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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이 예술이 되는 과정은?
1 연말의 음악 문화는 방송사마다 관행처럼 되풀이하는 '가요 대상' 시상식이 중심이 된다. 내가 어린 시절 이 프로그램은 온 가족이 모여앉아 시청했다. 요즘은? 조금은 달라 보인다. '애들'은 가요대상 시상식을 보고 싶어하는 반면, '엄마들'은 방송대상 시상식을 보고 싶어한다. 다소의 채널 싸움도 있을 법하다. '아빠들'은 채널 선택권을 빼앗긴 지 오래이다. TV 수상기가 여러 대 보급되어 있거나 '애들'이 거리에 나가 '지들끼리 마음대로 제멋대로 자유롭게'(어떤 소설가의 문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놀고 있으면 다행이다. 가요 대상 시상식에서도 한국 대중가요의 관행인 립씽크는 여전했다. 그래서 '보통의' 음악 콘서트가 더 특이해 보인다. 특이한 콘서트의 주인공은 시간 순으로 조용필, 한영애, 신중현이었다. 모두 한국 대중음악의 베테랑들이다. 조용필은 대중음악인 최초로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한영애는 그 옆에 있는 자유소극장에서, 신중현은 힐튼 호텔 컨벤션 홀에서 각각 음악인의 이름을 걸고 하는 공연을 가졌다. 조금 더 부연한다면 조용필과 신중현은 넓은 장소에서 1회 공연을 가졌고, 한영애는 열흘 동안 장기 공연을 가졌다. 이 글은 공연 리뷰는 아니다. 한국에서 대중음악인이 자기의 이름을 내걸고 성공적인 공연을 가지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이 공연들이 특기할 만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뿐이다. 방송국 주최의 '공짜' 공연문화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이 점을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위 공연들은 '장소'가 이제까지 대중음악과 인연이 먼 곳이었다는 점에서 뜻깊다. 한마디로 위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보러온 사람들은 대중음악을 '예술'로 간주했다. 그게 예술'처럼' 간주한 것인지 정말 예술로 예우한 건지는 보다 상세히 조사해 볼 일이다. 어쨌든 장소에 어울리게 '요즘' 대중음악 공연장의 일반적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괴성을 지르며 스타의 이름을 연호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가끔씩은 술렁대는 모습도 있었지만 공연은 '무사히' 끝나서 문턱을 낮춘 공연장의 관리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질문을 던지자. 대중음악 중 '일부'는 이제 예술로 존중받기 시작했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이런 우문으로 시작해 보자.
2 대중음악이라는 주제가 이 책을 포함한 '진지한' 서적에 다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특이한 현상이다. 진지할 뿐만 아니라 진보적 성향의 서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진보적 사회운동(더좋은 용어를 떠올리지 못해서 면구스럽다)이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생각되는 1980년대에는 생각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그때까지도 대중음악은 '연예'에 지나지 않았고, 조금 과장을 보태서 말한다면 민중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마약같은 존재로 간주되었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명확히 판단할 수 없지만 적어도 당시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는 그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음악인들 중 조용필은 1980년대 내내 가장 인기 있는 슈퍼스타였고, 신중현은 그만큼의 인기는 못 받았지만 더 큰 추앙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렇지만 두 사람 모두(그 외의 다른 음악인들도) 사회운동 세력과의 관계는 아무 것도 없었다. 모호한 관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두절된 관계였고, 때로는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사회운동 세력에게 이들은 '대중음악인으로서는 괜찮은' 정도였지, 문화적 아이콘같은 건 아니었다. 앞에 대중음악인이라는 용어를 보다 날 것으로 부르는 것이 허락된다면 이들은 여전히 '딴따라'였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들이 '예술가'로 대우받기 시작하는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대우가 1980년대의 사회운동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그것을 반대한 사람들이 아니라 당시 그것을 지지하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지 '시대가 바뀌었다'는 말로는 충분한 답변이 되지 못할 것이다. 또한 '1980년대가 극히 예외적인 시기였다'라고 말해도 변명 이상은 되지 못할 듯하다. 현재의 상황에서의 역학관계를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3 아이러니다. 대중음악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탄생한 1990년대가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가장 '천박한' 시기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 말이다. 아마도 이 글의 독자들 대부분은 현재의 '가요'에 대해 낯설어 하거나, 반감을 가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른바 '댄스 가요'라고 불리는 현재 한국 대중음악의 지배적 조류는 '음악같지도 않다'는 반응을 듣고 있다. 진지한 담론은 천박한 현실에 대한 반감이다. 그런데 정말로 대중음악은 일정한 과도기를 거친 후 1960년대 이전의 시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대중음악이 정말 '순수한 연예'이었던 시기 말이다. 곡마단과 악극단과 극장과 밤무대로 이어지는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 말이다. 연말의 '가요 대상' 프로그램에 트로트가수와 댄스가수들만 출연하는 걸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을 굳히게 된다. '발라드 가수'가 대상을 받기는 했어도 전체적인 구도의 변화가 보인 것은 아니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런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를 그리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 사람에 속한다. 거기서 나름의 민중성을 발견하는 시도는 나같은 먹물한테는 머나먼 일이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유행했던 신신애의 "세상은 요지경"같은 곡에서 사회비판의 메시지를 듣는 일은 내게는 낯선 일이다. 그런 건 예술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정리하자. 대중문화가 진지한 예술로 취급받을 때는 그것이 일상과 멀어질 때다. 가까움과 멈을 표시하는 여러 가지 축이 있지만 시간과 공간이라는 익숙한 축을 두 개 설정해 보자. 공간의 축으로는 가까워도 시간의 축에서는 멀어지는 소리는 '예술'로 들려온다. 그때의 삶을 조망한다는 느낌이 밀려든다. 앞서 언급한 신중현, 조용필, 한영애가 그런 경우다. 반면 시간의 축에서는 가까워도 공간의 축에서는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 '외국'에서는 대중음악에 불과한 것을 여기의 '매니아'들은 예술로 존중한다. 매니아들을 무시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공간의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오늘은 시간의 문제, 시간적 거리의 문제에 집중해 보자. 이렇게 말하고 나서도 대중음악이 예술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모호하다. 모호하다는 말만 가지고는 정말 모호해 보인다. 문화의 예술화 과정이 있다고 하면 덜 모호할까. 부동의 존재를 두고 예술인가 아닌가라는 기준을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가변적인 존재를 예술(혹은 非예술)로 만드는 '과정'이 있는 것이라고 말해보자. 이것만으로도 좀 불명확하다. 쉬운 말로 하자. 대중음악 중에서 예술로 취급받는 것은 대중성이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는 경우다. 한 예를 들어 노래방 메뉴에서 오래 남아있으면 예술에 가까워지고, 이내 사라지면 예술로부터 멀어진다. 즉, 대중음악에서 예술성은 '대중성의 하나의 형태'이다. 조금 명확해졌기를 바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요즘의 댄스가요들은 예술이 될 전망이 없어 보인다. '댄스 가요는 하루살이성 가요'라고 전제할 때 하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공상도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 30년쯤 지나서 지금의 십대 소녀들이 H.O.T나 젝스키스의 무대에 밍크 코트를 입고 가서 점잖게 앉아 '노익장'을 과시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릴 지도. 지금은 잘 상상이 가지 않지만.
4 돌아오자. 대중음악에 예술화되는 부단한 과정이 있을 뿐이라면 다른 대중문화의 형식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한가지 지적할 점이 있다. 그것은 대중문화가 예술이 되는 과정은 산업화되는 과정과 불가분하다는 점이다. 이상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예술과 산업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관습을 유지한다면 이해하기 힘들다. 이 산업은 통상 '문화 산업'이라고 불린다. 문화 '산업'인가 '문화' 산업인가. 즉, 그저 하나의 산업에 지나지 않는가, 조금 특수한 산업인가. 재화나 서비를 제조하여 판매하는 산업인가, 아니면 조금 다른가. 거칠게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면 20세기 중반까지는 전자로 정의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음악산업은 '음반'을 판매했고, 영화산업은 '필름'을 판매했다. 그 이후에는? 재화나 서비스를 판매한 대금 이외에 저작물을 소유한 권리를 보유하고 이를 사용한 사람으로부터 사용료를 수취한다. 그 권리는 저작권이라고 불린다. 예술저작물에 대한 권리는 창작자가 본원적으로 소유한다. 좀 풀어서 설명하자. '아티스트'도 이전에는 자신의 행위(연기, 가창, 악기 연주 등등)의 결과에 대한 대가를 수취하는 게 전부였다. 스타들의 경우 액수가 좀 크기는 하지만 형식으로는 어쨌든 '근로소득'이었다. 하지만 저작권료는 일종의 '재산소득(불로소득?)'이다. 앞의 논점을 다른 용어로 정리해볼 수 있다. 대중음악인이 예술가(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저작권 제도에 의해 조절되는 산업 시스템에 포섭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앞의 논점과 관련짓는다면 저작권료를 오랜 시간 동안 수취할 수 있는 음악이면 예술로 대우받는다. 21세기가 '문화의 세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문화산업이 최후의 승부처라는 이야기도. 문화마저도 국제경쟁력의 문제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도 이제 문화를 수출해야 한다'는 주장에 솔깃해야 할까. 다른 문화 영역은 잘 모르지만 대중음악의 경우 이런 비현실적 꿈은 접는 게 나을 듯하다. 한국 대중음악의 문제는 국제경쟁력이 없는 상태에서 자국 시장이라도 보호할 수 있는 비교우위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스타 시스템'은 이 점에서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대중음악을 예술로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21세기(랄 것도 없이 지금부터의 시기)는 자국의 문화형식들을 예술로 만드는 일의 경쟁이 시작될 전망이다. 하루살이성 가요로는 승산이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대중음악을 예술로 만드는 과정은 한국인에게는 낯선 일이었다. 오래된 것부터 예술로 인정해두는 일이 급선무일까. 필요한 것은 송구영신이 아니라 온고지신일까. 내 나이 연배의 음악평론가들은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 대중음악 데이터베이스 작업' 같은 것 말이다. 나 역시 신중현의 공연을 보고 난 뒤 그의 주옥같은 명곡들을 너무나도 오랜만에 들으니 생각이 조금 기울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조금 유보해 두자. 가뜩이나 새천년이 되었다고 난리떠는 모습들이 많은 요즘이니.
199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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