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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음악과 웃음 혹은 안면성

I. 쥐뿔도 모르고 하는 이야기지만 '인류 전체의 유산'으로 간주되는 유럽의 고전음악에는 웃음이 없어 보인다. 공연장에 가거나 음반을 들으면 근엄한 지휘자와 잔뜩 긴장한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장엄한 음의 진행을 숨죽이고 들어야 한다. 강렬한 에너지가 전달되지만 안면은 계속 굳어간다. 절제의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때론 졸다가 잠들어 버리고, 때론 아예 스위치를 내려버리거나...

고전음악의 퍼포먼스에 웃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연주가 끝나면 지휘자와 연주자들은 밝게 웃는 게 보통이다. 그렇지만 연주가 '끝난' 다음이다. 웃음은 마치 긴장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듯하다. 과정은 결과에 종속된다. '재미있는' 고전음악은 없다고 하면 지나친 말이지만, 그 재미는 웃음과는 다른 차원의 반응을 요구한다.

때로는 나같은 문외한도 가끔은 예외를 발견한다. 이른바 '코믹 오페라'같은 장르가 있다. 하지만 오페라라는 장르 자체가 극예술과의 '퓨전'이라는 점, 그리고 코믹 오페라가 오페라 중에서도 찬밥신세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예외는 예외일 뿐이다. 보다 일반적인 예는 없을까.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영화 <<아마데우스>>의 몇 장면들 뿐이다. 이미 널리 알려져서 진부해져 버렸지만 '모짜르트와 살리에리의 비교'를 다시 데리고 오자.

영화가 사실을 잘 묘사하고 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스크린에 비친 모짜르트는 경망스러울 정도로 웃어대는 장난꾸러기다. 이런 장난스러움은 "식사 중 의자를 어떻게 빼면 좋을까라는 문제를 일년 내내 고민하는" 궁정의 관례를 웃어넘긴다. 모짜르트와 살리에리에 대해 국내의 한 연구자는 "근대에 와서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벼움과 여전히 궁정 사회를 지배했던 무거움"을 발견하고 있다. 이때의 웃음은 '정치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근대 사회의 미학은 진중함이 지배했다. 감정을 이성으로 규제하는 철학은 절제있고 훌륭한 매너로 이어진다. 미학은 윤리학을 성립시키고, 윤리학은 미학을 강화한다. 좋은 매너(good manner)는 좋은 취향(good taste)와 단짝을 이룬다. 귀족들의 비극적인 위엄은 부르주아지에 의해 수용되었고, 민중들의 '가볍고 상스러움'은 심미화의 대상으로부터 배제되었다.

음악 분야에서 '진지한 무거움'의 미학은 20세기에 접어들어 독일의 사상가 아도르노(T.Adorno)의 '음악에 대한 태도'에서 이론적으로 체계화된다. 1961-62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행한 유명한 강연에서 그는 음악 수용자의 유형을 몇 가지로 구분했다. '전문가'와 '고상한 청취자(good listner)'를 상위에, '오락형 청취자'와 '음악 혐오자'를 하위에 놓는 유형화이다. 그의 의도의 핵심은 "구성이 자유로운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도 형식의 각 부분을 말할 수 있는" 전문가와 음악을 "의미의 연관관계가 아니라 자극의 원천"으로 듣는 오락형 청취자의 대비다. 전문가와 고상한 청취자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진중하고(무거운 반면), 오락형 청취자의 태도는 천박하다(가볍고 엷다).

아도르노는 고전 음악의 청취자 중에도 오락형 청취자가 있다는 사실을 경멸했을 뿐만 아니라, 오락형 청취자를 위한 음악이 만들어지는 사실에 분노에 가까운 심정을 피력했다. 그는 그 음악을 '재즈'라고 통칭했고, 이를 좋아하는 취향을 '문화산업이 강요하는 획일적 취향'이라고 생각했다. 아도르노가 겨냥한 재즈는 비밥(be-bop) 이전의 재즈, 이른바 스윙(swing)이나 딕시랜드(dixieland) 시절의 '댄스 음악'으로서의 재즈다. 아마도 아도르노는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웃는 얼굴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역으로 말한다면 19세기까지, 어쩌면 그 이후에도 서양 사회를 지배해 왔던 무거운 진지함이 걷히기 위해서는 백인이 아닌 이들이 악기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일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서양인들은 새로운 음악을 '대중 음악'이라고 불렀다. 대중음악은 웃음을 해방시켰다. 물론 '해방'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해방의 순간이 강렬할수록 해방되지 않은 시간은 오래 지속되는 법이다. 또한 웃음들이라도 해도 양태는 매우 다양하다. 여러 웃음들을 찾아가 보면서 이야기를 계속 하자.

 II.

재즈로부터 힙합에 이르는 미국 흑인들의 음악적 뿌리는 블루스(blues)다. blue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장르 명칭은 블루스가 '슬픈' 음악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이 슬픔은 블루스가 흑인의 음악이었다는 사실과 연관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너무 잘 알려져 있기에 언급하는 것 자체가 새삼스럽다. 흑인 블루스맨들은 기타 하나를 들고 미국 남부의 농촌을 방랑하던 떠돌이들이었다. 우리 나라로 치면 각설이나 장똘뱅이에 가까운 존재였다.

블루스의 감정 표현은 'earthy'하다고 표현된다. '대지의'라는 본래의 뜻 외에 '세속적인', '거친'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 용어다. 'muddy'라는 용어도 종종 사용된다. 역시 '진흙의'이라는 뜻 외에 '탁한', '흐린'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블루스맨들은 감내하기 힘든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면서도 웃음을 머금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달관한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고, 달리 보면 자포자기한 모습으로 보인다.

블루 노트(blue note)라는 용어가 있다. 슬픈 음표. 블루스 음계를 구성하는 음표들 가운데 서양 음악(백인 음악)의 7음계와 비교할 때 다른 음표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보통 근음에 대해 3도와 7도의 음를 블루 노트라고 부르는데 각각 단 3도와 장 3도, 단 7도와 장 7도의 중간 정도 되는 음표다. 이런 설명이 복잡하다면 왼손가락을 지판에 대고 기타 줄을 위아래로 '구부리면' 감이 온다. 이른바 '벤딩(bending)' 주법이다. 아마도 기타를 배울 때 이것처럼 재미있는 일도 드물 듯싶다. 벤딩할 때 발생하는 줄의 물리적 굴곡이나 음의 파동의 굴곡은 블루스맨들이 노래를 부를 때 안면의 굴곡과 참 닮았다. 블루스맨들은 눈을 감고 연주할 때가 많다. 파안대소하는 법은 없으며 안면에 부드러운 굴곡이 발생할 따름이다. 블루스에서는 기쁨과 슬픔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

블루스가 '기쁜' 음악으로 변형된 것은 20세기 초 흑인 인구가 도시로 대량 이주하여 도시적 연예 수단이 되면서부터다. 재즈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흑인 대중음악은 리듬&블루스라고 불렸다. 요즘 R&B라고 부르는 음악의 원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세월의 간격만큼이나 음악 스타일이나 표현된 감정은 많이 다르다. 인생의 고통과 좌절을 표현했던 블루스와 달리 리듬&블루스는 인생의 즐거움을 찬미한다. 무엇보다도 리듬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점이 그렇다. 리듬&블루스란 문자 그대로 블루스에 댄스 리듬을 덧붙인 것이다. 리듬은 음악의 3요소 중에서 가장 세속적이다. 흑인 댄스 음악은 한 박자(beat)를 불균등하게 세분한다. 따라서 부서뜨리는(rocking) 듯한 비트 사이에 브레이크(break)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 '미친' 리듬은 '록킹 부기 리듬 rocking boogie rhythm'이라는 용어로 불렸다. 웃음은 이 비틀거림 사이에서 스며나온다. 가사의 테마는? 놀고 즐길 마땅 마땅한 대상이 없는 계층의 메시지는 대부분 비슷하다. 섹스, 술, 춤 등 세속적 쾌락을 찬미하고 자극하는 것이고, 찬미의 방식도 적나라하고 노골적이다.

1950년대 리듬&블루스 뮤지션들의 사진을 보면 대부분 파안대소하고 있다. 리듬&블루스를 계승한 소울(soul), 훵크(funk), 디스코(disco) 등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웃음이란 신체적 쾌락의 안면성(faciality)'이라는 말의 의미는 투명하게 전달된다. 이런 유형의 웃음은 머리로 곱씹어 이해하여 획득되는 지성적 충족감과는 거리가 멀다. 그 정반대다. 모든 방향으로 에너지가 흘러다니고 그 흐름들 중의 일부가 얼굴이라는 기관에서 주름을 만들어내었을 뿐이다. 신체적 쾌락은 자의식화되기 힘든, 아니 자의식화될 수 없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일까. 아무튼 신체적 무의식은 의식되지 않은 채 얼굴에 새겨지고, 눈과 입은 저절로 벌려진 것처럼 보인다. 그 입 속에 보이는 치아는 유난히 하얗게 보인다. 피부 색과 대조되기 때문인지, 아니면 흑인의 골상학적 특징 때문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런데 '흑인' 뮤지션들의 음악은 원초적 자기표현과 작위적 엔터테인먼트라는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쾌락은 때로는 순수한 환희가 되어 존엄성(dignity)으로 승화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슬픔과 고통의 가장으로 일관될 때도 있다. 가장만이 지속될 경우에는 자멸과 타락의 원천이 된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웃음은 난해한 기호학적 분석을 동원해서나 어렴풋이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입을 꽉 닫은 채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갱스터 래퍼(gangsta rapper)'들의 모습은? 닥터 드레(Dr.Dre)의 그들의 무소(無笑)는 파안대소의 단순한 역전으로 보인다.

 III.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불행히도 정확한 연도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1980년대 중후반 예기치 않았던 히트곡이 하나 있다. 주인공은 이남이라는 '중견 가수'였고, 노래 제목은 <울고 싶어라>다. 제목과 대조적으로 이 노래는 '코믹'했고 따라서 노래를 들은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웃음을 터뜨렸고 방송에 출연한 가수 스스로도 웃음을 머금고 노래불렀다.

일반 대중들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점차 그가 신중현과 엽전들의 베이스 주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신중현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록 음악'의 상징이고, 이남이는 록 음악을 퇴행시키고 타락시킨 인물의 표상이었다. 몇 년 뒤 김흥국의 <호랑나비>도 마찬가지다. 좀 의외일 지 모르지만 김흥국은 그룹 사운드 출신이고, 그 시절 딥 퍼플(Deep Purple)의 <Smoke On The Water>나 프로컬 하럼(Procol Harum)의 <A Whiter Shade Of Pale>을 연주했다고 본인 스스로 밝힌 바 있다.

두 가지 사례는 록 음악이 대중음악 중에서 '진지한 음악'이라고 간주되는 점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1960년대까지 한국의 대중음악인들은 미국의 흑인 음악인들처럼 생활했다. 음악 장르나 스타일이 그랬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스템'이 그랬다. 한국에서 대중가수란 작곡가 '선생님'과 음반사 '사장님' 휘하에서 노래부르는 '기능인'이었다. 한국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정은 비슷했을 것이다. 어쨌든 한국에서 가수나 연주인은 정당한 보수를 분배받지 못하고 쇼 비즈니스계 여기저기를 전전하는 존재였다.

현재도 트로트계는 이런 시스템 하에서 움직이고, 그래서 설운도나 송대관 등 트로트 스타들의 웃음은 앞에서 본 흑인 음악인의 웃음과 비슷하게 보인다. 특정한 곡으로는 신신애의 <세상은 요지경>이나 김자옥의 <공주는 외로워>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이 곡들에서 가수는 스스로를 한없이 낮춤으로써 웃음을 유도한다. 가창과 연주가 순수한 연예가 되면서 근엄한 얼굴의 위선이 폭로된다. 물론 이런 효과는 의도적이지 않을 때가 많고 본인들도 모르는 기능의 자동적 효과일 때도 있다. 따라서 이들의 안면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청중의 즐거움을 유도하는 기능에 의해서 측정된다. 노래하고 연주하는 사람은 '웃기는' 존재고, '웃는' 존재는 듣는 이다.

생각보다 이런 '전통'은 오래된 전통인데, <세상은 요지경>은 창작곡이 아니라 '리메이크곡'이다. 이런 스타일의 곡은 '만요(漫搖)'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서양의 보드빌(vaudeville)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하지만 이런 전통을 서양이 아닌 한국의 대중음악에서 찾지 말란 법도 없다. 강병철과 삼태기, 서수남과 하청일, 김용만, 김상국. 더 올라갈 수도 있다. 과문한 탓에 길고 상세히 논할 없는 게 유감이지만 '국악' 중에서 정악이 아닌 민속악 대부분은 웃음으로 그득하다. 판소리의 웃음은 중인 이하의 낮은 신분을 가진 '딴따라'가 스스로를 낯춤으로서 양반보다 높아지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광대가 광대임을 인정할 때 그는 더 이상 광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웃기는' 음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지한 음악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그런데 진지한 음악으로 취급되기 위해서는 웃음이 사라져 간다.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더라도 배후에 숨어 버린다. 이런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아무래도 서양에서 록 음악의 역사다.

 IV-1

다시 세계로 눈을 돌려 보자. 1950년대 중반 이후 대중음악의 주류는 '록 음악'이다.

방금 나는 록 음악의 역사는 웃음이 점차적으로 소멸하는 역사라고 말했다. 아주 단순하고 과감하게 말할 때만 그렇다. 어쨌든 최근의 록 음악 중에는 초기의 록 음악과 정반대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사례가 종종 발견된다. 물론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록 음악을 말하는 게 아니라, 각 시기의 '새로운' 음악에 해당되는 말이다.

록 음악은 앞서 본 흑인 대중음악의 시스템이나 한국의 주류 대중음악의 시스템과는 상이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한국에서는 미완의 스토리지만 영미권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완성된, 그리고 오래된 스토리다. 그날 그날의 생계를 벌기 위해서 몸을 움직여 일해야 하는 연예인이 아니라, 한 장의 작품('앨범')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저작권으로부터 비례적인 수입을 거두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록 음악의 역사는 그들이 거부하고자 했던 고전음악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 형태와 방식은 상이하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빌 헤일리(Bill Haley) 등 1950년대의 '백인' 로큰롤 스타나 비틀즈(The Beatles),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등 1960년대 초 로큰롤의 부활을 가져온 영국의 '백인' 로큰롤 밴드들은 모두 흑인 음악을 숭배했다. 달리 말해 이들 록 영웅들의 음악 미학은 로큰롤의 현세적 쾌락 원리를 기초로 하였다. 록 영웅의 이미지는 '성난 젊은이 angry young man'였지만 이렇게 '성난' 상태를 표현하는 방법은 기쁘고 즐거웠다. 초기의('1967년 이전의') 비틀즈의 대부분의 사진은 해맑게 웃는 소년의 이미지를 담고 있고, 그 웃음은 깔깔거리며 웃어대는 소녀 팬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별로 긴 말이 필요없다.

사태가 변한 것은 1964년 경 로큰롤이라는 용어가 단순하게 록으로 축약되면서부터다. 백인 '포크' 음악의 영향, 비트(beat)나 히피(hippie) 등 반문화(counterculture)의 영향, 기타 잡다한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가사는 갈수록 진지한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고, 음악적으로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록 음악은 이제 댄스 음악이거나 배경 음악이 아니었고, 자신의 뿌리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신체의 쾌락은 정신의 확장이라는 원리로 대체되었고, 원시적 리듬은 복잡한 사운드로 대체되었다. 댄스 리듬을 통한 신체적 쾌락이 모두 소멸한 것은 아니지만, 댄스가 록 음악을 듣는 사람의 '최적의' 반응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이키델리아의 전성기를 수놓았던 록 음악의 전위들의 안면은 밝게 웃는 표정이 아니라 무엔가 홀린 듯한 진지한 표정이다. 이제는 좀 진부한 이야기지만 기타 줄을 이빨로 물어뜯는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표정이나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며 마이크대를 잡은 짐 모리슨(Jim Morrison)을 상상해 보자.

그 뒤의 록 음악의 역사는 매우 복잡하지만, 록 순수주의자들이 '무거움의 미학'을 숭배하면서 '보통의' 팝 음악의 경박함을 경멸했다는 점은 대체로 동의할 수 있다. 음악인이나 수용자 양면 모두에서 크게 대조되는 헤비 메탈과 아트 록은 묘하게도 이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무거움의 미학은 때로 거만(pomposity)의 윤리학(혹은 反윤리학)으로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그래서 록 음악의 웃음은 과정 중에 배양되는 것이 아니라 성과에 대한 반응으로 주어진다. "나를 봐, 얼마나 잘하는지"

무거움과 거만의 짐을 덜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스스로를 희화화시키는 것이다. 자의식적인 패러디든, 의도적이지 않은 자기비하든, 이런 전략을 취한 예는 메탈 밴드의 한 전통을 이룬다. 1970년대의 앨리스 쿠퍼(Alice Cooper)나 키스(Kiss)로부터 최근의 1990년대의 매릴린 맨슨(Marylin Manson)과 화이트 좀비(White Zombie)에 이르는 전통이 그것이다. 화장을 짙게 하고 각종 소품들을 동원한 이들의 공연은 순수한 '쇼'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무섭고 공포스러울 지도 모르지만, 이들이 누군지 아는 사람이 들으면 깔깔대고 웃을 수 있다. 이들은 '화이트 트래쉬 컬처(american white trash culture)'라고 불리는 교양없고 저질적인 대중문화의 음악적 등가물이고, '현대의 천민'의 反영웅이다. 자신을 골빈(brainless) 존재로 만들어 버릴 때 현실의 부조리함이 폭로된다.

이들 스스로는 절대 웃지 않으며, 오직 보고 듣는 사람만이 웃을 뿐이다. 만약 이들마저 웃어버린다면 웃음의 기회는 박탈된다. 가끔은 이들이 무대 뒤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무대 밖의 모습을 보면 무대 위의 모습을 보고 웃어대던 사람들에게는 슬픔이 밀려올 지도 모른다.

 IV-2

1960년대 록과 '코미디'를 결합한 프랭크 자파(Frank Zappa)라는 존재가 있었다. 미국적 교양에 익숙하지 않으면 그의 음악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웃음도 나오기 힘들다. 그의 음악을 듣고 '웃긴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고도의 지성적 작용을 경유해야만 한다. 자파의 '연기'는 하이브라우 개그(highbrow gag)에 가깝고, 그가 유도하는 웃음은 신체의 에너지의 채취라기 보다는 포획된 에너지의 두뇌를 통한 재순환에 가깝다.

자파와는 또 다르지만 1970년대 초 등장한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연기도 볼만하다. 그는 작위적 연기라는 뜻의 '캠프(camp)'의 전통을 만들어낸다. 이 전통은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와 이레이저(Erasure) 등 1980년대 영국의 '팝' 뮤지션들에게서 잘 드러나는 특징이다. 그 전에 '펑크의 원조' 섹스 피스톨스(The Sex Pistoles), 그 후의 '그런지의 주역'인 (미국의) 니르바나(Nirvana)의 일련의 퍼포먼스도 캠프의 미학을 동원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펑크나 그런지의 순수주의자들에게는 불경스러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이들 '캠프 페르소나'들은 앞서 본 트래시 컬처의 아이콘들처럼 상황을 웃음바닥으로 만들어버리지는 않는다. 이들은 진지한 예술과 천박한 연예 사이를 오가면서 진짜와 가짜를 혼동스럽게 만든다. 그 점에서 이들은 아이러니의 숭배자이고 대중음악계의 모더니스트들이고, '취향의 귀족'의 영웅이다.

여기서 나는 다음의 경구를 떠올리게 된다. "웃음도 울음도 희열의 천국에서는 나타날 수 없다. 양자 모두 슬픔의 아들이며 쇠약해진 인간이 자신을 통제할 육체적 힘을 잃었을 때 등장한다". 시인 보들레르(C.Baudelaire)의 '기독교적 철학'이다. 그는 웃음의 본질이 "타락 상태의 기호"라고 보고 있다. 서양의 예술인들이 웃음을 소멸시키면서까지 도착하고자 하는 곳은 '웃음도 눈물도 없는 희열의 천국'인 듯하다. 수천년간 기독교의 지배 아래 살아온 서양인들은 그런가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1980년대 영미권의 '인디' 록 음악계에 '슬픔의 타고난 자식들(sorrow's native son)'들이 유난히 많았던 점도, 또 개중에는 웃음과 울음을 넘어 탈속적(ethereal)인 사운드(와 노이즈)에 침잠해서 허우적대던 점도 납득이 간다. 슬픔에 침잠하여 웃음을 거두어 버리든가 아니면 웃음과 울음을 비롯하여 모든 세속적 감정을 초월해 버리든가. 모리시(Morrissey), 로버트 스미스(Robert Smith), 마크 코젤렉(Mark Koselek) 등은 전자에 속하고, 콕토 트윈스(Cocteau Twins), 스페이스멘 3(Spacemen 3),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ooldy Valentine) 등은 후자에 속한다. 물론 이런 이름들은 한국에서는 '모던 록 매니아'들에게나 알려졌을 뿐이지만. 이들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이들은 법적 국적과 무관하게 우울하고 비참한 정서를 가진 '앵글로-어메리컨(anglo-american)'들이다. 백인우월주의자가 아니라 백인우울주의자.

 V

현재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인디' 밴드들 중에서 황신혜 밴드는 특이한 존재다. '인디' 음악계에서 웃기는 밴드가 그들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등장했을 때 일부에서는 '산울림의 재림'이라고 말하곤 했다. 산울림은 "아니 벌써"라는 일성으로 데뷔했다. 그 뒤 음의 웨이브는 공중을 날라다닌다. 디스토션 이펙트를 입힌 기타 사운드는 뜨겁게 지글거리다가도 가볍게 증발한다. 그래서 산울림의 음악은 마냥 웃기지는 않는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대수라는 존재가 있다. 따지고 보면 참 이상하다. 1970년대의 '대학생 통기타 코뮌'의 '싱 얼롱 타임'은 박수치고 웃는 즐거운 시간이었던 반면, 당시의 통기타 가수들은 고독하고 쓸쓸한 모습으로 기억되니 말이다. 각설하고. 한대수가 -- 그리고 어느 정도는 송창식도 -- 당대의 '포크송 가수'와 달랐던 점은 그의 음악에 스며있는 '웃음'이었다. 최근에 복각된 그의 2집에 수록된 <고무신>에서의 질펀한 웃음부터 <나그네길>에서의 쓸쓸한 웃음에 이르기까지 웃음의 방식도 다채롭다. 한국에서 활동하던 시절 그는 '미국적인' 인물로 치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에 담긴 웃음은 동양적이고 때로 선(禪)적이다. 유신이 선포되기 직전인 1972년은 웃음의 해였다. 그의 웃음을 언제 누구에 의해 멈춰졌는가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그렇게 본다면 1977년 산울림의 웃기는 사운드는 오히려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들린다.

어떤 증견 음악평론가가 한대수를 '한국 펑크의 원조'로 대우한 것은 웃기는 일이다. 너무도 진지하게 말했기 때문에 더욱 웃긴다. 그런데 이를 두고 '히피와 펑크의 차이도 모르나'라고 진지하게 대응하는 건 더 웃긴다. 재미삼아 들으면 된다. 그런데 한대수도 산울림도 본격적으로 웃기려고 마음먹은 건 아니다. 본격적으로 웃기려고 마음먹은 '진지한' 음악인이 나오려면 1995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삐삐 밴드가 그들이다. '가벼우면서도 경박하지 않은' 이라는 화두가 당시의 미덕이었기에 그들은 '쿨'한 청중들로부터 환대받았다. 그 뒤의 스토리는? 삐삐밴드는 충격의 감퇴에 시달렸고, 황신혜 밴드는 감퇴된 충격을 연사하고 있다. 더 큰 충격과 감퇴된 효과는 서로 상쇄된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이들의 음악은 '안 웃기는' 음악이 되어버렸다. 아이러니가 '극복될 무엇'이 아니라그자체로서 현실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이론은 의외로 대중적이지 않다. 새로운 웃음은 아이러니와의 투쟁 속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산울림과 삐삐밴드 사이의 기간 동안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한국의 진지한 대중음악인들은 고독과 슬픔과 우울에 젖어 있었다. 이들 역시도 슬픔의 자식들이자, 80년대의 자식들이었다. 이때 '80년대'란 386 세대 어쩌구하는 말 속에 있는 8이라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건 좀 더 '글로벌'한 의미다. 한편으로는 험악하고 무자비한 현실이 전개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화려하고 번드르르한 주류 쇼비즈니스가 위세를 떨친 시기다. 난세일수록 많다는 은자들은 대부분 슬픔의 자식으로 태어나는가 보다. 1986년은 쌓여있던 슬픔이 세상밖으로 분출한 해이다. 한영애, 하덕규, 조동익, 들국화, 그리고 시나위까지도.

인디 밴드들 가운데 델리 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미선이 등은 1977년과 1986년을 결합시켜서 무시못할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이들의 성공의 비결에는 다른 이유가 더 많겠지만. 만약 이들이 아이러니와의 투쟁에 성공한다면 새로운 형식의 웃음이 탄생할 지도 모른다. 물론 아슬아슬한 긴장의 과정이 지속적으로 닥쳐올 것이다. 음악과 웃음? 음악은 낡은 웃음을 소멸시키고 새로운 웃음을 생성한다는 말 정도로 그치자. 그 이상 얘기하면 이들이 던져주고 있는 잔잔한 웃음마저 사라진다. 이 글이 '웃기지도 않는' 글이 되거나.

1999.7.20.
서울예대 학보에 수록됨.
1999 신현준 (gilles@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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