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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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하는 이은미보다 립씽크하는 g.o.d가 좋은 이유?(original version)

언젠가 서울 인근의 위성도시의 문화센터에 강의를 갔다가 입구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았다. 때마침 지역 축제가 열릴 때라서 이런저런 행사를 안내하는 포스터였다. 여러 행사들 중의 하나의 제목은 '라이브 가수 초청 공연'이었다. 라이브 가수? 그렇다면 가수들 중에는 라이브 가수 말고 '라이브 안 하는 가수'도 있다는 뜻이렸다. 어쨌든 나는 세상의 변화를 따르지 못하는 두뇌 회전 속도를 원망해야만 했다.

'라이브 가수'에 속하는 이은미도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그녀는 최근 잡지에 <당신들도 가수인가>라는 글을 게재했는데 이 글로 인해 그녀의 홈페이지를 비롯한 인터넷 공간 여기저기가 시끌벅쩍했다. 이은미의 글의 요지는 "립싱크하는 가수도 가수냐?"라는 것이었는데 물론 한국에서 실명이 등장하지 않는 글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경우는 없다. 이 글도 마찬가지였는데 특히 S씨를 문제삼은 부분이 화근이 되었다. 특히 서태지를 '마케터'라고 표현한 게 화근이 되었다. 앞뒤의 맥락을 살펴보건대 S씨는 분명히 서태지를 가리켰다. 이로 인해 서태지의 팬들이 항의하는 일이 발생했다.

서태지 팬들의 항의는 정중한 문제제기부터 거친 비방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였는데, 요지는 비슷했다. 서태지 역시도 립씽크가 난무하는 가요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런 그를 보통의 댄스 그룹들과 함께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일주일쯤 지나서 사태는 정상화되었지만 뒷끝은 그다지 개운치 않다. 일단은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지난 가을 서태지의 공연을 보고 와서 '100% 라이브 연주가 아니었다'라는 식의 글을 썼다가 유사한 사건을 치른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더욱 근본적이다.

한 가지 지적할 점이 있다. 현재 대중음악계('가요계')에서 라이브란 '노래만 진짜로 부르면' 된다. 요즘은 다시 시들해졌지만 TV 화면 위에 자막으로 '립씽크', '라이브'라고 적어 놓는 일이 있는데 그때 라이브란 이런 의미다. 즉, '반주'는 CD나 테이프에 미리 녹음해온 것을 틀어놓고 노래만 부르면 그게 라이브다. 그러다보니 'MR' 혹은 'MR 반주'이라는 콩글리시도 탄생했다. music recorded 라는 말의 약자라고 한다. 'MR 틀어놓고 노래한다'는 말은 '반주 테이프를 미리 녹음해서 틀어놓은 상태에서 노래부르는 것'을 말한다. 가수 C의 경우 수십명이 넘는 오케스트라를 뒤에 놓고 '라이브' 공연을 한 일이 있는데, 그때 오케스트라 악단들은 악기를 연주하는 '시늉'만 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대한 변명이 없지는 않다. SM 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사장님 등 현재 가요계를 주름잡고 있는 실력자들은 '좋은 춤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립씽크가 불가피하다. 가수라고 부르지 말고 싱잉 엔터테이너라고 불러달라'는 식으로 주장한 바 있다(그런데 그분은 '싱잉'이 '노래하는'이라는 뜻도 모르나 보다). 다른 사람들은 '방송국의 음향장비의 노하우가 부족해서 라이브 연주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양보해서 이런 주장을 존중'한다면, 립싱크로 부르는 노래가 차라리 '생생하다(live)'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제는 더욱 근본적이다. 우리가 보는 '뮤직 비디오'들은 모두 립씽크다. 아무리 라이브를 잘하는 록 밴드라고 하더라도 뮤직 비디오를 찍을 때 라이브로 노래하고 연주하는 경우는 없다. 라이브를 보는 것은 연주자가 실수할까봐 두려워서 음반(레코드)을 듣는 게 마음 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댄스 가수들의 립씽크를 보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요즘 댄스 그룹들이 주는 즐거움은 외모, 춤, 의상 등 노래 외적인 것이 많고 우리같은 기성세대에게는 고역이지만 자라나는 청소년들한테는 나름대로 절박하고 소중한 것이니 인정하고 넘어가는 게 상책이다.
그래도 여전히 찜찜하다. 그때 문득 예전에 보았던 TV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미국의 '댄스 가수' 마돈나의 전성기 때의 일이다. 한 곡을 부른 뒤 다름 곡을 부르기 전 그녀는 다음같이 말했다. "이번 노래는 립씽크입니다. 그 대신 춤을 더 열심히 추겠습니다"라고. 데뷔 초기에는 음악인으로서의 자질을 의심받기도 했지만 지금 그녀를 '아티스트'라고 부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럴 수 있는 '가수'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게 가수를 키우려는 매니저는 얼마나 있을까. '라이브와 립씽크 중 어느 것이 좋으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둘 중 하나밖에 못하는 상황, 그리고 그게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현실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월간 <앙앙>에 게재됨.

* 이렇게 써보냈는데 기자 언니한테 '빠꾸'먹었습니다. "난 더 이상은 못한다. 배째라"라고 메일을 보냈는데 그 기자 언니가 징징거리면서 메일을 보내면서 "기자 입장에서 빵꾸나면 하늘이 노랗다"는 식으로 말해서 아래와 같이 수정했습니다. 근데 뭐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여성지'나 '남성지'에 쓸 때 의외로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제 스타일대로 쓰면 '어렵다'는 반응이 오고, 나름대로 쉽게 풀어 쓰면 '성의없다'는 반응이 옵니다.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는 말이 나오는데 그러니까 앞으로는 정중히 거절해야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원고청탁에 나선 기자 언니, 오빠들 대부분은 매우 집요합니다 -_-

라이브하는 이은미보다 립씽크하는 god가 좋은 이유?(revised version)

언젠가 서울 인근에 위치한 시민단체에 강연을 하러 갔다가 입구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았다. 때마침 지역 축제가 열릴 때라서 이런저런 행사를 안내하는 포스터였다. 한 행사의 제목은 '라이브 가수 초청 공연'이었다. 라이브 가수? 그렇다면 가수들 중에는 라이브 가수 말고 '라이브 안 하는 가수'도 있다는 뜻이렸다...

'라이브 가수'에 속하는 이은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그녀는 최근 잡지에 <당신들도 가수인가>라는 글을 게재했는데 이 글로 인해 그녀의 홈페이지를 비롯한 인터넷 공간 여기저기가 시끌벅쩍했다. 글의 요지는 "립싱크하는 가수도 가수냐?"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실명이 등장하지 않는 글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경우는 없는데, 이 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S씨를 '마케터'라고 표현한 게 화근이 되었는데, 앞뒤의 맥락을 살펴보면 S씨는 서태지를 가리켰다. 이로 인해 '팬들의 거센 항의'가 발생했다(나 역시 지난 가을 서태지의 공연을 보고 와서 '100% 라이브 연주가 아니었다'라는 식의 글을 썼다가 논쟁에 휘말린 터라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문제는 '대중'들은 립씽크를 보는 것을 라이브 연주를 보는 것보다 편안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라이브가 립씽크보다 우월하므로 대중은 '우매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말일까.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방송국의 음향장비의 노하우가 부족해서 라이브 연주는 곤란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따지고 들면 문제는 복잡하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문화선진국이라는 영미권의 경우에도 뮤직 비디오들은 모두 립씽크다. CD플레이어나 라디오로 듣는 음악들도 수차례 오버더빙한 것들이다. 쉽게 말해서 목소리든 악기든 '한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어쩌다가 공연을 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CD에 레코딩된 것과 '비교'하여 듣지 그 반대는 아니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현대 사회는 인공적인 것(레코딩)이 진정한 것(라이브)를 압도하는 사회고 음악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도 TV는 물론 공연도 '레코딩'과 '라이브'를 반반씩 섞은 경우가 많다. 특히 테크노 계열의 공연은 이런 경우가 태반이다. 한 예를 들어 프로디지(the Prodigy)같은 테크노 스타가 대표적인데, 이들은 미리 프로그래밍한 음들을 '틀어놓고' 공연을 한다. 그래도 청중을 앞에 두고 하므로 '라이브 공연'이라고 부르는데 큰 하자는 없다. 요즘은 록 밴드같은 경우도 악기의 실시간 연주(real play)와 레코딩된 음향을 결합하는데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립씽크냐, 라이브냐라는 양자택일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실제로 많은 라이브 공연은 거기를 애써 찾아간 사람을 실망시키는 경우가 많다. 분위기에 취해서 놀다오는 즐거움은 있어도 정말로 음악을 감상할 만한 시간이었는가는 재고할 여지가 있다. 음향장비가 열악하다든가, 재정이 취약하다든가하는 불리한 조건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대중의 감성이 '라이브보다 레코딩이 익숙한' 단계가 되었다면 무언가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곤 해도 현재 가요계의 립씽크 관행은 그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잘 알다시피 한국 가요계의 시스템은 '스타가 되기 위해 음악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시스템이다. 이건 팬들도 마찬가지인데, 한국의 가요 팬들은 스타를 보기 위해 '가요'를 듣는다. 현재 한국의 '가요'에서 음악의 비중은 별로 크지 않다. 그건 스타가 연기할 때의 사운드트랙, 혹은 배경음악일 뿐이다. 문제는 음악을 연주하는 방식이 좋은가 나쁜가이지, '립씽크는 나쁘고 라이브는 좋다'는 아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립씽크 시스템'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중이 편안하다는 이유로 대중음악을 TV 화면 안에 가두고, 음악 테크놀로지가 개방한 음악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