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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 폭발 10주년에 부치는 초라한 정리

목차

1. Intro
2. 시애틀 로컬 인디 씬
1) 인디 레이블과 '비즈니스의 정치'  2) 시애틀 '로컬' 씬
3. 그런지의 미학

1) 날카로운 노이즈로부터...  2) 무겁고 지저분한...  3) 유사하면서 다양한...
4. 그런지의 문화정치적 코드
1) 계급과 인종 2) 세대 3) 섹슈얼리티
5. Outro
[용어 해설]
[그런지 연보: 1981-1996]

 

1. Intro

얼터너티브 '폭발' 10주년을 기념하여 '시애틀 그런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지금 어떤 의미를 가질까. 분명한 것은 즐겁고 유쾌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물론 '대중음악의 변방에 앉아서 오래 전 다른 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회상하는 게 다 그런 거지'라고 마음을 달래 보지만, 1977년에 1967년의 '플라워 무브먼트'를 회상하거나 1986년에 '대영제국의 아나키'를 회상한다면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록 음악의 역사'의 위대한 모멘트들이 나름의 자부심을 가진 주역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반면, 그런지는 상처받고 쇠약한 주역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를 회상하는 일은 이제 막 아물려고 하는 생채기를 덧나게 하는 일만 같다.

그래서 5년 전에 썼던 글을 가져와서 다듬으면서 그때 어떤 생각을 했었는가를 검토해 보기로 했다. 불행히도 별달리 추가할 말이 없다. 그때 이후 관심을 끊어서 그런 것일까. 혹시 그런지가 안겨준 상처를 치료할 수단을 찾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초라하고 밋밋한 정리 뿐이다. 참을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찾아간 정신과 의사가 아주 관습적 어투로 정신의학 교과서를 인용하여 '당신의 병은 어쩌구 저쩌구...'라고 하는 말 같은 정리 말이다.

2. 시애틀 로컬 인디 씬

1) 인디 레이블과 '비즈니스의 정치'
너바나(Nirvana)와 펄 잼(Pearl Jam) 등이 선도한 시애틀 그런지가 얼터너티브 록 '폭발'의 중심이라는 건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디 씬이라는 일반적 조건과 북서부의 특수한 조건을 모두 고려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인디 씬의 생산주체인 인디 레이블에 대해 몇 가지를 짚어 보자.

인디 레이블의 경영관은 일반적으로 지역의 음악적 발전을 수집하고 배급함으로써 음악을 이윤추구의 수단으로부터 해방시켜서 "생존의 양식"으로 삼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시장의 논리보다는 뮤지션의 자율성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경영방식을 채택한다. 이상적인 인디 레이블의 경우 밴드가 원하지 않으면 계약을 하지 않고, 이윤은 투명하게 반분하며, 음반도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판매한다. 이런 인디 록의 윤리가 1970-80년대 펑크 운동의 계승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펑크의 반(反)프로페셔널리즘은 DIY(Do It Yourself), 저(低)예산주의, 로 파이(lo-fi) 레코딩 등의 윤리를 탄생시켰고, 몇몇 지역에서는 이를 신조로 삼는 흐름이 나타나 지방의 인디 씬을 형성하였는데, 시애틀도 그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인디 록은 기타 주법이나 보컬 스타일, 심지어 음악적 장르를 넘어서는 개념이다. 얼터너티브를 규정할 때 뮤지션쉽 못지 않게 인디의 태도(attitude)를 중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디의 태도는 기성의 규칙을 따르지 않으며 지배적 취향에 영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진정성(authenticity)의 규범을 확립하였다. 지방 씬들의 사이에, 심지어 같은 지방 씬 내에서 상이한 음악적 스타일을 가진 뮤지션들이 공존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이에 잠재적 연대의식이 형성된 것은 이 점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지방의 인디 씬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뒤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즉, 지역 팬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더 많은 청중을 확보하면서 전국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가 라는 양자택일에 직면하게 된다. 이때 후자의 옵션을 택하는 경우 메이저 레이블과의 제휴는 불가피하다. 인디 레이블의 재정상태가 양호한 경우 두 개의 옵션 사이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재정상태가 어려울 경우 선택의 폭은 좁아진다.

1986-88년 경의 시기는 후자 쪽에 가까왔다. 인디 레이블들은 메이저 레이블과 다양한 형태로 제휴했고, 허스커 두(Husker Du)나 R.E.M. 같은 인디 록의 영웅들은 메이저 레이블에 서명하였다. 시애틀 밴드들 중에서도 사운드가든(Soundgarden)이 이들과 비슷한 궤적을 밟은 경우다. 특기할 만한 것은 다른 지역에 비해 시애틀 밴드들의 음악적 스타일이 비교적 비슷하여 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2) 시애틀 '로컬' 씬

미국 북서부에 위치한 시애틀은 미국에서 '살기 좋은 도시'라고 하며, 향기 좋은 커피와 값싸고 맛있는 맥주로도 유명하다. 북서부는 몇몇 지역과 더불어 인디 씬이 형성된 지역이었지만, 얼터너티브 록 폭발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그곳이 폭발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음은 틀림없다. 우선 이 지역이 1980년대의 메인스트림 팝 및 라이트 메탈의 본거지인 LA로부터 먼 거리에 있고, 워싱턴 대학과 에버그린 주립 대학 같이 학년제가 없는 자유로운 대학교들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즉,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대안적 음악에 대한 수요층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수요에 부응하여 음악을 공급하는 움직임도 활발했다. 이 지역에서 인디 레이블의 효시는 펑크 밴드인 비트 해프닝(Beat Happening) 출신이자 KAOS 라디오의 DJ 출신인 캘빈 존슨(Calvin Johnson)이 워싱턴주 올림피아에 설립한 K 레코드다(유명한 이야기지만 커트 코베인의 팔 뒤에는 K 레코드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 그렇지만 보다 넓은 영향력을 행사한 레이블은 아무래도 서브 팝(Sub Pop)이었다. 서브 팝은 1979년에 브루스 패빗(Bruce Pravitt)과 조나단 폰맨(Jonathan Poneman)이 공동으로 만든 팬진인 [서브터레이니언 팝 팬진(Subterranean Pop Fanzine)]을 모태로 한다. 패빗은 에버그린 주립대학 출신으로 컬리지 라디오 방송국에서 DJ를 보았던 경력이 있고, 폰맨은 라디오 DJ와 클럽의 부커(booker) 출신이었다.

사운드가든
서브 팝은 팬진 뿐만 아니라 컴필레이션 카세트 시리즈를 발매하여 인디 씬의 정보 센터 역할을 수행하면서 점차 팬들의 컬트적 추종을 확보했다. 그리고 1986-87년부터 본격적으로 레코드를 발매하기 시작했다. 그린 리버(Green River)를 시작으로 사운드가든(Soundgarden), 머드허니(Mudhoney) 등의 레코드를 발매했고, 1988년에는 너바나의 [Bleach]를 녹음하였다.


스스로 "민주적 자본가"라고 부르는 패빗은 음악이 지역 공동체의 환경을 반영해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서브 팝을 운영했다. "우리는 밴드들 못지 않게 팬들을 존중한다"는 그의 말처럼 서브 팝은 뮤지션과 팬들 사이에 친밀감을 형성하고자 노력했으며, 그래서 서브 팝의 홍보용 사진들에는 밴드들만이 아니라 팬들도 많이 등장한다. 그런지라는 용어도 서브 팝에 의해 처음으로 유포된 것이다.

3. 그런지의 미학

1) 날카로운 노이즈로부터
그런지는 디스토션을 많이 걸었을 때 나오는 날카로운 기타 노이즈의 의성어였다고 한다. 한국말로는 보통 '지글거린다'라고 표현되는 이 '그런지 톤'은 시애틀 출신 밴드들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서브 팝 산하의 밴드들이, 나중에는 시애틀 출신의 밴드들 대부분이 '그런지 밴드'라고 불리게 되었다. 나아가 그런지는 '화려하고 삐까번쩍하다'라는 뜻의 단어 글릿치(glitzy) 혹은 글램(glam)과는 반의어로 사용되었다. 물론 이것만 가지고는 그런지 록의 음악적·음향적 특징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사운드가든의 기타리스트 킴 테일(Kim Thayil)은 "졸리고, 끈적거리고, 비틀거리고, 술 취한 음악"이라고 정의했다. 뮤지션답다. 프로듀서인 잭 엔디노(Jack Endino)는 "1970년대로부터 영향받은, 속도가 느려진 펑크 음악"이라고 말했다. 프로듀서답다. 평론가 너대니얼 와이스(Nathaniel Wice)는 "하드 록의 소울풀(soulful)한 변종"이라고 정의했다. 평론가답다.

혹시나 북서부 지역의 전통을 추적할 수는 있을까? 시애틀 출신의 뮤지션으로는 지미 헨드릭스라는 독보적 존재를 들 수 있지만, 그는 '기타의 거장'이라는 보편적 의미가 강해서 지역적 특성을 떠올리기는 힘들다. 특기할 만한 움직임이 있었다면 펑크의 기원을 추적하는 중에 킹스멘(Kingsmen: 포틀랜드), 소닉스(Sonics: 타코마) 등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에 활동했던 밴드들의 존재가 확인된다는 점이다(소닉스는 커트 코베인이 애청하는 밴드 중의 하나였다).

Kingsmen - Louie Louie
Sonics - Boss Hoss
Blue Cheer - Good Times Are So Hard To Find

이들 북서부의 거라지 밴드들은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샌프란시스코의 블루 치어(Blue Cheer), 디트로이트의 스투지스(Stooges)와 엠시 파이브(MC5) 등과 더불어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다. 이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무거운 사운드, 어둡고 음울한 정서는 1960년대 록의 주류의 낭만적이고 도취적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들이 사후적으로 '프로토 펑크(protopunk)'라고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일부는 펑크로, 일부는 메탈로 계승되었다.

따라서 굳이 북서부의 고유한 전통을 추적하는 것보다는 1960-70년대 상황에서 록의 주류로부터 소외되었던 흐름들을 그런지의 먼 기원으로 보면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즉, '1960년대의 진정한 록(authentic rock)'이라는 신화에 가린 펑크와 메탈이 그런지의 주요 성분이다. 그런지를 정의할 때 "1970년대의 영향"을 언급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2) 무겁고 지저분한...
그런지의 효시는 멜빈스(Melvins)라는 설이 유력하다. 버즈 오스본(Buzz Osbourne)의 기타가 주도한 멜빈스의 사운드는 "현존하는 밴드 중 가장 속도가 느린 기타 하드 록 밴드(hard guitar rock band)"라는 평가처럼 무겁고 지저분하고 템포가 느리다. 커트 코베인이 한때 멜빈스에 오디션을 본 일을 포함해 너바나의 데뷔 앨범 [Bleach]의 사운드는 그 영향을 잘 나타내 준다.

그런지 밴드들은 무거운 사운드를 내기 위해 몇 가지 기법을 사용한다. 즉, 기타 줄 전체를 반음 혹은 한음 낮게 튜닝하거나, 적어도 6번 줄을 한 음 낮게 튜닝하는 등 변칙 조율을 할 때가 많다. 드럼 주법 역시도 스네어 대신 베이스를, 하이 해트 대신 톰톰을 강조한다(역시 '낮은' 부분이다).

한편 리듬 패턴은 16비트를 기초로 하는 1980년대의 스피드/쓰래쉬 메탈과는 달리 고전적인 8비트라서 그런지는 얼핏 듣기에 복고적으로 들린다. 그렇지만 그런지를 단지 복고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거칠어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정교하고 매끄럽게 정돈된 '상업적' 하드 록 사운드와 달리 그런지 사운드는 다듬어지지 않은 채 지저분하고 혼돈스럽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기타 톤이다.

종종 '땡땡하다'라고 표현하는 하드 록/헤비 메탈의 디스토션과는 달리 이들의 디스토션은 더욱 볼륨을 높여서 마구 지글거리도록 방치하여 매우 지저분한 느낌을 준다. 나아가 극단적으로 지글거리는 '퍼즈 톤'과 이펙트를 거의 가하지 않은 '생' 톤 사이에 갑작스러운 이행이 발생한다. 또한 빈번히 사용되는 피드백의 노이즈, 강렬한 감정을 토로하는 보컬, 둔탁하게 퍽퍽거리는 드럼 사운드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3) 유사하면서 다양한...
그런지 밴드들의 공통점은 이 정도에서 그친다.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선호한다면 멜빈스가, '쓰리 코드 거라지 록'을 선호한다면 머드허니가 그런지의 정수일 것이다. 이 두 밴드들이 메이저의 세계로 돌파(breakthrough)하려는 의사가 없어 보인다면 헤비 메탈의 무겁고 강력한 사운드를 낭만적이고 묵시록적 분위기와 결합시킨 사운드가든은 무언가 다르다. 게다가 사운드가든은 그들 특유의 변박과 엇박을 자유로이 사용한 리듬의 운용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너바나는 "매우 무겁지만 그와 동시에 멜로딕한 음악을, 즉, 헤비 메탈과는 다른 음악, 다른 태도를 찾고 있었다"는 커트 코베인의 말처럼 의외로 경쾌한 멜로디와 변화무쌍한 코드진행이 인상적이다. 이를 위해 너바나는 갱 오브 포(Gang Of Four), 허스커 두(Husker Du), 레인코츠(The Raincoats), 배슬린스(The Vaselines) 같은 음악을 원용한다(커트 코베인은 이들을 '뉴 웨이브'라고 통칭하곤 했다). 이들의 영향 위에 너바나는 통상 'stop-and-start'라고 불리는 독특한 진행을 발전시켰다.

The Vaselines - Son Of A Gun

앨범 [Dirt]를 내놓고 활동하던 시기의 앨리스 인 체인스
보다 대중적으로 호소한 펄 잼과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는 또 다르다. 펄 잼은 뒤늦게 들어온 보컬리스트 에디 베더(Eddie Vedder)의 영향으로 후(The Who), 에어로스미스(Aerosmith) 등 보다 관습적인 하드 록을 계승하면서 자신들의 음악에 생기와 활력을 부여한다. 앨리스 인 체인스는 초기에는 라이트 메탈로 출발하여 푸대접을 받다가, 싸이키델릭 록을 성공적으로 결합시켜 음산하고 흐느적거리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무겁고 지저분한' 그런지가 경박하고 깨끗한 1980년대의 팝 메인스트림의 안티테제라는 효과를 가졌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 점에서 그런지의 미학은 단지 음악적 차원을 넘어 보다 폭넓은 문화적 컨텍스트에 위치한다. 그런지는 '본의 아니게' 1990년대 대중문화의 새로운 형세의 첨병이 되었다. 그들의 음악에는 정치적 '의도'는 없었지만 정치적 '효과'를 낳게 된 것이다.

4. 그런지의 문화정치적 코드

1) 계급과 인종
펄 잼의 에디 베더
록 음악, 특히 펑크 록의 '노동계급 청년의 반항'이라는 신화를 그런지에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물론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과 펄 잼의 에디 베더는 출신 성분 상 노동계급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는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 그리고 이들 역시 음악활동을 전개하면서 '백인 중산층 대학생'의 정서를 대변했다. 이는 물론 시애틀 그런지 뿐만 아니라 1980년대 초 하드코어 펑크 이래 미국 인디 록의 전반적 경향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백인 중산층'이 대중문화의 주류가 되어보지 못한 적은 1980년대가 처음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1960년대의 '언더그라운드의 록 혁명가'들이 본의 아니게 주류 연예계로 신속하게 흡수된 것에 비한다면, 1980년대는 록의 언더그라운드가 장기간 지속된 드문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오히려 1980년대 미국의 대중문화계는 '노동계급'과 '흑인'에 의해 지배적 표상을 획득했다. 메인스트림 록 음악계는 '블루 컬러의 영웅'인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이 지배했다. 뒤에 등장한 라이트 메탈의 스타들도 노동계급 출신임을 숨기지 않았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들과는 대조적인 마돈나(Madonna)의 경우도 이 점에서만은 마찬가지였다. '로큰롤 드림'은 노동계급의 몫이었고, 백인 중산층은 여기서 예외였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라이오널 리치(Lionel Ritchie), 프린스(Prince)로 상징되는 흑인 팝 슈퍼스타들의 존재도 1980년대적 현상 중의 하나다. 이들이 '흑인의 목소리'였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하드코어 랩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대두하기 전까지 이 슈퍼스타들이 미디어에서 흑인의 주요한 표상이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즉, 1980년대 게토에서의 흑인의 실제의 삶과는 동떨어지게 미디어에서의 흑인의 표상은 '부당하게 억압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재능만 있으면 성공하는 존재'였다.

USA For Africa의 앨범 [We Are The World] 커버
흑인 팝 스타들 중에서 프린스는 조금 다르게 평가해야겠지만, 여타의 흑인 팝 슈퍼스타들은 백인 팝 스타들과도 친화력이 강했다. 그들은 1980년대의 정오를 수놓은 "We Are The World"를 합창했다.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 폴 영(Paul Young), 필 콜린스(Phil Collins),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 등의 이른바 '화이트 소울(White Soul)' 뮤지션, 또는 '흑인처럼 노래부르는 백인'은 이제 더 이상 전복적이거나 반항적이지 않았다. 그건 오히려 건강과 효율을 지고의 덕목으로 삼아 성공을 거두었고, 그 뒤에는 타인과 세계에 대해 폭넓은 관심과 배려를 보이는 여피의 에토스에 포섭되었다.

1980년대 대중문화에서 '백인 중산층'의 일부가 소외되었다는 것은 이런 문화적 컨텍스트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지의 정체성은 '효율적 자기관리'와 대조되는 여피 이후의(post-yuppie) '영 아메리칸'이었다. "우리는 맨지르르하고, 인위적이고, 깨끗한 것에는 신물이 난다. 우리는 거칠고 위험한 것을 원한다"라는 롤라팔루자 페스티벌에 참석한 어떤 청중의 말처럼 1990년대 미국 청년들은 1980년대 '화려했던' 신보수주의 문화와 결별하려고 한다. 그래서 1990년대 이후 매스 미디어에 등장하는 (백인) 아메리칸의 지배적 표상은 '소외되고 좌절되고 상처받은 존재'였다. '아메리칸'이나 백인'이라는 코드는 너무 보편적이므로 그 뒤에는 '청년'이라는 코드가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청년이라는 코드 역시 만만치 않게 보편적이지만.

2) 세대

세대 갈등이 록 음악이 주요한 주제라는 점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특이한 것은, X세대들이 갈등을 빚고 있는 부모 세대들이 20-30년 전 기성세대에게 전면적 반란을 수행했던 히피 세대라는 점이다. 킴 테일은 "40대 중에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X나게 많다... 그들은 멍청하고 고약한 히피들이거나,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타락한 여피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런지 문화는 때마침 대두한 'X세대'에 관한 담론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더글러스 커플랜드(Douglas Coupland)의 책 [X세대]의 주장은 기성세대는 미래를 앗아갔고 X세대에게 쓰레기만을 남겨 주었다는 것이다. 커플랜드에 의하면 X세대들은 "낮은 급료, 낮은 위신, 낮은 존엄성"에 직면하고 있고, 따라서 그들은 '야망이 없는(No Ambition)' 무기력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들의 견해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런지 세대가 기성 세대에 환멸을 느꼈으며 그 기성세대에는 '히피 부모들'도 포함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물론 히피를 부정했던 것이 그런지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1970년대 말에 런던 펑크는 히피의 이상주의를 거부하고 "미래는 없다(No Future)"라는 허무주의적 부정을 단행했다. 이를 계승한 미국의 하드코어 펑크도 "사회를 엿먹여라(Fuck Society)"라는 공격적 노선을 고수했다.

그런데 그런지는 하드코어 펑크와도 차이가 있다. 아주 예민한 그런지 뮤지션에 의하면 하드코어조차도 '아메리칸 드림'의 변종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Fuck You"의 정서를 스스로에게도 적용한다. 그들의 슬로건은 "I'm Fucked up"이고, 그들의 정체성은 "예민한 낙오자(sensitive loser)"이고, 그들의 세대 정치는 무관심의 정치(politics of indifference)이다.

따라서 몇몇 사람들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그런지 밴드들은 1960년대의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이나 1970년대의 클래쉬(The Clash)처럼 많은 청년 대중을 결집시키고 집단적 저항을 조직할 목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단지 개인의 내면에 새겨진 고통과 분노와 좌절과 무력감을 드러낼 뿐이다. '세상은 X같지만, 우리는 세상을 바꿀 힘도 없다'는 것이 그런지의 정서이다. 따라서 이들의 가사는 음악만큼이나 분열적이고 혼돈스럽고, 때로 매우 난해하다. 이들은 포퓰리즘 선동가라기보다는 모더니즘 예술가에 가깝다. '세대의 목소리'라는 칭호조차 이들에게는 영예라기보다는 차라리 부담이었다.

그런데 단지 개인의 정서를 표현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음악을 듣게 만든 것이 그런지의 모순이었다. 대부분의 그런지 밴드들은 '자의반 타의반' 메이저 레이블의 전국적 배급망에 의존했고, 결국 주류의 세계와 피곤한 싸움을 수행해야 했다. 차라리 영원히 지방의 언더그라운드에서 소수의 추종자만을 거느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편이 나았을까. 어쨌든 이제 아무도 사태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I hate myself and I want to die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무관심이 스스로를 향하게 되면, 자기파괴적인 위험한 순간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무관심의 정치는 사라 퍼거슨(Sarah Ferguson)이 말한 '손상의 정치(The politics of damage)'로 역전된다. "나는 나를 증오하고 죽고 싶다('I Hate Myself... And I Want To Die')"는 너바나의 노래 제목은 그런지의 위험한 순간을 잘 나타낸다. 그런 면에서 약물복용도 1960년대와는 다르게 기능한다. 히피 세대들에게 LSD복용이 정신세계를 확대한다는 낭만적인 행동이었다면, 그런지 세대들에게 헤로인은 감정을 무화시키는 자해적 행동이다. 그리고 주지하듯이 커트 코베인은 그 위험한 순간을 견디지 못했다.

3) 섹슈얼리티

음악적인 면에서 메탈과 공통분모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태도 면에서 그런지는 메탈과 대극적이다. 그런지 밴드들은 대부분 남성 밴드들이지만, 이들은 적어도 남성의 섹슈얼리티가 다원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커트 코베인, 에디 베더, 크리스 코넬 등 그런지의 아이콘들은 각각 상이한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허세부리는 마초'라는 록 스타의 관습과 대결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커트 코베인은 강인해 보이지만 나약하고, 에디 베더는 겸손하고 도덕적이며, 크리스 코넬은 거만해 보이지만 지성적이고 열정적이다. 각자의 개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런지 뮤지션들은 AIDS퇴치 자선 공연인 [대안은 없다(No Alternative)]라든가, 낙태반대 입법을 반대하는 [록 포 초이스(Rock For Choice)] 등 성 정치와 관련된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커트 코베인은 이 점에서도 첨단의 위치에 섰다. 그가 문화적 아이콘이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의 동성애적 태도였다. 청소년기에도 '계집애 같은 놈(faggot)'이라는 혐의를 받아왔던 그는 "나는 실제로는 게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스타덤에 올라선 뒤에도 그는 "나는 어떤 사람의 남성적 측면보다는 여성적 측면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고 공언했으며, 그의 부인 커트니 러브(Courtney Love)와 함께 "실제로 동성애 관계를 가져 본 적은 없지만, 양성애적 태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At this point I have a request for our fans. If any of you any of way hate homosexuals, people of different colour, or women, please do this one favor for us - leave us the fuck alone! Don't come to our shows and don't buy our records". - Kurt Cobain

너바나의 많은 노래들은 그의 모호한 섹슈얼리티를 드러낸다. 아들을 원했던 부모 밑에 사는 딸의 심정을 노래한 "Been A Son"은 마치 페미니즘의 송가 같았고, "All Apologies"에서는 "모든 사람은 게이다"라고 외쳤다. 그 외에도 유괴 당해 강간당하는 소녀의 절망을 담은 "Polly"나 낙태의 딜레마를 피력한 "Pennyroyal Tea", 그리고 강간의 악순환을 묘사한 "Rape Me" 등의 곡들은 여성에게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그의 노력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

시각적인 면에서도 창백한 안색과 왜소한 체구에 플란넬 셔츠와 찢어진 청바지를 걸친 커트 코베인은 혈색 좋고 큰 덩치에 가죽 재킷과 스판덱스를 입은 마초 이미지의 록 스타에 대한 '안티테제'였다. 실제로 커트 코베인은 1992년 MTV 시상식에서 스판덱스의 상징인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액슬 로즈(Axle Rose)와 심하게 충돌했다. 너바나는 종종 화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은 채 공식 석상에 등장했으며, 커트 코베인과 크리스 노보셀릭(너바나의 베이시스트)은 동성애자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한 TV 쇼에서 키스하는 장면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런지의 무관심의 정치는 성 정치의 영역에서만은 예외이다. 이제까지 록의 정치는 세대 갈등을 중심으로 하면서 계급적 저항이나 인종차별 반대 등을 결합시켜 왔다. 그런지는 계급이나 인종 등 고전적인 정치적 소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지만, 성 정치에서는 풍성한 사례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 효과를 낳기도 했다.

5. Outro: Fuck You & Thank You
그런지는 많은 면에서 모호하고 역설적이다. 아마추어적이면서도 프로페셔널하고, 로컬 음악이면서도 전국적·국제적 음악이고, 개인적 표현이면서 집단적 반항이고, 냉소적으로 비아냥거리면서도 따뜻하게 배려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런지는 20세기 최후의 "세대의 목소리"로 기록될 것이다. 한편으로 그런지는 1980년대 이후의 청년들은 '야망이 없다'라든가, 청년 반항이 시효만료되었다는 주장을 부정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청년 반항이 더 이상 통일되고 결집된 형태를 취할 수 없다는 점도 드러냈다. 어떤 록 뮤지션이나 밴드가 청년 전체를 대변할 수 있다는 환상을 해체하는 대신 그런지는 '청년이라는 동질적 집단의 목청 큰 목소리가 아니라, 찢어지고 파편화된 국지적 집단의 목소리'를 설파했다.

5년 전에 그런지의 이런 특징에 대해서 "그런 점에서 그런지는 하나의 중심 아래 뭉치는 것보다는 산개된 복수(複數)의 목소리들 사이의 연대를 모색하라고 절규한 듯하다"라고 쓴 일이 있다. 그런데 산개된 복수의 목소리들 사이에 별다른 소통도, 연대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지금의 현실을 바라보면, 그런지야말로 '양날을 가진 칼' 같은 존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단지 또 하나의 노스탤지어에 지나지 않을까? 아니면 그저 대중음악 팬의 일반적 속성인 변덕일 뿐일까? 20011025


[그런지 연보: 1981-1996]
(이 연보는 완성된 것이 아니고, 또 시애틀 그런지 중에서 이른바 Big 4 위주로 만든 것입니다.)

1981 사운드가든 결성
1986. 12 너바나 결성. 당시의 라인업은 커트 코베인, 크리스 노보셀릭, 아론 버크하르트.
1987 앨리스 인 체인스 결성
1987. 10 사운드가든, 서브 팝에서 EP [Screaming Life] 발표
1988. 8 사운드가든, 서브 팝에서 미니앨범 [Fopp] 발표
1988. 11 너바나, 싱글 "Love Buzz/Big Cheese" 발표
1988. 11 사운드가든, SST에서 [Ultramega OK] 발표
1989. 6 너바나, [Bleach] 발표
1989. 9 사운드가든, A&M에서 [Louder Than Love] 발표
1989. 3 마더 러브 본의 보컬리스트 앤드류 우드,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사망
1990 제프 아멘트와 스톤 고사드 중심으로 펄 잼 결성
1990. 6 앨리스 인 체인스, 미니앨범 [We Die Young] 발표
1990. 8 앨리스 인 체인스, [Facelift] 발표
1990. 9 너바나에 데이브 그롤(Dave Grohl) 합류
1990. 10 너바나, 영국 순회공연
1990. 12 사운드가든의 크리스 코넬, 매트 카메론과 마더 러브 본의 스톤 고사드, 제프 아멘트가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템플 오브 더 독의 앤드류 우드 추모앨범 [Temple Of The Dog] 발표
1991 에디 베더, 펄잼에 가입
1991. 4 너바나, 게펜 레코드와 계약
1991. 9 너바나, [Nevermind] 발표
1991. 10 펄 잼, [Ten] 발표
1991. 10 사운드가든, [Badmotorfinger] 발표
1991. 11 앨리스 인 체인스, 미니 앨범 [Sap] 발표
1992. 1 너바나의 [Nevermind], 빌보드 앨범 차트 1위(2월 1일자). 차트에 등장한지 17주만에, 각각 팝과 컨트리계의 슈퍼스타인 마이클 잭슨과 가쓰 브룩스의 앨범을 밀어내고.
1992. 2 커트 코베인, 커트니 러브와 결혼
1992. 4 너바나, [Rolling Stone]지 표지 모델로 등장
1992. 9 너바나, MTV 뮤직 어워드에서 2개 부문 수상
1992. 11 앨리스 인 체인스, [Dirt] 발표
1992. 12 너바나, [Incesticide] 발표
1992 사운드가든, [Satanoscillatermymetallicsonatas] 발표
1993. 9 너바나, [In Utero] 발표
1993. 9 너바나, MTV 뮤직 어워드에서 베스트 얼터너티브 비디오 부문 수상. 펄잼, 4개 부문 수상
1993. 10 펄잼, [Vs] 발표
1993. 12 너바나, MTV 언플러그드 공연
1994. 1 앨리스 인 체인스, 미니 앨범 [Jar Of Flies] 발표
1994. 4. 5 커트 코베인, 권총 자살. 4월 8일에야 발견됨
1994. 6 사운드가든, [Superunknown] 발표
1994. 9 사운드가든, MTV 뮤직 어워드에서 하드록 비디오 부문 수상
1994. 11 너바나, [Unplugged In New York] 발표
1994. 12 펄잼, [Vitalogy] 발표
1994. 12 홀의 [Live Through This], [Rolling Stone]지 그해 최우수 앨범으로 선정
1995. 6 너바나의 데이브 그롤, 새로 결성한 푸 파이터즈(Foo Fighter)의 데뷔 앨범 [Foo Fighters] 발표
1995. 11 앨리스 인 체인스, [Alice In Chains] 발표
1995. 11 펄 잼, 미니 앨범 [Merkin Ball] 발표
1996. 5 사운드가든, [Down On The Upside] 발표
1996. 9 앨리스 인 체인스, [Unplugged] 발표
1996. 9 펄잼, [No Code] 발표


[용어 해설]


인디 씬과 하드코어 씬

'인디'라는 용어는 얼터너티브라는 말이 광범하게 통용되기 이전인 1980년대 '대안적인' 음악을 통칭했다. 물론 인디 레이블은 50년대 로큰롤과 1970년대 펑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80년대의 인디 레이블은 클럽, 팬진, 컬리지 라디오와 연계하여 국지적 '씬' 혹은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 중에서 메이저 레이블과의 어떤 계약도 거부하는 비타협적인 경우를 하드코어라고 부른다. 따라서 인디 펑크나 하드코어 록이라는 용어는 잘 사용하지 않으며, 인디 록과 하드코어 펑크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된다. 캘리포니아 론데일의 SST 레이블과 워싱턴 D.C.의 디스코드(Dischord) 레이블이 각각 웨스트코스트와 이스트코스트의 하드코어 씬의 중심이었다(전자는 블랙 플랙의 그렉 진이 설립했고, 후자는 푸가지의 아이언 맥케이(Ian McKay)가 설립했다).

기업형 록
번역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기업형 록이란 대형 메이저 음반 기업에 종속되고 음악적으로도 상업화된 록 음악을 말한다. 하드코어 씬의 가장 유명한 구호 중의 하나는 "기업형 록은 X 같다(Corporate Rock Sucks)"일 정도, 이 기업형 록은 1980년대의 인디 록 밴드, 특히 하드코어 펑크 밴드들의 저주의 대상이었다. 기업형 록은 1970년대의 슈퍼 밴드들도 포함할 수 있지만, 보다 직접적으로는 LA메탈을 비롯한 라이트 메탈(팝 메탈)을 지칭한다. 심지어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U2조차도 기업형 록으로 불렸는데, SST 레이블에서 판매하는 T셔츠들 중에는 "KILL BONO"라는 문구가 적힌 것도 있다(알다시피 보노는 U2의 보컬이다). 기업형 록에 관한 담론은 하드코어 씬의 자주적 기개와 경직된 도그마를 동시에 보여 준다.

앨범 록(album rock)
앨범 록은 정확히 말하면 앨범지향적 록(album-oriented rock)이다. 이 용어는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에 발생한 팝 청중의 분열을 배경으로 한다. 즉, 'Top 40' 진입을 목표로 하는 히트 싱글이 아니라 예술성을 갖춘 앨범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이 앨범 록이다. 앨범 록 스테이션은 주로 1960-70년대의 록 음악을 전문적으로 틀어주는데, 이는 '예술로서의 록'이라는 1970년대의 이데올로기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한편 세월이 지난 뒤에 앨범 록은 '클래식 록'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들의 음악은 단지 '올디스'가 아니라 불멸의 '고전'이라는 것이다.

로 파이(lo-fi)
본래는 낮은 예산으로 음반을 제작하기 위해 4 트랙 내지 8트랙을 통해 레코딩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갑갑하고 조이는 듯한 느낌을 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집하기도 한다. 소닉 유스, 다이너소 주니어, 페이브먼트 등이 로 파이 레코딩을 고집하는 대표적인 뮤지션들이다.

그린 리버 및 시애틀 밴드 가계도
그린 리버는 통상 펄 잼의 기원이 되는 밴드로 알려져 있다. 기타리스트 스톤 고사드와 베이시스트 제프 아멘트(Jeff Ament)는 마크 암(Mark Am) 및 스티브 터너(Steve Turner)와 함께 그린 리버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마크 암과 스티브 터너는 머드허니를 결성하게 되고, 고사드와 아멘트는 맬펑션 마더 러브 본(Mother Love Bone)이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마더 러브 본은 맬훵션(Malfunkshun) 출신의 보컬리스트 앤드류 우드(Andrew Wood)를 맞이하였다. 이들은 애플 레이블과 계약하여 데뷔 음반을 발표했지만, 바로 그 무렵 앤드류 우드가 헤로인 중독으로 사망하였다.
한편 앤드류 우드는 사운드가든의 보컬리스트 크리스 코넬의 룸메이트였고, 크리스 코넬은 그를 추모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사운드가든의 크리스 코넬(보컬)/매트 카메론(드럼), 그리고 마더 러브 본의 고사드/아멘트가 함께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이 템플 오브 더 독(Temple Of The Dog)이다. 이 작업에는 기타리스트 마이크 맥크리디(Mike McCready)와 보컬리스트 에디 베더(Eddie Vedder)도 참여했고 이들이 곧 펄 잼을 결성한다.
또 1994년에는 앨리스 인 체인스의 레인 스테일리(보컬), 펄 잼의 마이크 맥크리디(기타), 스크리밍 트리즈의 바레트 마틴(Barett Martin: 드럼), 그리고 베이시스트 베이커 손더스(Baker Sondous)가 프로젝트 그룹인 매드 시즌(Mad Season)을 결성했다.

록의 정치
'음악에 무슨 정치냐'고 거북해 할 사람이 있겠지만, 여기서 정치란 좁은 의미의 정치, 이른바 근대 이래의 정당 정치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란 권력을 둘러싼 다양한 세력들간의 복잡한 관계이다. 그리고 권력이 미시적으로 작동한다면, 정치란 미시정치(micropolitics)이다. 따라서 "대중음악이란 문화적 영역에서 지속되는 정치투쟁"(R. Shuker)이라는 한 연구자의 말에 동의한다면, 록의 정치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으로서 록의 미학과는 별도의 차원에서. 그런데 일각에서 주장하듯 록의 정치의 '본질'을 '계급적 저항', '세대의 반항'이라고 못박는 것은 공허하다. 이런 주장은 구체적 사실을 보편적 원리로 환원시키는 것이며, 실제 역사와도 맞지 않는다. 차라리 록의 정치는 "저항과 순응의 변증법"(J. Lull)이고, 따라서 록이 저항적 혹은 순응적으로 '된다'면 그것은 구체적 상황에서의 '효과'이지 선험적인 원리 때문이 아니다. 록을 사회이론적으로 접근한다면, 구체적 상황에서 저항/순응의 구체적 형태와 양상을 논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저항/순응이라는 이분법도 넘어설 필요가 있다.

관련 글

Mudhoney [Every Good Boy Deserves Fudge] 리뷰
Nirvana [Nevermind] 리뷰
Melvins [Stoner Witch] 리뷰

참고 글

Nirvana [In Utero] 리뷰
Soundgarden [Badmotorfinger] 리뷰
Soundgarden [Superunknown] 리뷰
Pearl Jam [Ten] 리뷰
Pearl Jam [Vs.] 리뷰
Pearl Jam [Vitalogy] 리뷰
Alice in Chains [Dirt] 리뷰

* 웹진 [weiv]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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