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Review:


  • D.D.T., [Aktrisa Vesna], DDT Records, 1992

과도기의 러시안 록의 나이든 근위병의 서정시

1991년에 레코딩되어 1992년에 발매된 D.D.T.의 [Aktrisa Vesna]는 여러 면에서 '과도기'를 반영한다. 무엇보다도 1991년은 소비에트 연방(이른바 '소련')이 최종적으로 붕괴한 해이고, 따라서 이 시기는 러시아 사회 전체의 과도기이자 러시안 록의 과도기이기도 하다. 그 과도기에 D.D.T.는 국내외에서 공연과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바쁜 나날을 보냈고, 미국 공연에서는 에이전트의 성의 없는 태도로 불유쾌한 경험을 치르기도 했다. 국내적으로는 멜로지야에 의한 음악산업의 독점이 붕괴되었지만 새로운 시스템이 성립하지 않은 혼란이 발생했고, D.D.T.는 독립 레이블을 설립하여 이에 대응한 모범적인 케이스였다. 말하자면 러시안 록의 '영웅'들에게 1990년대 초는 국내외에서 '시장'의 냉혹한 규칙에 적응하는 시기였다. 그 결과 [Ya Poluchil Etu Rol(I've Got This Role)](1988)의 흥분되고 격앙된 분위기는 잦아들고 차분하고 서정적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이 앨범이 밴드의 프론트맨 유리 셰브추끄의 부인인 엘미라(Elmira)에게 바치는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Yu Tevya Est' Siyn(You Have Son)"과 "Aktrisa(Actress)" 같은 어쿠스틱 발라드를 먼저 듣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러시안 바르드(bard)의 영향이 보다 강한 "Foma(Thomas)"도 이런 범주에 포함된다. 그렇지만 더욱 흥미를 끄는 트랙들은 "Dozhd'(Rain)", "V Poslednyuyu Osen'(In The Last Autumn), "Rodina(Motherland)" 같은 비장한 분위기의 '파워 발라드'들이다. 8명의 멤버를 거느린 밴드답게, 기타, 드럼, 베이스의 기본 편성 외에 피아노(및 키보드), 색서폰, 트럼펫, 플루트 등의 악기가 어우러진 편곡은 때로는 '유구한' 느낌을, 때로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안겨준다.

작사·작곡은 물론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까지 부르는 유리 셰브추끄의 절창은, '가창력'이란 것이 대중음악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미덕이라는 것을 확인해준다. 또한 "내 얼굴에 떨어지는 물방울들... 아마 그건 비일 것이다 / 하지만 그건 아마 울고 있는 나일지도 모른다"("Dozhd(Rain)")라는 가사는 그가 선동가일 뿐만 아니라 서정시인이라는 점도 보여준다. 그 외에도 아메리칸 블루스 넘버 "Noch(Night)"에서는 슬라이드 기타와 함께 흥겨운 그루브를 맛볼 수 있고, 현악기들이 마치 리프를 연주하는 듯한 "Khram(Temple)"에서는 긴장감을 맛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음악이 '로컬 씬'에서는 충분한 호응을 얻더라도 세계시장에서 큰 반응을 받기 힘들다는 점이다. 로컬 씬에는 강점으로 작용하는 '러시아 시'는 세계시장에서는 단지 낯선 소리일 뿐이다. 2비트의 리듬에 플루트가 등장하고 '비소쯔끼 풍'의 멜로디를 가진 "Chto Takoe Osen'(What Autumn Means)"이 '러시아적 색채'를 가장 강하게 가지고 있지만 불행히도 그리 '모던'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이는 무엇보다도 프로듀싱의 기술적 결함에 기인할 것이다. 이 음반의 프로듀싱 수준은 1980년대 비공식 테이프를 제작할 때보다 조금 나을 뿐 이런저런 결함이 발견된다(상징적으로 이 앨범은 레코딩 볼륨이 낮다).

하지만 그게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이 음반을 포함하여 이 시기 러시안 록의 '전설'들의 음악은 무언가 '한 시대가 지나갔다'는 느낌을 풍기기 시작한다. 때는 바야흐로 '얼터너티브 록'의 빅뱅이 시작되고 있었고, 그 국제적 파장은 이제 러시아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거기에 러시아 내에서는 1980년대 존재했던 록 커뮤니티의 연대감이 와해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의 과도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러시안 록의 나이든 근위병(old guard)이 '신뢰받는 베테랑'으로 변신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점을 적실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로컬' 록 음악이 신뢰받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점도. '왜 안 되는가'를 보여주는 것도 베테랑의 중요한 몫이니까. (D.D.T.는 1996년에 발표한 [Lyubov'(Love)]로 '국제적 감각을 갖춘 베테랑'의 신뢰를 획득하지만, 국제적으로는 다시 한번 '불운'을 겪는다).
20011030


수록곡
1. Dozhd(Rain)
2. V Poslednyuyu Osen'(In The Last Autumn)
3. Foma(Thomas)
4. Rodina(Motherland)
5. Yu Tevya Est' Siyn(You Have Son)
6. Khram(Temple)
7. Chto Takoe Osen'(What Autumn Means)
8. Noch'(Night)
9. Aktrisa Vesna(Actress Spring)

관련 글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4): 1980년대 소비에트 록 뚜소브까의 시대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5): 1980년대 말 소비에트 록의 영광과 좌절
D.D.T. [Ya Polichil Etu Rol(Now That's My Role)] 리뷰 - vol.3/no.20 [20011016]

관련 사이트
D.D.T. 공식 사이트(러시아어)
http://www.ddt.ru
떼아뜨르 D.D.T. 공식 사이트(러시아어)
http://ddt.freelines.ru
D.D.T.에 관한 바이오그래피, 디스코그래피, 음원(영어)
http://russia-in-us.com/Music/Rock/DDT

* 웹진 [weiv]에 게재됨.  

 

앞화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