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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view:<<벨벳 골드마인>> 두배로 재미없게 보기 <<벨벳 골드마인>>은 '음악평론가가 영화평론가 앞에서 잘난 척 할 수 있는 드문 영화'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영화평론가들로부터의 전화'에 시달리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영화의 소재인 글램 록이 한국에 깊이 소개된 장르가 아니라는 점은 악재가 아니라 호재다. 데이빗 보위(David Bowie), 이기 팝(Iggy Pop), 브라이언 페리(Brian Ferry),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루 리드( Lou Reed) 등의 글램 록의 선구자들의 퍼스낼리티가 영화 속에 어떻게 투사되어 있는지를 지적해주는 일이 나의 주요 업무였다. 또한 그게 직접적으로 1:1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고도로 매개되어 있고, 때로는 중첩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알려주는 일은 모종의 '우월감'마저 가져다준다(아직도 이렇게 속물적이라니...) 마지막으로 영화 제목이 뭐니뭐니해도 글램 록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던 데이빗 보위의 음악이 사운드트랙에서 누락되어 있다는 점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서도 나름의 '추리'를 덧붙여서 말해 주었다. 영화의 제목이 보위의 '많이 알려지지 않은 좋은 곡'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는 '기본'이 안되어있다는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일 뿐이다. 이런 건 그냥 가십거리를 제공하는 일일 뿐이다. 불행히도 나는 영화의 '의미'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고, 이는 나처럼 '스트레이트'한 섹슈얼리티의 소유자의 능력 밖이다. 이런 일은 성 정치가, 게이 인텔렉추얼, 퀴어 운동가 등의 '글래머러스'한 직함을 가진 '전문가'의 영역이다. 현재 한국에서 이 영역은 극소수에 의해 독점되고 있으므로 나같은 아마추어가 끼여들 곳은 못된다. 하지만 나도 감독이 '퀴어 영화'의 거장이라는 소문은 줏어들었고, 그가 왜 20년도 더 지난 음악 장르를 지금에 와서 새삼 재론하는가는 궁금하다. 그래서 '글램'이라는 용어의 사용법을 추적하게 된다. 제 버릇 남 못 주고. 글램 록이 사라진 뒤에도 음악계에서는 이 용어가 사용되었음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는 대체로 비난의 톤을 가지고 있고 그것도 험악한 편이다. 그건 '음악도 제대로 못하면서 외양만을 가꾸는'이라는 뜻이었다. 포이즌(Poison), 신데렐라(Cinderella), 워런트(Warrant) 등 머리카락을 잘 손질해 빗은 1980년대의 '팝 메탈' 밴드들이 단골손님이었다. 1990년대 이후에도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 어지 오버킬(Urge Overkill) 같이 '얼터너티브 록'에 속하면서도 무언가 귀족적이고 이방인 같은 밴드를 지칭할 때 글램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이때 나는 갑자기 영화에서 '이기 팝(Iggy Pop)의 분신'이라고 확신했던 커트 와일드의 모습이 커트 코베인을 많이 닮아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둔해도 한참 둔한 눈이다. 이름을 '커트'라고 붙인 것이 단지 감독의 장난기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이기 팝에게서 불가분한 남성중심주의, 이른바 마초이즘(machoism)은 영화에서 그다지 부각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이어졌다. 그래서 아제는 거의 잊어버린 커트 코베인에 대한 추억 어린 탐사를 하게 된다. 1990년대 초 록 음악의 '남근중심주의'의 전통이 시효만료되었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그 주장의 배경으로는 '얼터너티브 록'이라고 불린 뮤지션들의 성 교대주의(gender tourism)가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은 자신이 "정신적으로 게이(gay in spirit)"라고 말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과 "여성적 수동성"을 찬양한 (스웨이드의) 브렛 앤더슨이었다. 이들은 모두 양성적이지만 도착적이지 않고, 모호하지만 문란하지 않은 섹슈얼리티를 표상했고, 이는 평론가 앤 파워스(Ann Powers)가 '퀴어 스트레이트(queer straight)'라는 역설적인 용어로 표현한 것과 상통한다. 사운드트랙에 등장하는 신진 밴드들은 대체로 이런 특징들을 공유하고 있다. 아마도 감독은 영화 속에서 브라이언 슬레이드로 상징되는 탐미적 화려함과 문란함이 가지는 의미 뿐만 아니라 무의미('위장 자살')를 동시에 조명하려는 듯하다. 국내의 한 평론가가 <<벨벳 골드마인>>을 통해 "자신을 작품으로 구성하는 것, 스타가 되는 것이야말로 악몽으로 끝난 레이건 세대의 [성] 정치학을 부술 수 있는 길"(서동진, <<반짝이는 모든 것이 퀴어는 아니다>>, <<씨네 21>>, 1999.9.22)이라는 역설적 교훈을 도출하는 것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반론이 아니라) 의문이 남는다. '스타로 자신을 제작'했던 커트 코베인은 '정말로' 자살했다. 그 뒤에 등장한 '얼터너티브' 밴드들 중 일부는 요즘 공공연히 여성을 비하하고 다니고, 급기야 <<우드스탁 99>> 공연에서 '하드코어' 밴드 림프 비즈킷이 연주할 때는 강간 사건까지 벌어졌다. 영화와 직접 관련은 없는 사건이지만 동시대적 맥락임도 사실이다. 혹시 유미주의의 힘과 무력은 동전의 양면 아닐까. 하긴 모든 게 그렇지. 영화를 보고 나서 뿌듯함과 허망함이 동시에 밀려왔던 것은 그래서였나보다. 1999.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