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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TV 5반 세기의 소사

MTV, 록 음악과 청년문화를 연쇄살해하다: 1981- 1985

이제 국내에서는 거대기업간 인수·합병에 관한 뉴스는 아무도 놀라지 않을 일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1979년에도 그랬다. 그 해 9월 14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는 워너 케이블 코퍼레이션(Warner Cable Corporation)의 주식 50%를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아는 사람이나 아는' 이 경제 뉴스는 결과적으로 "음악 방송에서 세 번째의 돌파(breakthrough)"라는 혁혁한 전과를 세우고 말았다. 1955년 히트 싱글들을 틀어주는 AM 라디오의 'Top 40', 1967년 '프로그레시브 록'을 방송했던 FM 라디오의 '앨범 록 스테이션' 이후 세 번째의 돌파. 그것이 바로 MTV이다.  

'조인트 벤처'는 워너 에이멕스 케이블 커뮤니케이션(Warner Amex Cable Communication: WACC)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뒤에는 Warner-Amex Satelite Entertanment Company(WASEC)로 독립했다. MTV는 WASEC가 소유하고 있던 네 개의 채널 중 하나로 편성되었고, 1981년 8월 '24시간 논스톱 채널'인 MTV가 세상에 태어났다. "(텔리비전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는 일군의 청년들이 존재한다"는 MTV 초대 CEO 존 슈나이더(John Schneider)의 일성과 더불어. 그런데 1981년의 청년들이 누구한테 무엇을 무시당한 것일까?

그 이전까지 청년문화의 꽃은 '록 음악'이었다. 지겨운 이야기라고? 어쨌든 록 문화는 거리와 클럽의 문화였고, 1970년대에는 대형 스타디움으로 '재영토화'되는 양상이 없지는 않았지만 '거실에 놓인 TV'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었다. 어쩌다가 록 스타가 TV에 등장하는 일이 있었다고는 해도 라이브 연주 비슷한 세팅 위에서 어색하게 립씽크를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소파나 침대에 앉아 TV를 보는 일은 '계집애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것이 록 문화의 '편견'이었다.

하지만 록 음악도 1970년대 말 음악산업의 '대불황(The Great Depression)' 앞에서는 용빼는 재주가 없었다.  더구나 대불황은 음악산업에 떼돈을 안겨주던 바로 그 시스템이 삐걱거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천문학적 계약금을 선금으로 지급하고,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리무진으로 모셔야하는 록 스타들을 감당해 내는 일은 호경기 때나 가능한 것이었다. 두고두고 쏠쏠하게 팔리는 '록 음악의 명반'들도 "회전율이 느리다", "이노베이션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는 비즈니스계의 진단 앞에서는 무력해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예술도 하고, 돈도 잘 벌던 록 음악의 황금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MTV는 가정의 거실 분위기에 맞게 록 문화에 남아 있는 거친 요소들을 말끔하게 다림질하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삼았다. MTV가 처음으로 송출한 작품이 버글스(The Buggles)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것은 이들이 '살해'할 목표물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초창기 MTV 화면을 주름잡았던 이미지가 대서양 건너 '두 번째 영국인의 침공'을 가해온 이른바 '헤어 컷 밴드(haircut band)'들이었다는 사실은 이런 견해를 뒷받침해 주었다. 중력에 반대하는 헤어스타일을 한 예쁜 남자들이 확실하게 프로모션되면서 음악산업은 이마에 주름살이 가득한 록 스타들과 작별을 고했다. 스타가 되기 위해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는 방법 대신에 '행운의 도약(lucky break)'이라고 불리는 길이 탄생한 것이다.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영국인의 침공' 뒤에는 반드시 '미국인의 응답'이 있는 법. 아니나 다를까 1983년부터 1985년까지 MTV는 마돈나(Madonna)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차지였다. 이들의 뮤직 비디오는 '로큰롤의 역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차라리 "달라스(Dallas)"나 "다이너스티(Dynasty)"같은 TV 시리즈물과 비슷하긴 했지만, 강한 자아(ego)와 '육체적 자본'을 가진 새로운 아티스트가 탄생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이클 잭슨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처음에는 MTV측에서 "대기해 달라"는 말을 듣다가 CBS(현 소니)의 으름짱에 못 이겨 겨우 방송을 탈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제는 에피소드로나 전해 내려올 뿐이다.

MTV는 비판을 수용하면서 더욱 살찐다: 1986-1990

반드시 준수된 것은 아니지만 MTV는 '내로우 캐스팅' 원칙 하에 움직였다. MTV 전파가 대도시를 넘어서 미국 중서부의 도시와 시골까지 확대된 것은 1983-4년부터다. 들쭉날쭉하기는 했지만 헤비 메탈 비디오, 이른바 '퍼포먼스 클립(performance clip)'이 방송된 것도 새로운 시청자의 구미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24시간 논스톱 뮤직 비디오 방영 대신 전통적 텔레비전의 포맷을 닮아가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이유다. 이는 초기의 '내로우 캐스팅 원칙'과는 모순되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1983년 120만 명까지 증가한 가입자 수가 1985년 60만 명으로 감소하면서 선택한 고육책이었다. 하긴 전국 라디오 방송이 없는 나라에서, 음악잡지도 배달되지 않는 오지에서도 볼 수 있는 매체의 활용범위를 좁히겠다는 의지는 미국의 기업가 정신과는 거리가 멀긴 하다.

1985년 바이어콤 인터내셔널(Viacom International)로 주인을 바꾸면서 MTV는 내로우 캐스팅 원칙을 버리고 TV를 통한 음악방송의 '독점권'을 본격적으로 행사하기 시작했다. 헤비 메탈만 하더라도 '무시당하고 있는 청년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묘한 것은 비판의 여론이 있으면 이를 즉시 수용하여 비판도 무마하고 독점권도 넓히는 MTV의 신통한 능력이었다. 헤비 메탈의 비디오 클립이 나날이 증가한 것도 '대도시에 사는 애들의 말랑말랑한 음악이 너무 많지 않느냐'는 비판에 대한 응대였고, '어쨌든 너무 젊은 애들 취향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자 '어덜트 컨템퍼러리'를 전문으로 방송하는 VH-1을 만들었다. "주부를 위한 뮤직 비디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뮤직 비디오"라는 비아냥이 있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 뿐만 아니다. 마이클 잭슨 사건과 관련해서 '인종주의'의 혐의가 불거졌던 사건을 망각의 늪으로 보내려는 듯 1988년 8월 <Yo! MTV Raps>를 만들어 힙합 문화를 포용했고, '립씽크하는 모습만 계속 보고 있자니 짜증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1990년 [MTV Unplugged]를 신설하여 불만을 잠재웠다. 뮤직 비디오를 비판한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의 1986년 히트곡 "Money for Nothing"을 로고송으로 사용해서 '비판야, 찬양야'라는 혼동을 안겨준 것도 비슷한 전술이었다.

결과는? 첫 전파를 내보낸 지 10년이 지난 1991년 MTV는 전세계에서 2, 500만 이상의 가입자를 가진 공룡기업으로 정착했다. 극소수 골수 음악인들을 제외한다면, MTV와 뮤직 비디오를 무작정 거부하는 '아티스트들'은  사라져 갔다. 하나 더. 유럽에서는 MTV-Europe이라는 지사가 설립되어 '로컬라이즈'에도 성공했다. 북아메리카와 유럽이 아닌 지역에서는 케이블 TV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지만, TV 정규 프로그램 혹은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 뮤직 비디오를 접할 수 있었다(<지구촌 영상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을 기억하시죠?). 물론 이때부터 이미 MTV는 세계 각지에 지사를 창립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MTV, 록음악과 청년 문화를 되살리다: 1991-1995

1980년대의 '얼터너티브'한 청년들에게 MTV는 한낱 '상업주의의 화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웬 걸. 1991년 말 MTV를 통한 혁명이 발생했다. 다름 아니라 라이트 메탈(lite metal)이라고 부르는 머리를 기른 무늬만 메탈 밴드인 헤어 밴드(hair band)가 나오던 만화 같은 뮤직 비디오가 어느 날 갑자기 어둡고 축축한 분위기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이름하여 '얼터너티브 폭발'이었고, 그 주역은 시애틀의 '그런지' 밴드들이었다.

1960년대의 록 커뮤니티는 샌프란시스코의 거리와 뉴욕의 농장에서 촉발되었지만 "Alternative Nation"은 MTV 화면을 통해 촉발되었다. 스파이크 존스(Spike Jonze)나 데이비드 핀쳐(David Fincher), 러셀 멀케이(Russell Mulcahy) 같은 뮤직 비디오의 '작가들'이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면서 존중받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런 아이러니에 대해서는 "가장 상업적인 곳에서 가장 혁신적인 것이 발생한다"는 대중음악 역사의 유명한 아이러니로 대충 때우고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울러 뮤직 비디오뿐만 아니라 <Beavis & Butthead>, <Aeon Flux>, <Darya> 같은 청년문화의 코드를 담은 시리즈물도 아이콘의 지위를 차지했다. 물론 대중문화의 역사에서 상업주의와 청년문화의 행복한 결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아무리 대안적이고 전복적이라고 해도 뮤직 비디오라는 '인공적 작품'을 통한 표상이 필수품이 되었다는 사실은 역사상 최초로 보인다. 간단히 말해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시기 MTV는 이제 청년문화의 음각화가 되었다. MTV를 보면 청년문화가 어떤 건지 대충 알 수 있다는 뜻임과 동시에 MTV만 보고 청년문화의 모든 것을 파악한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착각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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