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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테크노
열풍을 바라보는
테크노 음악에 대한 한국인의 견해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새끼손가락에 마이크를 꽂고 노래부를 수 있는 음악', '붐-붐-붐-붐 거리는 리듬에 맞춰 도리도리춤을 출 수 있는 음악'이라고 테크노를 정의하는 사람들이다. 그 점에서 20대 미만과 40대 이상은 모처럼 의견일치를 보인다. 그 세대가 아니라도 이런 견해는 '다수설'이다. 다른 하나는 '저런 건 본래의(혹은 진짜) 테크노 음악이 아니다. 한심하다'는 소수설의 지지자들이다. 이들은 방송이나 언론에서 '정통' 테크노 팬이라고 소개된다. 이 중에 '어떤 생각이 옳은가'라고 묻는다면 난감하다. "첨단의 문화적 혁신을 일시적 트렌드로 만들어버리는 한국의 '클리넥스식' 문화 소비의 패턴"의 또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그래봤자 앞서 언급한 뒷 부류에 잽싸게 편입되고 말 뿐이다. 이런 흰소리라도 필요했던지 지난 여름 이후 '왜 이렇게 테크노 열풍이 부는가'라는 질문을 여기저기서 받는다. '세기말, 밀레니엄, 사이버, 디지틀' 등의 거대한 단어를 동원하여 나름대로 성심껏 설명했지만, 속으로는 "H.O.T가 테크노를 들고 나오려나. 기획사의 사전포석 아닌가"라는 별로 선량하지 않은 의심도 해봤다(이건 헛짚었다). 대략 의사전달이 된 듯하므로 불평은 여기서 그치자. 테크노 음악이 내게 흥미로운 것은 '나이트클럽의 댄스 음악'으로 출발한 음악이 대중음악의 창작과 향유의 메커니즘을 뿌리째 변화시키는 파장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테크노 음악에서는 기계가 악기가 되고, 디제잉(DJing: 직역하면 '디스크 절묘하게 다루기')이 음악적 실천이 된다. '가창력 좋은 가수'나 '능숙한 악기 연주인'이 아니라 '음원을 잘 다루는 사람'이 뮤지션이 된다. 따라서 음악을 듣는 사람도 '노래 따라 부르기'나 '가수 쳐다보기'같은 수동적 반응을 넘어서는 새로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한마디로 '입 닥치고 춤이나 추는' 일이다. 춤(댄스)이라는 행위는 '스타와 똑같이 따라하는 것'이나 '에로틱한 이성애적 쾌락의 추구'을 넘어 신체와 욕망을 능동적 재구성하는 실천이 된다. 물론 그건 사람마다 다양하다. 서구의 대도시들에서 문화 행사로 정착한 초대형 테크노 페스티벌에 몰려든 군상 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런데 이런 말은 우문현답이 아니라 동문서답이다. 현재의 일시적 트렌드를 진단해 달라는 질문에 대해 '디지틀 테크놀로지가 음악 생산에 미친 심오한 파장' 어쩌구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갑자기 생뚱맞은 상상력이 발동한다. 우리는 꽤 오래 전부터 '테크노' 음악을 들어왔다는 생각. 전자오락실과 PC방의 효과음부터, 노래방에서 나오는 MIDI 반주를 거쳐, 관광버스 카스테레오에서 울려퍼지는 '도롯도 메들리'까지. 그리고 TV에 나와 립싱크를 하는 가수들을 위해 틀어주는 MR('미리 녹음된 반주음악'이라는 뜻의 업계 용어이자 한국 사투리)도. 좀 엉뚱해 보이지만 테크노 음악을 '테크놀로지에 의존하여 만들어진 음악'이라고 넓게 정의한다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다. 지난 십여년간 한국의 음악 문화에서 이것들만큼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온 것은 없다. 그래서 마지막 반문: 그런데 엄청난 변화는 이런 것들밖에 없는가?
1999.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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