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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직업이 되기 위해 준비할 것들
몇 달 전 한 고등학교 교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일이 있다. 좀 낯선 부탁이었는데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고등학생 몇몇이 나를 찾아오겠다는 말을 전해왔다. 불행히도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진로 탐험' 비슷한 이름을가진 교과 과정의 일환이라는 말을 전했다. 장래 자신이 하고 싶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 그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학교에 결과를 보고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마땅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응낙하고 말았지만, 막상 그들을 만나고 보니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음악의 발전'에 평론가라는 존재가 과연 필요한가라는 평소의 의문은 차치하고서라도 같이 음악을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과 장래 평론가를 지망하는 청소년에게 이런저런 권유(혹은 만류)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배고프고 고달프다'는 말을 어떻게 하면 품위를 해치지 않고 할 수 있을까도 고민스러웠지만, 가장 고민스러웠던 것은 '평론가가 되려면 어떤 길을 밟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나서였다. 나 역시 특별한 길을 밟았던 것은 아니었고 지금도 그런 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별달리 뾰족한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자의든 타의든 평론가란 존재는 '공인'이 되어야 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어떤 음악인에 대해 좋지 않은 평을 할 경우 그들의 팬들이 반발하는 글들의 요지는 '객관적이어야 할 평론가가 주관적인 생각을 지면에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한 것은 평론가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착각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인의 기능을 담당해야 할 평론가라는 직업이 순전히 사적 선택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이다. 서두가 길었다. 이 글의 논지는 평론가 어쩌구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말의 요지는 평론가만이 아니라 직접 음악을 창작하고 연주하는 음악인도 사적 선택 외에는 다른 길을 밟을 수 없다는 점이다. 단기간에 한몫 챙기려는 스타 지망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평생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에 음악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훈련을 받고 자질을 검증받을 공적 제도는 없다. 몇몇 사립 대학이나 사설 학원들에서 기능을 연마하면 되지만 특별한 자격증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대중음악을 '시장 원리'에 맡겨두는 게 바람직한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답변할 때는 가치판단의 문제가 개입한다. 더구나 한국같이 검열 등 관의 개입에 의해 대중문화의 자유로운 발전이 저해된 나라에서 '공적 제도를 마련한다'는 발표는 그 자체 공포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과연 음악산업에서 자유시장 원리가 투명하게 작용하고 있는가라는 문제다. 내가 알고 있는 시장 원리란 '능력있는 사람 잘 나가게 하고, 능력 없으면 다른 일 알아보게 하는' 원리다. 그렇지만 굳이 음악산업 뿐만 아니라 한국의 산업구조는 이런 '원리'하고도 거리가 멀다. 하나의 예만 들자면 외국으로 유학을 다녀와서 선진적 기법을 익혀와도 여기서는 별로 써먹을 데가 없는 현실이 그것이다. 시장 원리보다는 연줄 원리가 더 강하게 작용하고 그래서 '줄을 잘 서야 이 일도 오래 해먹는다'는 말이 나온다. 최근에 또 한통의 전화를 받고 이제는 좀 변화가 생기나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다름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서울특별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라는 기관에서 개소식에 와달라는 부탁이었다. 사정 상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고무적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이 곳은 문자 그대로 청소년들이 장래 희망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기 전에 미리 체험해 보는 일을 조직하는 공공 기관이다. 대중음악 뿐만 아니라 몇 개의 분과가 설립되어 있고 이를 통해 직업훈련의 전초전을 치르는 셈이다. 물론 아직은 초보적이라서 이곳의 활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 지는 검증된 바 없다. 기술을 체득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경험하는 차원이라서 '자격증'같은 것과도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문화인이 공인이며 문화 역시도 직업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파리와 로마에서는 '거리의 악사'들도 오디션을 본 다음 자격증을 따야 '경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꼭 그렇게 똑같이 따라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런 발상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199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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