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입 닥치고 춤이나 춰
책소개 (Introduction) 서문 (Preface) 이 책의 주제는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댄스 교본'이 아니다. 물론 '전자 음악의 이해' 같은 책도 아니다. 또한 댄스 음악이 주제라고 해도 마돈나, 마이클 잭슨, 서태지, 김건모 등은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다룰 음악은 세간에서 '테크노'(최근에는 '일렉트로니카')라고 통칭되는 대중 음악의 메타 장르이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서론에서 일렉트로닉 음악 전반의 전개 과정에 대해 논한 뒤, 본론의 제1부에서는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여러 장르들을 여섯 갈래로 나누어 검토하면서 그와 관련된 문화 현상을 점검한다. 제2부에서는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아티스트들'을 조망하고, 부족한 부분은 소사전 형식으로 보완하였다. 이러한 구분은 대중 음악에 대한 글쓰기가 문화 연구나 미학 이론 어느 한쪽으로도 환원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이라는 장르에 대한 소개로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의 컨셉트는 '대중 음악과 (전자) 테크놀로지'다. 이 컨셉트에 대해서는 서론을 읽어 주기 바란다. 그런데 필자들을 아는 독자들이라면 이 새로운 컨셉트에 대해 항의할지도 모르겠다. 필자들 역시 자의든 타의든 '한국의 록 담론'에 이런저런 형태로 개입했고, '록 음악'을 중심으로 1990년대의 문화적 형세를 검토하고자 했다. 이에 대해 어느 정도의 해명은 있어야 할 듯하다. 이제까지 록 음악 팬의 입장에서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은 경멸의 대상이거나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1980년대 초 아이언 메이든과 휴먼 리그 사이에서의 선택은 '록을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문제였다. 1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최근까지도 록 팬들의 '테크노포비아' 현상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단, 이번에 경멸의 대상은 외국 음악이 아니라 '한국형' 댄스 가요(댄스 '가요'는 어떤 의미에서도 댄스 '음악'과 등치시킬 수 없다)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세계의 대중 음악계에서는 테크노, 하우스, 트립합, 정글, 앰비언트 등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으로부터 파생된 하위 장르들이 '뜨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프로디지와 케미컬 브러더스 같은 경우 이미 '스타'의 지위에 올라서 있다. 이 현상이 그런지 록 이후의 '차세대의 거물'을 찾으려는 음악 산업의 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1970년대풍의 하드 록으로 퇴화되는 '아메리칸 얼터너티브 록'이든, 1960년대의 팝을 답습하는 브릿팝이든 1990년대 중반의 팝 음악의 전통주의가 이제 더 이상의 관심을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팝 음악계의(혹은 대중 문화의) 상황을 보면서 '이제 유행을 따라가려면 테크노 음악을 열심히 들어야겠다'라고 생각하거나, '이제 테크노 음악도 주류로 부상했으니 그것도 맛이 갔군'이라고 단정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단정은 성급한 것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단순한 것이다. 우리는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이 '팝 음악의 트렌드'임과 동시에 오래 전부터 '언더그라운드 문화'로 성장해 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그들이 현재 팝 음악계와 미디어에 부상하는 과정을 검토하면서 문화 정치적 의미를 발견하는 것을 과제로 삼을 것이다. 이 책은 본래 흑인 음악을 포함하여 얼트 문화와 록 음악 의 3권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이 록 음악(및 록 문화)과 간접적으로 관련될 수는 있어도 어쨌든 록 음악과 '다르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다른 제목을 달아 출판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되었다. 나름의 변명은 있다. 얼트 문화가 '얼터너티브 록과 연관된 청년 문화'에 국한되지 않고 1980년대 이후의 새로운 문화적 형세'라고 느슨하게 정의할 수 있다면, 이 '댄스 음악'이 얼트 문화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얼트 문화라고 통칭되는 1990년대의 반문화'들'이 음악적으로는 인디펜던트 록, 하드코어 랩 힙합, 언더그라운드 댄스라는 세 개의 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주장이기에 앞서 '통설'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 가운데 하나의 축을 검토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 작업이 얼트 문화의 한 축을 검토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꽤 골치를 썩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 동안 유지했던 시각과 모순되는 몇 가지 점들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얼트 문화와 록 음악 1 에서는 '청년 문화'(혹은 반문화)라는 시각을 취했지만, 작업이 거의 끝날 즈음에는 얼트 문화가 '록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청년 반문화'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껴야 했다. 이는 몇 가지 확인되지 않은 논점들로 불친절하게 던져졌다. 얼트 문화와 록 음악 2 에서 얼트 문화를 보다 넓은 범위의 '팝 문화'(혹은 미디어 문화) 속으로 던져넣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이제 이 책을 쓰면서 우리는 '얼트 문화와 록 음악'이라는 화두를 해체하고 재편성하는 작업에 들어갈 듯하다. 물론 이런 작업이 이전의 작업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전자 테크놀로지, 언더그라운드 클럽, 댄스 문화 등의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것은 현 시기의 음악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혁신하자는 '하나의' 권유일 뿐이다. 대중 음악은 우리의 삶에서 여전히 중요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단지 그 중요성이 발현되는(혹은 소멸하는) 방식이 변화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진단을 내릴 뿐이다. 이 책의 작업은 얼트 문화와 록 음악 2 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지만, 계속된 '관점의 이동'으로 인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또한, 1997년 말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의 상황에 대한 고찰은 다소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 초고를 써 주고 '리믹스'를 허락해 준 공동 저자들인 양재영, 김지훈, 이형근 등에게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표해야 할 듯하다. 또한 소사전을 집필하고 꼼꼼한 교정을 맡아 준 이정엽, 장호연, 이용우의 수고는 몇 마디 말로 쉽게 표현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작업에 계속 관심을 표해 주는 많은 사람들, 특히 PC 통신 나우누리의 음악 소모임 얼트 바이러스 alt.virus 와 B-sides, 하이텔 음악 소모임 21C 그루브의 회원들(특히 강미라, 이종근, 이은석)에게도 감사드린다. 성문영을 비롯한 잡지 ＜SUB＞의 식구들, 성기완 송현주를 비롯한 인디 레이블 강아지의 식구들은 굳이 이 시간이 아니라 '평소에도' 고마운 친구들이다. 무엇보다도 일렉트로닉 음악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 준 윤준호와 김민규(델리 스파이스), 최수환, 도순주(이상 옐로 키친), 류한길(데이트리퍼), 서민규(모하비), 김제형(프랙탈)이 없었으면 이 책은 미처 구상도 못했을 것이다. 편자로 하여금 미래를 상상할 필요성을 일깨워 주는 지원, 과거를 돌아보게 만드는 부모님, 현재를 함께하는 현주에 대한 감사는 늘 나를 따라다닌다.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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