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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view:박준흠「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서평 대중음악을 일상의 갑갑한 삶으로부터 위안을 받기 위한 '필수재'로 간주할 것이냐, 즐거움을 찾아 개인의 취향을 형성하는 '문화재(cultural goods)'로 간주할 것인가는 현대인이면 양자택일해야 할 문제다. 그걸 반드시 '의식'하지는 않더라도 은연 중에 행동으로 드러난다. 평론가라는 존재가 음악 듣기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 즉 '직업적 팬(professional fan)'이라면 그의 선택은 당연히 후자다. '혜성같이 등장한 한국 대중음악 전문 평론가' 박준흠의 첫 저서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도 마찬가지다. 서문에 스스로 '작가주의'라는 말을 명시하면서 음악인들의 '일부'를 연예인이 아니라 예술인으로 '발굴과 재평가'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신중현과 한대수로 시작하여 산울림과 들국화를 거쳐 (중간 생략) 델리 스파이스와 최근의 인디 밴드에 이르기까지. '박준흠 리스트'에 포함된 뮤지션들 대부분은 넓은 의미에서 '록 음악'과 연관된 존재들이다. 이런 관점은 본인의 주장과는 달리 "새로운 관점"은 아닌 듯하다. '한국 록 계보 세우기(혹은 뿌리찾기)'는 계간지 {리뷰} 등에서 추진한 바 있다. 물론 책의 저자가 이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한 예로 저자는 서문에서 {리뷰}를 명시적으로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조용필-logy"에 반발하고 있다), 내게는 '사소한 차이'로 느껴진다. '큰 차이'라면 맺어지지 않는 '결실'을 그가 마침내 이루어냈다는 점이다. 잡지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모아서 엮어냈다는 사실을 불문에 부친다면 축하해 마지 않을 일이다. 책의 형식은 뮤지션의 전기(biography)와 디스코그래피(discography)를 곁들인 인터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가치는 연구의 성과에 있기 보다는 1차 자료의 충실한 정리에 있다. 그리고 스스로 계획을 밝혔듯 한국 대중음악의 "데이터 베이스 구축"을 위한 정지작업이라고 한다. '누군가가 해야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고 있는' 일의 착수에 대해서도 격려하고 싶다. 정부조차도 '21세기는 문화의 세기' 어쩌구 하는 상황에서 문화영역에 대한 체계적 작업의 가치를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결국 시비걸 일이라고는 그가 전제하고 있는 관점의 정당함(혹은 부당함)밖에 없다. 두 가지만 지적하자. 저자는 머리말에서 한국 대중음악(혹은 '우리' 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 부족을 질타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여기 실린 음악인들 중 대부분은 당대에 '미국(혹은 영국) 문화의 추종자'라고 평가받던 인물들이 많다. 그들이 추구한 음악의 기원이 영미에 있는 것도 분명하다. '한국'이라는 단어가 음악인의 국제법적 국적 이상의 문화적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한국과 외국(혹은 우리와 남)을 구분할 것이 아니라 대중음악의 보편적 이디엄이 된 영미의 팝/록 음악의 지구적 전개 속에서 국지적 수용/대응이라는 시각을 채택하는 것이 저자의 시도에 적합해 보인다. 또 한가지는 '작가' 혹은 '아티스트'라는 용어다. 저자는 '작가주의'를 명확히 정의하고 있지 않으므로 이는 인터뷰의 질문에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추측컨대 저자는 작가나 아티스트를 '예술적 창조력을 질식시키는 산업적.경제적 힘을 극복.초월하는 존재'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대중' 음악에서 아티스트를 이렇게 정의하는 것은 고전 음악에서의 정의를 되풀이한다는 '일반화된' 지적이 있다(실제로 저자는 산업적.경제적 제도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질문하지 않는 듯하다). 아티스트란 '산업적.경제적 힘과의 게임 속에서 부단히 승패를 거듭하는 존재'로 정의할 수도 있다. 이 책의 주요 대상인 '음반(주로 앨범)'이 에술품이자 산품이고, 대중음악이 장인(匠人)이자 기사(技士)라면, 이 책이 채택하고 있는 관점은 일면적으로 보인다. 서양에서 록 음악이 대중음악에서 차지하는(아니 차지했던) 각별한 지위는 보통 두 가지로 설명된다. 하나는 록 음악인이 개인의 작품세계를 표현한다는 것이며(즉, 록은 '예술'이다), 다른 하나는 록 음악이 청년 커뮤니티의 집단적 정서를 표현한다는 것이다(즉, 록은 '청년문화'다). 이는 '현실'이자 '신화'이고 따라서 이데올로기인데, 그렇다면 '록 음악(이든 다른 이름이든)의 특수사'보다는 대중음악의 일반사(一般史) 속에서 특수한 상황적 분석이 더 요긴할 수도 있다. 달리 말해 대중음악의 역사를 정리하는 방식이 꼭 그가 채택한 방식(나는 이를 '특수사의 통사 방식' 혹은 'Rolling Stone 방식')이고 부르고 싶다)으로 이루어질 필요만은 없다. 결국 저자가 '그건 당신의 특수한 취향일 뿐이야'라는 냉소에 어떻게 답해 나갈까. 1999.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