기관리를 잘 하고, 삶을 재미있게 즐길 줄 아는 멋진 남자로. 많은 여성들은 '귀엽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TV 스튜디오 방청석에 앉아서 별 것 아닌 상황에서도 "오~"하고 소리지르는 여성들 말이다.

그런데 이는 그가 말하는 섹스 역시 '어떤 전형'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는 이미 "노래에서 섹스를 이야기할 때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성인이 된 다음에 사랑하는 사람과 하라'는 것이다"([스포츠투데이], 2001. 6. 26)라고 못박은 바 있다. 섹스가 즐거운 놀이인지, 생식을 위한 숭고한 행위인지, 허무하기 짝이 없는 환상인지 또다른 무엇인지에 대해 여기서 논란을 벌일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그가 말하는 섹스가 어떤 이상형을 전제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피풍의 멋진 섹스를 꿈꾸는 것은 '그림같은 멋진 집을 갖고 싶다'는 꿈처럼 누구에게나 아무 때나 가능한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상품화든 뭐든 대중음악의 영역에서 섹스를 공론화한 그의 공로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혼자서 섹스의 다양한 양상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도 어쩌면 부당할 지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미심쩍은 점이 없지 않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가 섹스를 공론화하는 방식에는 특정한 미학적 코드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말하는 섹스는 '평범한' 여성지나 남성지만 봐도 질릴 정도로 많이 나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섹스란 인간을 위계화하는 또하나의 방식처럼 보인다.

물론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별 것도 아닌 일을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어주는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엄숙주의다. 도덕적 경건함은 애먼 창작자들의 자기검열을 야기하던 단계를 넘어 전략적 상업주의에 놀아나는 단계로 접어들은 모양이다. 과거의 검열과 규제가 비극적이고 공포스러웠다면, 지금은 희극적이고 짜증날 뿐이다. 머지 않아 '일동'이 항의하지 않는 문화상품은 청소년들도 구매하지 않을 것 같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박진영의 꿈이라는 '시사평론가'([한겨레], 2001.6.15)도 실현될 지도 모른다. 아무리 자극적인 것이라도 '상업적 동기'가 있다는 것을 '애들'이라도 알아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월간 [질러]에 게재됨.

음악만으로 이번 사건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결국 세간의 시선처럼 음악적 변화보다는 음악을 패키징하는 방법의 변화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게 '변함없는' 그의 음악이 장수하는 비결일 지도 모른다. 우선 곡의 '제목'이 자극적이다. "음음음", "창살없는 감옥", "처음 만난 남자와", "너의 손끝" 등의 제목은 음악을 듣기 이전부터 어떤 '기대감'을 안겨준다. 게다가 그는 '저속하다'고 간주되는 주제를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논리와 언변을 갖추었다. 성교육 상담가 구성애를 "섹스를 숭고하게만 간주한다고 비판했고([한겨레], 2001.6.15), 부부 사이에 '변태 섹스'를 권장하여 화제가 되었다. 결국 '인기방송인' 전여옥으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조선일보], 2001.7.4). 이 정도면 언론 매체를 '데리고 노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