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yunjoonProfile Articles |
Overview:
대중음악 속에 비친 가족 이야기
대중음악과 가족이란 두 개의 단어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는 무엇보다도 현대의 대중음악이 '청년 문화(혹은 청소년 문화)'와 연관되어 발전했기 때문이다. '결혼한 사람과 함께 사는 공간'인 청년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가족은 거칠게 말한다면 대중음악은 가족을 '반대하는' 음악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한국의 대중가요'로 논의의 폭을 좁히기 전 현대의 대중음악의 전반적 특징을 말할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대중음악인의 이미지는 이른바 '남성 반항아(male rebel)'다. 대중음악의 영웅은 기성 세대의 가치에 반항하는 젊은이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도어스>>는 도어스의 리더였던 짐 모리슨(Jim Morrison)의 모습이 나온다. 도어스의 음악 <끝 The End>는 이른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다루고 있고, 가사 한 부분은 불경스럽기 짝이 없다. "Father, I wanna kill you / Mother I wanna.....".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서양인들만의 독특한 상징체계에 지나지 않고, 그것마저도 철지난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잔재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보는 우리같은 '동양인'의 심정은 좀 난감하다. 도어스의 음악은 '청년 반항'이 절정에 이르렀던 1960년대를 시기다. 그렇지만 1970년대의 디스코나 펑크, 1980년대의 랩과 하우스, 1990년대의 각종 '얼터너티브' 음악에 이르기까지 대중음악의 소재는 거리와 클럽이었지, 가정과 학교가 아니었다. 랩의 경우 욕설의 주 대상은 'Your Mother'다. 한국의 상황으로 돌아와보자. 한국의 대중음악은 '소재의 제한'을 많이 받아 왔으므로 거침없는 표현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한국의 대중가요 역시 가족이라는 테마와 편하지는 않다. 오래된 예지만 일제 시대의 대중가요는 <황성 옛터>, <꿈에본 내고향>같은 예에서 보듯 '집 떠난 나그네'의 심사를 읊은 것이었다. 1945년 이후에도 대중가요의 정서는 해방 이후의 소란스러움이나 전쟁으로 인한 고난함과 무관치 않았다. 이런 정서가 안정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도시에 올라와 고향에 두고온 가족을 노래하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이는 이전 시대처럼 '사무치는 그리움'이라기 보다는 '정겨운 그리움'이었다. 한 예를 들어 <아빠의 청춘>같은 곡에서 묘사된 가정의 따뜻함은 당대 TV나 라디오에서 방영했던 가족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굳이 가사가 그렇지 않더라도 대중음악을 즐기는 방식이 그랬다. 대중가요는 가정오락이었다. 한 해가 지나는 시점에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앉아 '가수왕이 누군가'를 지켜보는 일은 현재 30세 이상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했던 일이다. 그렇지만 서양의 대중음악이 토착화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한국의 대중음악도 점차 가정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청년 문화가 태동하면서부터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거칠고 반항적인 정서보다는 도피적이고 자기도취적인 정서가 더욱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해변', '강변', '초원', '그곳' 같은 추상적 장소를 다룬 음악들이 많았고, 조금 구체적인 경우도 '명동'이나 '종로'같은 익명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가족같이 '서로 알 것 다아는' 공간은 대중음악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중음악인은 보헤미안이고 방랑자였다. 대중음악의 주제는 여전히 사랑이었지만 이 사랑은 결혼하지 않은 남녀 사이의 연애와 이별이거나 보다 초월적이고 추상적인 사랑이었다. 사랑과 평화의 <어머님의 자장가>, 산울림의 <어머니와 고등어>처럼 가족은 어쩌다 한 번쯤 되돌아보는 대상이기는 해도 대중음악의 지배적 테마는 아니었다. 1990년대 이후 특별한 변화가 있을까. 유심히 보면 '도시에 거주하는 핵가족'이 일반화되고 '가장'의 실질적 권위가 붕괴되면서 가족의 새로운 가치에 대한 성찰이 가끔씩 등장한다는 점이다. 신해철이 한때 '작아져 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읆조리면서 노래했고, 이른바 '민중가요' 계열의 노래 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난을 담은 곡들을 꽤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가장 주목되는 현상은 신세대 그룹들의 노래들이다. DJ DOC, 한스 밴드, G.O.D, 허니 패밀리 등은 2년 전부터 지금까지 부모 세대를 대상으로 비슷한 감정을 표현한 곡들을 발표해 왔고 대중적 반향도 얻고 있다. 'IMF 시대'를 살아가는 한 단면인 듯하다. 이는 그동안의 세대 갈등이 세대 화합으로 변화하는 징후일까. 그렇게 단순하게 말하기에는 최근 대중음악계의 '특정 세대(이른바 10대) 편향성'이 눈에 걸린다. 세대 화합이라고 단순히 보기보다는 최근의 청소년 세대의 특징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거칠게 비교하면 1980년대까지의 청년 세대들은 '기성 세대 없이 살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현재의 청년 세대들은 '부모'로 대변되는 기성 세대가 좋지는 않으면서도 그들 없이는 자립하기 힘든 것이 객관적 상황이다. 그래서 '부모처럼 살기는 싫지만 부모 없이 살 수 없다'는 심리가 보다 일반적이다. 몇 달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10대의 우상'인 H.O.T가 부모와 함께 등장한 모습을 보고 이런 생각을 굳히게 된다. 나는 현재의 청소년들이 보다 '자립적'이고, 보다 분방하기를 바라는 사람에 속한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전반적 구조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그렇게 될 전망은 별로 없지만, 만약 그렇게 되면 가족의 가치는 어떻게 되냐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안심'하는 편이다. 현재의 '4인 가족' 중심의 획일적 형태가 변화되면서 다양한 가족형태가 공존한다면, 가족에 대한 노래들도 지금처럼 '획일적'이지 않을 테니까.
1999.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