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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joonProfile Articles |
Overview:'테크노 음악 열풍'을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들 '테크노 음악 열풍'이란 현상은 좀 새삼스럽다. 테크노 음악을 '전통적 악기 연주에 의존하지 않고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 장비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이라고 정의한다면 한국의 주류 대중음악은 대부분 '테크노' 음악 아니었는가. 이렇게 '쉽고 싸게' 만들어진 음악은 그저그런 대중음악이고, '진정한' 음악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젝스키스나 구피같은 아이돌 그룹들이 '이번에는 테크노를 했는데요'라고 말해도 솔직히 별 관심은 가지 않는다. 666이라는 독일 출신 그룹이 유행시킨 이른바 '도리도리춤'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테크노의 한 단면이지 전모는 아니다. 그런데 대서양을 한번 건너고 태평양을 다시 건너 전달된 소문은 심상치 않다. 유럽 각지에서는 테크노 음악이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곳에서도 테크노 음악은 주로 나이트클럽에서 울려퍼지는 '댄스 음악'이고 테크노 음악의 주체는 판(disc)을 틀어주는 디제이(DJ)다. 하지만 우리가 떠올리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곳에서는 히트가요를 리믹스해서 틀어주는 게 아니라 주류 대중음악과는 상이한 음악적 문법을 갖춘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점이다. 댄스라는 행위도 에로틱한 쾌락을 맞보면서 여가의 피곤을 푸는 기능 뿐만 아니라 일상의 권태를 넘어서는 실천으로 '존중'되고 있다. 정리하면 테크노는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이고, 이와 연관된 음악적 실천이자 문화적 현상을 총칭하는 키워드다. 그 기점은 1988년이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 때부터 댄스 문화는 나이트클럽에 머물지 않고 지상으로 그리고 야외로 진출했다. 사운드 시스템이 갖추어지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밤을 새우는 마라톤 댄스 파티가 열렸는데, 이는 곧 '레이브(rave) 파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때로는 경찰이 '춤바람난 젊은 애들'을 잡아 다니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최근에는 <<베를린 러브 퍼레이드>>같은 예에서 보듯 수백만명이 운집한 페스티벌이 '문화행사'로 치러지고 있다. 또한 클럽의 DJ 출신 가운데 몇몇은 앨범을 발매하고 '라이브 콘서트'도 여는 활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총아는 단연 영국 출신의 프로디지(The Prodigy)다. 1997년 발표한 이들의 정규 2집 앨범 《The Fat Of The Land 》는 테크노 음반으로는 최초로 '발매 첫 주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음반 만이 아니다. 레이브 파티의 무드를 록 콘서트의 포맷에 결합시킨 이들의 라이브 공연은 왠만한 록 밴드 못지 않게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프로디지 외에도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와 언더월드(Underworld) 등 영국의 테크노 그룹들도 미국 시장에서도 상업적 성공을 거둔 상태고, 유럽 대륙의 몇몇 테크노 그룹도 상당한 지명도와 판매고를 획득하고 있다. 테크노는 이미 주류 대중음악계의 일각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그래서 테크노는 여전히 '언더그라운드 클럽'에 기반을 둔 음악이지만, 언더그라운드에'만' 머물러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테크노가 차세대의 대중음악이라는 주장은 음반산업계에 의해 부풀려진 면이 있지만, 테크노가 '세기말 청년문화'의 효소로 자리잡고 있다는 주장은 그리 과장은 아니다. 장르도 다양해져서 난폭하고 과격한 스타일(이른바 '하드코어 테크노')부터 차분한 감상용 스타일(이른바 '앰비언트 테크노')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하며, 나아가 록이나 힙합 등 다른 장르들과의 크로스오버 현상도 보인다. 그렇다면 이 모든 현상들은 어떤 징후인가? "입 닥치고 춤이나 춰(Shut up and Dance"라는 한 테크노 그룹의 이름이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 테크노 음악은 '스타를 추종하는 팬들'이라는 평균적 대중음악의 관습과 단절하고 있다. 또한 다분히 '남성적'인 쾌락의 과시라는 록 음악의 정신과도 거리를 두고 있다. 골수 테크노 음악광들은 전자 비트에 몸을 맡긴 채 밤새 춤을 출 때 나타나는 정신상태를 트랜스(trance)라고 부른다. 이들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수용할 필요는 없지만, 기슬(technology)을 통해 영성(靈性: spirituality)을 추구한다는 발상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걸 꼭 '세기말적 암울함' 어쩌구 하면서 규정을 내릴 필요는 없겠지만. 그 전에 테크노를 아이돌 댄스 그룹의 반주와 안무 이상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1999.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