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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의 대중문화 : 기록의 상품화로부터 문화의 재산화까지

 1. "The People's Century": 대중의 세기, 기록의 세기

'20세기의 대중문화'라는 주제는 너무 포괄적이다. 대상이 되는 시기가 광범하여 내가 몸으로 겪은 기간은 채 절반도 되지 않고 머리로 겪은 시간은 기껏해야 20년을 조금 넘을 뿐이다. 게다가 문화라는 개념은 막연하기로 악명높다. 문화를 예술형식에 국한해야 하는지 생활양식 전반을 포괄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이때 전자의 영역은 각 장르의 전문가가 논할 대상이고 후자는 만인이 일상적으로 논할 대상이다.

막연해 하던 나는 한국의 국영방송이 영국의 공영방송 BBC와 공동제작했다는 - '정말' 공동제작인지는 확인된 바 없다 - 도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원제목이 <The People's Century>였음을 떠올리게 된다. 여기서 '제도교육'을 통해 '문화적 미국화'가 완성된 - 물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거나 미국 문화에 정통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 나같은 '한국인'의 머리 속에는 'People'을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맴돈다. 민중? 인민? 서민? 대중?

민중이란 용어는 한국에서는 매우 '정치적 용어'이므로 유보하고 싶어지고, 또 그런 의미에서 20세기가 '민중의 세기'라는 정의에 대해서는 머뭇거리게 된다. 인민이라는 용어는 뒤에 '군(軍)'자만 붙이면 머리에 뿔돋힌 반인반수(半人半獸)가 떠오르는 마당이라 피곤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거두는 편이 좋겠다. 서민이란 용어는 너무 '서민적'이라서 지식인이 사용하는 개념으로는 부적격이다. 마지막으로 대중은? 이 단어에는 'mass'라는 영어의 등가어가 있다. 그렇지만 이 용어의 기원이 인간을 개떼나 벌떼처럼 '의식없는' 무리와 비교했다 -- 르 봉 Le Bon이 말하는 masse는 '무의식적 우연의 대중'이다 -- 는 점에서 그리 유쾌하지 않다. 또한 이 용어는 '대중'이 아니라 '대량'으로 번역되어야 적당할 때가 많다.

다소 불만이 남아 있더라도 대중이라는 용어를 선택해 보자. 또 어떤 용어를 선택하더라도 20세기는 신, 왕, 황제, 총통, 귀족, 성직자, 양반, 자본가같은 지도자나 엘리트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무리'도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타당해 보인다. 위 프로그램은 단순한 연대기적 기술이 아니라 각 편마다 주제를 설정하여 노동계급, 미국의 흑인, 병사, 제 3세계 민중, 여성 등 각양의 대중의 등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20세기가 '대중의 세기'라는 주장은 온당해 보인다.

그런데 20세기 이전의 역사에서도 대중은 존재했다. 게르만족의 이동, 십자군 전쟁, 프랑스 혁명 같은 역사적 사건들에서 대중의 움직임은 20세기의 대중의 움직임과 비교해도 규모 면에서 작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20세기 이전의 대중의 움직임은 기록이 불완전한 반면(우리는 기껏해야 문서나 그림을 볼 수 있을 뿐이다), 20세기에 벌어진 사건들의 기록은 상대적으로 생생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자각하게 된다. 즉, 20세기의 역사는 대중의 삶이 미디어(media)를 통해 온전하게 기록(record)된 역사이다.

현대의 기록은 복잡한 기기들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 장비들은 점차 전기.전자장비의 형식으로 발전했다. 이런 전기.전자 '하드웨어'에 의해 기록된 사건들은 여러 '소프트웨어'(예를 들어 필름, 디스크, 테이프)에 저장되고 복제되어 대량으로 전달되고 있다. 대중문화(mass culture 혹은 popular culture)란 미디어에 의한 기록과 복제와 전파의 산물이고, 대중의 세기란 '대중의 움직임을 기록한 세기'다.

현대적 기록 및 미디어의 역사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7년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이 음향을 기록하는 실린더형 축음기(phoonograph)를 발명하면서 시작된다. 1891년에는 에디슨과 그의 제자 윌리엄 딕슨(William Kennedy Laurie Dixon)이 '동영상'을 기록하는 키네토그래프(kinetograph)와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를 발명하였다. 이들 기기들을 이용한 '기록'이라는 실천은 "세계의 위인들의 생애와 음성을 역사적으로 기록하겠다"는 발명가의 본래의 취지를 넘어서 거대한 연예의 미디어가 되었고, 대중문화의 산파가 되었다. 이제 20세기의 대중문화라는 주제로 돌아와서 그 역사적 진화과정을 더듬어 보는 첫 번째 작업을 '미디어를 통한 기록'이라는 논점으로부터 접근해 보자.

 

2. "We're Only in It for the Money"(F.Zappa) 기록의 상품화, 문화의 산업화

미디어에 의한 기록이 곧바로 대중문화를 탄생시킨 것은 아니다. 중요한 사건은 현실의 기록('실록')이 아닌 허구적 기록물의 탄생이다. 대표적인 것은 곧 음악 레코드와 영화 필름이었는데, 이들 '허구적 기록을 담은 인공적 미디어'들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점차 상업적 거래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즉, 기록과 복제의 대상이 '문화적 형식'까지 침투하면서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진 것이다. 새로운 산업은 문화산업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이 용어는 문화적 저작물을 미디어를 통해 기록하고 이를 기계적으로 복제하여 산업적으로 대량생산한다는 좀 복잡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문화산업은 곧 미디어 산업이었다. 음악산업은 '디스크' 산업과 등치되었고, 영화산업은 '필름' 산업과 등치되었다.1)

현대적 문화산업=미디어 산업은 전기.전자산업에 부속된 것으로 출발했지만 점차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발전하였다. 한 예로 레코드 회사(음반사)는 축음기 회사에 종속되어 있었지만 1920년대부터는 사태가 역전되어 레코드를 팔기 위해 축음기를 제조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마치 20세기 후반 컴퓨터 소프트웨어 산업이 컴퓨터 하드웨어 산업을 압도하고 있듯이. 다른 한편 '매스 미디어의 꽃'인 방송 미디어인 라디오와 텔리비전도 산업화를 이루었다. 1차 대전 직전인 1920년 정규 방송을 시작한 라디오에 이어 1936년에는 정규 TV 방송이 시작되었고 이후 순탄하게 대중화되었다. 방송 미디어의 기능이 정보와 사실의 전달(예: 뉴스 보도)로부터 대중적 오락의 제공(예: 음악 쇼, TV 드라마)으로 점점 더 기울면서, 대공황을 거친 1940년대에 이르면 '전기.전자산업 - 문화산업 - 방송산업'이라는 미디어 산업의 삼위일체의 제도가 완성되었다.2)

이제 우리는 이런 미디어의 발전이 어떤 문화적 현상을 낳았는가라는 논점으로 들어간다. 영화, 대중음악 등 대중문화의 형식들은 이전 시기의 문화적 생산물과 달리 처음부터 미디어를 통한 기록, 복제, 전파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지식인들은 이런 대중문화 형식들이 상업적 동기에 종속된 미디어 산업에 의해 조작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탄한 지식인은 (부르주아의) 고급문화의 타락을 한탄한 보수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킨다고 우려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다.

1930-4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가장 체계적인 비판은 독일의 아도르노로부터 나왔다. 그는 상업적이고 획일화된 대중문화가 자본주의적 대량생산의 반영이라고 보았고, 매스 미디어를 통한 일방적 전달을 통해 대중을 수동화시킨다고 보았다. 그는 특히 당대의 대중음악인 재즈를 분석하면서 대중음악의 형식의 표준화(standardization) 경향을 검출하였는데, 그는 이 경향이 20세기 자본주의의 대량생산(이른바 '포드주의')의 직접적 반영이라고 보았다. 그는 여기서 일정한 이데올로기적 효과, 즉 자본주의 체제를 재생산하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확신했다. 여기에는 그가 직접 경험한 파시즘 하에서 '대중의 광기'가 한몫했다.3)

그렇지만 당대에도 이단적 견해가 존재했다. 아도르노와 같이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속했으면서도 공식적 삶은 불운했던 벤야민(Walter Benjamin)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기계적 복제'의 긍정적 잠재성을 인정하고 이것이 새로운 문화적 역할을 하리라는 통찰을 제공했다. 그는 기계적 복제를 통해 예술적 권위가 붕괴한 -- 전통적 '아우라(aura)'가 사라진 -- 시대에서 예술 작품의 의미는 생산이 아니라 소비에서 만들어진다고 보면서, 대중문화의 민주적 잠재력에 대한 신뢰를 보였다.4)

시간의 경과라는 이점을 이용하여 양자의 일면성을 지적할 수 있다. 아도르노의 견해는 사회적 과정을 심리적 효과로 축소.환원시켰다는 점에서 근시안적이다. 조금 더 과감할 수 있다면 그의 예술관이 부르주아지의 그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벤야민의 견해는 문화가 소비자에게 어떻게 도달하는가를 중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충분하다. 즉, 벤야민은 미디어의 '투명성'을 전제하고 있다.

'아도르노 대 벤야민'의 구도는 지금까지도 계속 연장된다. 한편으로는 문화를 상품으로 생산하는 행위 자체가 문화적 가치를 결정한다는 주장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문화의 이데올로기적 의미는 소비과정에서 결정된다고 보면서 문화적 소비의 능동성을 강조하는 주장이 있다. 여기서 각각의 주장을 보다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두 가지 사회적 범주(혹은 '권력')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미국'이고 다른 하나는 '청년'이다.

 

3. "America Has Colonized Our Sub-Consciousness"(W.Wenders)
: 문화의 미국화(Americanization) 그리고/혹은 청년화(Youthification)

전후 대중문화를 둘러싼 논쟁은 미국으로 주 무대를 옮겼다.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전후의 합의에 기초하여 대중문화의 긍정적 효과를 수용하는 입장을 전개하였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1940년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는 대중문화를 비판하는 견해가 다수였는데,5) 이들은 고급문화의 타락을 한탄하는 미학적 엘리트주의자들이거나 파시즘의 공포를 경험한 유럽 출신의 학자들이었다. 앞 장에서 대중문화를 비판한 '지식인'도 주로 유럽인들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대중문화를 비판한 인물들이 '유럽적' 지식인들라는 점이다. 이들이 대중문화를 비판한 것은 그것이 '미국적' 문화라는 속성 때문이었으며, 따라서 '미국'이란 지리적 국적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미국의 문화적 생산물은 '일회용(disposable)', '재생가능한(reprodusicble)' 특징을 가진다고 비판되었는데, 이는 앞서 본 문화산업의 논리, 즉, 기계적 복제와 산업적 대량생산이라는 논리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이런 특징은 유럽의 교양있는 계층의 '훌륭한 취향(good taste)'과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6)

그렇지만 각국의 대중문화가 처음부터 미국문화의 침투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문화적(나아가 문화산업적) 헤게모니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을 비롯한 타국의 문화산업이 정체하고 미국의 문화산업이 비약을 이루면서 서서히 성립하였다. 나아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이 세계 각지에 진출하면서 미군 병사들을 위한 연예오락 수단이 제공되면서 미국산 대중문화는 보다 직접적으로 전파되었다. 이는 머잖아 각국의 국민문화(national-popular culture)의 미국화를 초래했는데, 각국의 지식인들은 자국의 대중문화를 미국의 문화, 미국화된 문화로 보았고, '나쁜 취향'의 대명사로 간주했다.

여기서 '문화의 미국화'가 파괴한 것이 고급 예술뿐만 아니라 민속 문화(folk culture)라는 점도 또하나의 중요한 논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술 대(對) 대중문화'의 이분법과는 별도로 '민중문화 대(對) 대중문화'의 이분법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은 1970년대에 학술적 담론으로 광범한 영향력을 미쳤던 '문화 제국주의론'일 것이다. 문화제국주의론은 "주로 미국에서 생산된 대량생산된 대중문화들이 국지적인(local) 문화적 형태들의 보전(integrity)과 활력을 침식시킨다"는 명제로 요약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대중문화조차도 미국 각지에 국지적으로 존재하는 민중문화를 상업화시킨 것이라는 주장도 등장했다.7) 이들 논의에서 주목할 점은 각국의 '국지적'인 민중문화 역시 유럽의 '보편적'인 고급예술과 더불어 진정성(authenticity)를 갖춘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유를 동원하면, 미국산(産) 대중문화가 인공적(artificial) 공산품이라면, 각국의 민중문화는 진품성을 갖춘 공예품으로 간주된 것이다.

문화제국주의론을 비롯한 '정치경제학적 접근'들은 미디어의 소유구조 및 생산과 통제의 메커니즘을 분석하여 자본의 실현과 착취 과정의 본질을 밝히려는 시도이다. 그런데 대중문화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접근은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 및 '생산이 소비를 결정한다'는 고전적 패러다임에 근거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아도르노 견해의 분신이다. 그 결과 정치경제학적 접근은 종종 '자본가의 음모설', '제국주의의 음모설'로 경사될 때가 많고, 문화제국주의론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즉, 문화의 미국화가 초래하는 다양한 효과들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미국의 다국적 미디어 산업의 의도로 환원시켜버리기 쉽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일어났는가? 1950년대 중반 미국 대중문화의 변동은 이전 시기와 급격한 '단절'을 보여준다. 이는 로큰롤 음악과 청년 영화의 탄생을 낳았는데, 이들 새로운 문화형식은 주류 아메리카와는 '다른' 아메리카를 표상했다. 그 표상은 '성난 젊은이(angry young man)', '청년 반항아(young rebel)'이었다. 한 예를 들어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는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타자'였고, 제임스 딘(James Dean)은 로버트 테일러(Robert Taylor)의 '타자'였다. 이때 '청년'이란 물리적 연령의 개념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이고 상징적 개념이었다. 그것은 '신체의 이성'이자 '늘 새로워지는 충동(modernizing drive)'이자 '바로 지금 NOW!'라는 시대정신이었다.

전후의 대중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청년과 더불어 동원된 또하나의 개념은 '여가'였다. 물론 여가라는 개념은 이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그 의미가 바뀌었다. 여가는 '노동으로부터의 휴식'이 아니라 그자체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 "인격적 삶을 엮어가는 대상(fabric of personal life)"8)이 되었다. 이는 포드주의라고 불리는 일관작업에 기초한 노동과정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소비는 노동과정의 단조로운 일상을 넘어서 비록 가상적 상태 속에서나마 화려하고 찬란한 상태로 이동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 중반 비틀즈의 전세계적 선풍은 미국적인 문화적 생산물(이 경우 록 음악)을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을 실증했다.9) 정도와 차이와 시차의 간격은 있었지만 영국 이외의 나라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각국의 청년들은 자국의 고루한 기성세대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국민문화를 버리고 미국의(혹은 미국화된, 아니면 미국으로부터 영향받은) 문화적 생산물을 이용하였고, 이는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이 과정에 대해,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해 길게 부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 효과는 또렷한데 1950년대 중반 이후 문화 산업은 청년 시장을 타겟으로 하였고, 대중문화는 가족 오락(family entertainment)으로부터 청년지향의 문화(youth-oriented culture)가 되었다. 문화 상품의 주된 수요층은 성인으로부터 청년으로 급격히 이동했고, 나아가 성인용 문화 상품조차 청년지향적으로 바뀌었다. 청년 문화의 시대인 '1960년대'는 20세기의 또하나의 분수령이었다.

 

4. "Us And Them, And After All We're Only Ordinary Men"(R.Waters)
: 문화의 대중화와 심미화(aestheticization)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 대중문화의 일부는 단순한 연예의 수단이 아니라 청년문화를 해독하기 위한 복잡한 문화적 텍스트가 되었다. 청년 문화의 일부는 대중문화에 속하면서도 '주류' 대중문화와는 다르다는 의미에서 대안적인 문화(alternative culture)로 인식되었다. 비트(beat), 모드(mod), 히피(hippie), 펑크(punk) 등의 1950년대 이후 영미권에서 등장한 독특한 청년문화 들을 파악하기 위해 하위문화(subculture)10) , 반문화(counterculture)11) 등의 개념을 사용한 '어려운' 이론들도 등장했다.

20세기 후반의 대중문화는 모든 문화적 힘들이 작용하는 내재적 장(immanent field)으로 인식된다. 나도 이 점에 동의하는 편이다. 달리 표현하면 대중문화는 절대적 극한을 갖지 않으며 극한들을 치환해 나가며 부단히 증식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동태적인 운동체로 파악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분법들, 예를 들어 주류 대(對) 대안(혹은 비주류), 오버그라운드 대(對) 언더그라운드, 메이저 대(對) 마이너(혹은 인디 indie)은 모두 1960-70년대 등장한 실천들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지시하는가.

특기할 만한 사실은 1970년대 초 접어들면 대중문화의 영역에도 직업적 문화비평가가 등장했고, 이들에 의해 대중문화에도 '진정성(authenticity)'이 존재한다는 미학적 이데올로기가 전파되었다. 이는 '고급예술 대 대중문화'라는 고전적 이분법을 대중문화 '내부에서' 재생산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다른 글에서 '저작자 개인의 작품세계를 표현함과 동시에 청년 공동체의 집단 정서를 반영한다'는 록 음악의 진정성(authenticity) 개념의 이론적.실천적 근거가 취약하다는 점을 논한 바 있다.12) 그것은 한마디로 '상업적이지 않은 문화가 대량판매될 수 있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들이 준거로 삼고 있는 청년이란 범주가 실제로는 '백인-중산층-남성'에 속한다는 점도 말한 바 있다. 즉, 대중문화의 획일성이라는 관념은 파괴되었지만 대중문화 내부의 위계화라는 새로운 관념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지만 진정성 개념은 미학적 기준으로서가 아니라 문화적 현상으로서 흥미롭다. 20세기의 진정성은 19세기 이전의 진정성과는 다르다. 과거의 진정성 개념이 미술의 '진품성'이나 고전음악의 '정격성(正格性)'처럼 기록되기 힘들고 복제되기 힘든 형식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영화나 대중음악에서의 진정성은 '미리 기록된 형태'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즉, 현대의 저작물들은 레코딩(녹음, 녹화, 편집 등)이라는 기술적 조작을 통해 예술 작품으로 생산되고, 수용자들은 이것이 재생되는 형태를 감상한다. 더 중요한 차이는 현대의 문화 소비자들은 예술적 질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취향의 좋고 나쁨을 판단한다는 점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진정성은 미학적 질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나아가 윤리적 가치)의 문제가 되었다.

이는 '작가주의 영화'나 '아트 록' 등 특별한 하위장르에 대한 직업적 평론가의 담론에 그치지 않고 대중의 담론을 형성했다. 한 예로 문화연구가인 새러 쏜튼(Sarah Thornton)은 흔히들 싸구려 음악이라고 간주되는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예를 들어 '테크노 음악')을 매개로 형성된 영국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하위문화를 연구하면서, 다음과 같은 취향의 위계를 논하고 있다.13)

 

우리(US)

그들(THEM)

첨단적인 (hip/cool)

완고한 (straight), 고지식한(square) 고루한(naff)

독립적

상업적

진정한

허위의(false/phony)

반역적/급진적

순응적/보수적

스페셜리스트 쟝르

소수

다수

청년

가족

계급없는

계급화된

남성적 문화

여성적 문화

 

여기서 쏜튼은 댄스 음악에서의 진정성을 록 음악과는 또다르게 '디스크 문화의 진정성', '테크놀로지의 문화화(enculturation of technology)'라는 관점에서 연구.조사하고 있다. 그 논의를 여기서 상론하기는 힘들지만 교훈은 얻을 수 있다.14) 여기서 보듯 대중문화는 단순히 '성인 대 청년' 뿐만 아니라 세분된 취향이 상호 경합하고 공존하는 가변적인 장이 되었다. 즉, 현대의 대중문화는 취향 문화(taste culture)가 되었다. 대중문화의 전반적으로는 '보통의' 취향을 가진 익명의 대중을 위한 쾌락적 연예의 도구이지만, 그것을 즐기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특수한 취향'을 통한 심미적 감상의 대상이 되었다. 모든 현대인은 두 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자신의 생계를 위한 직업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문화 비평가'라는 직업이다.

미묘한 것은 대중문화의 심미화 현상이 산업이나 미디어를 소유하고 통제하는 세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으로 더욱 깊숙이 포섭되는 현상의 이면이라는 점이다. 문화산업은 1960년대 후반 이후 청년 문화를 흡수하기 위한 경영 혁신에 전념하여 '스타 산업', '연예 산업'이라는 오명을 감출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하부 부서들의 자율성을 대폭 확대시키는 방식을 취하든가, 제작은 독립제작사들에게 위임하되 다양한 형태의 하청 계약을 맺는 방식을 취하였다. 경제학과 사회과학의 담론에서 '포드주의 이후'를 논할 때 문화산업이 선구적 사례로 꼽히는 이유는 이 점과 무관치 않다.15)

한편 1960-70년대에는 미디어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발생했다. 현대의 미디어를 '동질화된 문화상품을 취향에 불문하고 대량으로 전달하는 매스 미디어'만으로 환원시키기 힘들어졌다. 현대의 미디어는 세분된 취향에 따라 전달하는 '니치(niche' 미디어'(예를 들어 전문 비평지, (초기의) FM 라디오, TV 전문채널), 그리고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비상업적인 '마이크로(micro) 미디어'를 포괄하는 복잡한 시스템이 되었다. 즉, 복수의 연속적인 층을 가지는 복합적) 시스템이 되었고, 이는 이른바 '뉴 미디어'의 등장에 따라 더욱 가속화되었고 이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1960-70년대를 대중문화의 황금기라고 부를 수 있다면, 당시에 생산된 대중문화의 예술적 가치가 뛰어났다기 보다는 산업적 힘과 문화적 힘이 큰 마찰 없이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전후의 소비자본주의가 그럭저럭 유지되던 1970년대 중반까지 문화산업과 청년문화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는 세계경제의 경기침체는 청년문화와 문화산업 모두를 질식시켰다. 1976년 문화산업의 성장률은 역사상 처음으로 (-)를 기록하였고, 1983년이 되어야 겨우 1976년 수준의 시장규모를 회복하게 된다. 소비자본주의의 신화와 더불어 청년문화의 신화도 종언을 고한다.

 

4. "Making Capital out of Culture"(B.Ryan)
: 문화의 지적 재산화(intellectual propertization)

문화산업은 1970년대 후반의 위기를 어떻게 타개했을까. 1980년대 이후 문화산업에서는 국제적 규모에서의 '미디어 시너지'를 노린 대규모 사업교환(big deal)이 있었고, 이는 거대 미디어 복합체(media conglomerate)를 탄생시켰다. 그렇지만 구조조정이 곧바로 수익성을 회복시키지는 않는다면 어떤 전략이 있었을까. 한 잡지가 말한 미디어 복합기업의 '꿈'을 들어보자.

"자이언트사는 모든 미디어에 자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한 잡지가 기사 하나를 구매했는데, 이 기사가 한 권의 책으로 확대시킬 만하다고 판단했다. 회사 소유의 잡지와 방송국에서 이 저자와 폭넓은 인터뷰를 행한다. 책은 회사의 영화 스튜디오에서 영상으로 만들어지고, 필름은 자동적으로 회사의 극장 체인을 통해 예약된다. 회사의 레코드 레이블은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발매한다. 보컬리스트는 즉시 회사의 잡지의 표지 인물이 되어 즉시 유명인이 되고 텔리비전 방송에 나와 인터뷰를 한다. 그가 취입한 레코드는 회사의 Top 40 라디오 방송국의 체인에서 연주된다. 영화는 상영이 끝나면 회사의 비디오 카세트로 발행된다. 그 뒤 영화에 대한 방영권이 전세계의 텔리비전 방송국으로 판매된다" 16)

이렇듯 1980년대 이후의 지배적 현상은 다매체를 통한 문화상품의 '블록버스터화'가 지배적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의 필름이나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레코드처럼 '사상 최대의 판매고'를 기록한 작품이 탄생한 것도 1980년대다. 문화산업은 다시금 작위적인 '스타 시스템'으로 복귀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는 현실을 모두 설명해 주지 않는다. 높은 제작비와 홍보비를 필요로 하는 대형 작품은 '수요의 불확실성' 앞에서 위험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앞 절에소 보았듯 문화상품의 소비자는 1920년대의 '초기 독점' 하에서처럼 '골빈(vacuoos)' 사람들이 아니라, 나름의 심미적 감각을 갖춘 까다로운 사람들로 변해 있다. 문화산업은 판매자 시장(seller's market)에서 구매자 시장(buyer's market)으로 바뀌었다. 다른 한편 새로운 청년문화의 신화 -- 리버 피닉스(River Phoenix), 커트 코베인(Kurt Cobain) 등 "He Dies Young"의 신화 -- 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 성과는 아무래도 예전같지 않다.

결국 문화산업은 수입의 원천을 유형의 문화 상품의 판매로부터 저작물에 대한 무형의 권리로 이동시키면서 위기를 타개하고 있다. 이는 1970년대 이전부터 존재한 실천이었지만 1980년대 이후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한 예를 들어 과거에 음반산업은 방송국 등 공공장소에서 음반을 재생하는 행위를 '자사 제품의 홍보'로 간주하여 무상으로(때로는 돈을 지급하면서) 허용하였지만, 지금은 자신들이 재산권(판권 및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 저작물을 사용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일정한 로열티를 요구하고 있다. 앞의 인용문을 보더라도 자이언트사가 최종적으로 판매하는 것은 재화가 아니라 권리(방영권(rerun right))이다. 이런 무형의 권리들은 이른바 지적 재산권이라고 불리며, 문화적 생산물의 경우 저작권(copyright)이 이에 해당한다. 앞 절에서 논한 대중문화의 심미화현상은 문화의 (지적) 재산화와 불가분하며, 이는 문화산업의 새로운 단계를 지시한다. 대중문화는 한번 판매하면 소비되어 버리는 일회용품에서 일정한 회전 기간 동안 경제적 가치를 증식시킬 수 있는 자본으로 전화되었다. 한 학자의 말대로 "문화로부터 자본을 형성하기"17)다.

문화산업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무형의 권리의 재산화(및 자본화)는 현대 산업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즉, 과거에는 단지 '생필품 제조업'이었던 의류산업이나 식료품산업도 이제는 '문화산업처럼' 변모해가고 있다.18) 20세기 말의 소비자들은 마치 음반을 구매하듯이 옷을 구매하며, 극장 프로그램을 고르듯 먹을 메뉴를 고른다. 베네통, 리바이스, 베르사체, 갭 등의 의류 브랜드, 코카 콜라, 맥도날드, T.G.I.F. 등의 식료 브랜드는 하청 계약을 체결하면서 자신들의 상표를 사용할 권리를 양도(혹은 이용 허가)하고 일정 기간 동안 로열티를 징수하는 반면, 문화적 저작물들은 저작물의 사용을 허용하는 대가로 저작자 사후 50년까지 로열티를 가져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즉, 소비자는 타인이 만든 상품을 양도받으면서 '물건 값'을 지불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지적) 재산을 사용한 대가로 '사용료'를 지불하게 된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모든 산업의 문화산업화'이고, 적어도 문화의 산업화와 산업의 문화화의 동시진행이다.

여기서 위 인용문 마지막 문장을 다시 주목해 보자. '전세계에 판매한다'는 대목 말이다. 즉, 문화가 '재산'이 되는 현상은 문화산업의 세계 전략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이나 우루과이 라운드의 주요 의제 중의 하나가 의제가 저작권을 비롯한 지적 재산권 협상이었다. 이는 단지 저작물의 불법 복제의 단속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문화적 재산권을 보호하는 '지구적 기준(global standard)'을 마련하는 문제였다. 마지막에서 다룰 주제는 지구화(globalization)이다.

 

5. "It's The End of the World As We Know It"(M.Stipe)
: 문화의 지구화

나에게는 '지구화(globalization)'라는 말많은 용어를 엄밀하게 정의할 능력이 없으며, 또한 디지틀 기술의 발전이나 인터넷 등 뉴 미디어의 등장 등 지구화와 밀접한 현상에 대해서는 이 책의 다른 글이 다룰 듯하다. 내게 지구화는 우선 세계의 주요 도시에 메가스토어(megastore)의 체인을 건설하고, 밤이 되면 영어로 쓰인 휘황찬란한 네온 사인을 반짝이는 다국적 미디어기업의 전략으로 다가온다. 19세기 말 세계의 지배자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면, 20세기 말의 지배자는 '불이 꺼지지 않는 나라'다. 그날의 판매량과 수입액은 EDP(electronic data processing) 테크놀로지를 통해 눈 깜짝할 사이에 기록되고 있다.

이 다국적기업 대다수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미국식 비즈니스'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은 문화의 지구화가 '실제로는' 미국화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현실은 정말 그런 것 같다. 1950-60년대까지 미국화과정이 미국에서 이미 만들어진 문화적 생산물이 지리적 공간에 전파된 것에 머물렀다면 현재의 지구화를 통한 미국화 과정은 보다 일상적이고 미시적이다. 일상의 생활양식 뿐만 아니라 감성구조 자체가 미국화되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국민 대다수가 미국화된 소비 패턴과 생활양식을 누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소비 패턴과 생활양식이 이상적 모델(혹은 규준)로 설정되고 있다는 뜻에 가깝다. 1960-70년대에 '청년'이었던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어 사회의 주류를 차지하면서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다음 두 가지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하나는 현재의 지구화가 문화제국주의(=문화식민주의)의 심화라고 규정하고 이의 극복을 실천하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으로부터 유래한 20세기의 대중문화를 인류전체의 유산으로 상정하고 그 내부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길이다. 두 입장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다면, 전자는 '이슬람화'를 제안할 것이며, 후자는 '하와이화'를 제안할 듯하다.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여기서 지구화가 국민국가의 범위를 넘어서 진행되는 과정이고 또한 지구화가 지구적 동질화 global homogenization)가 아니라 '지방화(localization)는 역의 과정을 동반하는 변증법적 과정'이라는 주장을 잠시 경청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민국가의 주권을 침식시키는 주체 중에는 다국적 기업같은 상위그룹(supra-group) 뿐만 아니라 국민국가 체제가 억압해 왔던 하위그룹(sug-group)도 있다'는 주장을 빌어 상상을 전개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국민 대 국민(nation vs nation)'이라는 제국주의론적 시각을 '지구 속의 지방(local in the global)'이라는 포스트제국주의(postimperialism)론적 시각으로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국지성을 국민성(nationality)과 등치시키는 습관 뿐만 아니라 국지성을 지리적 시공간성으로만 국한시키는 습관도 버리자는 '만용'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종언'도 실현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월드 와이드 웹'을 항해하다가 한 '부지(敷地: site)'에 잠시 닻을 내린다. 그 사이트에는 '러시안 록의 대부'인 보리스 그레벤시코프(Boris Grebenshikov)와 그의 밴드인 아쿠아리움(Akvarium)의 홈페이지가 있다. 거기에는 그의 생애와 예술에 관한 기록물들이 등록되어 있다. 그 중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조그만 클럽에서 가진 어쿠스틱 라이브 공연을 레코딩한 파일을 모아놓은 '인터넷 온리 앨범(internet only album)'도 있다. 나는 mp3 포맷으로 등록된 데이터 파일을 다운로드받아 하드 디스크에 저장하고, CD-레코더라는 하드웨어를 통해 공 CD에 복제한 뒤 CD-rom과 사운드카드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19세기 말 에디슨의 발명은 20세기 말 나같은 '대중'도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e

하지만 지금 나는 판권료도 저작권료도 지불하지 않는다. 그레벤시코프의 음악 스타일은 러시아 포크송(및 '바드 송 bard song')을 영미의 록 사운드와 혼혈화(hybridization)한 것인데, 1980년대 중반 그의 동료 및 후배들은 러시아 언더그라운드 록의 영광스러운 시기를 이끌었다. 지금은 러시아의 록 공동체가 쇠퇴하고 본인도 초로에 접어든 탓인지 그는 밴드 없이 어쿠스틱 기타 한 대만으로 연주하면서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이듯 노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비참한' 목소리를 듣고 무한한 감동을 느낀다.

그와의 만남은 지구화 과정, 구체적으로 말하면 '글로벌 랭귀지'인 영어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춘 인터페이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지구화와 정보화의 첨병인 인터넷이 돈에 환장하여(이른바 '사이버골드 러쉬 cyber-gold rush') 신자유주의적 여피를 목표로 피튀기게 살아가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이건 정말 아주 작고 궁상맞은 생각일 지 모른다. 더구나 내 주위에 그의 삶과 음악을 좋아할 사람도 많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나에게 그와의 만남이 갖는 '문화적 가치'는 너무 소중하다. 그 사이트를 만든 러시아인과 우즈넷(usenet)을 찾아온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더불어 나는 취향의 공동체를 형성했고 그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할 듯하다. 나는 혹시 이런 게 '지구화 시대의 디지틀 코뮌(digital commune)'이 아닐까라고 몽상하게 된다. 물론 내가 더 많이 찾는 다른 사이트인 All-Music Guide, All-Movie Guide, CD-Now 에서는 영미권의 문화생산물을 화려하게 '디스플레이'하고서 'Buy or Die'라고 외치고 있다.

 


1)이 글에서는 전자 미디어를 중심으로 20세기에 새로이 등장한 문화산업에 집중하고 있으므로, 18-9세기의 대표적 문화산업인 서적, 잡지, 신문 등의 '인쇄 미디어 산업'에 대한 분석은 대폭 생략한다. 이들 인쇄 미디어 역시 종이라는 소재를 미디어로 이용한 기록물이지만, 전기.전자 미디어가 아니며 또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구분이 없다는 점에서 '20세기적'이지는 않다(인쇄 미디어의 하드웨어는 '도서관'이라는 공공시설이다). 물론 텔레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전에 따라 인쇄 미디어도 20세기적으로 변모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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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기서 라디오 산업과 레코드 산업, 필름 산업과 TV 산업 사이의 경쟁과 보완이라는 복잡한 상호관계(나아가 유성영화로의 이행과정에서 레코드 산업과 필름 산업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짧은 글이지만 이에 대한 통찰력있는 분석은 Frith, S, (1988), "Industrialization of Music", in Music For Pleasure : Essyas in the Sociology of Pop, London: Polity Press를 참고하라. 또 하나의 주요 테마인 초기 문화산업에서의 경기순환, 즉 1920년대의 호황 - 1930년대의 불황 - 1940년대의 회복이라는 문제도 생략한다. 관심있는 사람은 음악산업에서 경기순환을 다룬 R. Peterson & D. Berger (1975), "Cycles in Symbol Production : The Cycle of Popular Music",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Vol. 40(4), pp.158-173을 참고하라. go back to the text 

3) 아도르노를 포함하여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1930년대의 주장은 Ernst Bloch et al, Aresthetics and Politics, New York:1979에 잘 모아져 있다. 아도르노의 음악 미학에 대한 최근의 해설로는 R.Witkin ed.(1998), Adorno On Music, London: Routelege, 특히 이 글의 논점과 관련해서는 특히 Ch.9 'The Culture Industry And All That Jazz'를 보라. go back to the text 

4)벤야민의 주장에 대해서는 고전적 텍스트인 [기계복제 시대의 예술]을 참고. 오래되었지만 이 글은 김윤수 편(1974), {예술의 창조}, 태극출판사에 수록되어 있다. go back to the text 

5)1950년대 대중문화 논쟁은 대중문화의 형식 그자체에 대한 평가 뿐만 아니라 고급문화의 매스 미디어(특히 텔리비전)를 통한 유통에 대한 평가를 중요한 논점으로 수반했다. 미국의 대중문화 논쟁에 대해서는 노먼 제이콥스 편, 강현두 역(1980), {대중사회의 문화와 예술}, 홍성사를 참고. go back to the text

6) 아도르노와 더불어 대중문화에 대한 또하나의 비판을 제공한 것은 영국의 문학비평가 리비스(P.Leavis)였다. 그는 '진정성(혹은 진품성 authenticity)' 개념을 통해 대중문화에 접근한 대표적 인물인데, 이를 통해 규격화되고 도피주의적이고 수동적으로 소비되는 대중문화를 '독창적이고 도전적이고 계몽적인' 예술작품과 대비했다. 아도르노와 달랐던 점은 리비스가 민중예술(popular art)의 독자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즉. 리비스주의자의 견해에서 대중문화(mass art)는 '민중예술을 진부화한 것'이며 따라서 10대 대중문화는 '진정한 것과 조작된 것의 모순적 결합'으로 파악된다. 이에 대한 소개와 평가로는 S.Frith(1982), Sound Effects: Youth, Leisure and the politics of Rock'n'Roll(국역 : 권영성 외 옮김(1995), {사운드의 힘}, 한나래, pp.71-73을 참고. go back to the text

7) 미국의 대중음악이 포크 음악을 상업적으로 변형시킨 것이라는 주장은 마르크스주의자인 데이빗 하커(David Harker)에서 잘 드러난다. D. Harker(1980), One For The Money : Politics and Popular Song, London: Hutchinson. go back to the text

8) 이 인용구를 포함하여 '미국화' 과정을 청년과 여가의 관점에서 분석한 글로는 I.Chambers(1985), Urban Rhythms: Popular Music and Popular Culture, London: Macmillan. 특히 Ch.1 Living in the Modern World를 참고. go back to the text

9) 이런 '창조'는 영국 이외의 나라들로 충분히 확산되지는 못했고, 대중음악의 경우 영미권의 헤게모니(anglo-american hegemony)를 성립시키는 것으로 그쳤다. 역으로 1960년대 미국의 '청년 영화', 예를 들어 {이지 라이더}, {졸업}, {내일을 향해 쏴라} 등은 영국과 유럽의 예술 영화로부터 영향받아 제작되었다. '청년'이라는 상징작용을 통해 영미권 주도 하에서 서양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확립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go back to the text

10) 영국의 하위문화에 대해서는 D.Hebige(1979), Subculture: The Meaning of Style, London:Methuen & Co.를 참고하라. '고전적 하위문화이론'에 대한 최근의 비판적 성찰로는 S.Thornton(1996), Club Cultures: Music, Media and Subcultural Capital, Hanover and London: Wesleyan University Press을 참고하라. go back to the text

11) 1960년대 미국의 반문화에 대한 학술적 연구로는 J.Yinger(1982), Countercultures:The Promise and the Peril of a World Turnes Upside Down, New Tork:The Free Press를 참고하라. 한편 1960년대 및 그 이후의 반문화 '사상'의 변모는 T.Leary(1994), Chaos & Cyberculture, Ronin:Berkeley보라.  go back to the text

12) 신현준(1996), [록 음악에 미래는 있는가], {이다} 1, 문학과 지성사. 이런 주장의 전거는 영국의 '록 사회학자' 사이먼 프리스에 많이 빚지고 있다. S.Frith(1982), 앞의 책 및 S.Frith, S, (1988), Music For Pleasure : Essyas in the Sociology of Pop, London: Pol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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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Thornton(1996), p.115. go back to the text

14) 이에 대한 부연자료로는 신현준(1998), {입 닥치고 춤이나 춰 :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현재와 미래}, 한나래를 참고하라. go back to the text

15) 문화산업에서 '유연성'과 '포스트포드주의'에 관한 논의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 영화산업에 대해서는 M.Storper(1989), "The Transition to Flexible Specialisation in the U.S. Film Industry: External Economies, The Division of Labour, and the Crossing of Industrial Divide",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13, pp.273-305. 음악산업에 대해서는 D.Hesmondalgh(1996), "Flexibility, Post-Fordism and the Music Industries", Media, Culture & Socirty, Vol.18을 참고하라. 전자는 피오르(M.Piorre)와 세이블(C.Sabel)이 Second Industrial DividePossibilities for Prosperity(1984)애서 제시한 '신자유주의적 유연전문화론'을 찬성하고 있고, 후자는 중도적 견해를 취하고 있다. go back to the text

16) K.Negus(1992), Producing Pop:Culture And Conflict in Popular Music Industry, Edward Arnold, pp.4-5에서 재인용. go back to the text

17) B.Ryan(1991), Making capital from Culture : The Corporate form of Capitalist Cultural Production, Berlin ; Newyork: de Gruyter. go back to the text

18) 이런 발상은 래쉬(S.Lash)와 어리(J.Urry)의 견해에 의존하고 있다. 견해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들 '랭캐스터 그룹(Lancaster Group)'은 앞서 언급한 '유연성 논쟁'에서 좌파적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S.Lash and J.Urry(1994), Economies of Signs and Space, London: Sage.를 참고. 한국어로 번역된 것으로는 Lash, S. (1990), Sociology of Postmodernism, 김재필 譯 (1993), 포스트모더니즘과 사회학, 서울: 한신문화사. S.Lash(1991), "Disinintegrating Firms", Socialist Review, "포스트 포드주의와 설계집약적 경제", 이병천·박형준 編, {후기자본주의와 사회운동의 전망}, 1993, 서울: 의암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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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7.2
{문학과 사회} 47(1999, 가을)에 수록됨.
1999 신현준 (gilles@nownuri.net)

 

  THE OTHERS:

check01b.gif  평론가 아저씨, 인디 밴드들 기웃거리기부터 잔소리하기까지 Dec.17th.1999

     그대 다시는 그곳에 가지 못하리: 1980년대 문화적 정세와 민중문화운동 Oct.23rd.1999

     대중음악과 웃음 혹은 안면성 Jul.20th.1999

     한국 대중음악의 미래는 있는가? Apr.14th.1999

     들뢰즈 가타리와 팝 음악 : 불가능한 접속?  Mar.4th.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