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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2): 방그라, 드럼 머신과 레게를 만나다

펀잡의 반만년(半萬年) 역사, 방그라의 반천년(半天年) 역사

방그라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대충 설명했지만 현대적 방그라가 아닌 민속음악으로서의 방그라에 대해서는 부연이 필요해 보인다. 방그라의 원산지인 펀잡 지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무엇보다도 펀잡 지방은 주변 정치세력들에 의해 얄궂은 운명을 맞은 지역이다. 아리아족의 이동으로부터 시작되어 페르시아 제국,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 아랍의 이슬람 세력, 징기스칸의 몽고 제국 등이 차례차례 펀잡 지방을 지배해 왔다.

15세기 말 - 16세기 초 구루 나낙 데브(Guru Nanak Dev)에 의해 카스트 제도를 비롯한 온갖 도그마들을 혁파하는 교의를 가진 시크교가 창안되었다. 시크교는 이후 펀잡인들의 의식을 지배하게 되었는데, 그때까지의 어지러운 역사를 떠올린다면 시크교의 발흥을 납득할 수 있다. 시크교의 교세가 확장되면서 1801년에는 란지트 씽(Ranjit Singh)에 의해 시크교의 왕국이 탄생했다. 그렇지만 1839년 그가 사망하면서 왕국은 소멸했고, 곧이어 펀잡은 인도 대륙의 다른 지역들과 함께 더불어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게 되었다. 1849년의 일이다.   

영국의 식민 지배 하에서 가장 격렬하게 저항한 세력 역시 펀잡인들이었다. 한국의 3.1 운동과 같은 해인 1919년 펀잡의 주도 암리차르(Amritsar)에서는 20,000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군대가 시위대에 발포하여 379명이 사망하고 1,200여명이 부상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펀잡 출신의 혁명가들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비폭력 노선'을 표방한 마하트마 간디와는 상이한 노선을 취했다. 이들 혁명가 중에서 바가트 씽(Bhagat Singh)과 우담 씽(Udham Singh)은 '펀잡의 영웅'으로 길이남을 업적을 남겼다. 바가트 씽은 1928년 인도인을 구타한 영국 관리를 사살했고(1931년 사형당함), 우담 씽은 1940년 런던에서 펀잡의 지배자 마이클 오드와이어(Michael O'Dwyer)를 사살했다. 재미있는 것은 우담 씽이 체포되었을 때 그가 모하메드 씽 아자드(Mohammed Singh Azad)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유심히 보면 이슬람, 시크, 힌두의 이름을 모두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두 영웅들은 뒤에 방그라의 가사에 빈번하게 등장하게 되었다.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었을 때도 펀잡 지방은 시크교를 표방하는 독립국이 되지 못했다. 동부 펀잡은 힌두교의 인도로, 서부 펀잡은 이슬람교의 파키스탄으로 각각 병합되었다. 이런 펀잡의 분단이 식민지배 시절 가장 격렬히 저항했다는 '괘씸죄'로 인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펀잡인들이 분단의 피해를 가장 많이 받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펀잡 지역에 거주하던 많은 사람들은 생활고와 폭력을 피해 이민을 결행했다. 인도가 영 연방(commonwealth)의 속했기 때문에 같은 영 연방에 속하는 곳으로의 이주는 비교적 자유로웠고, 그래서 영국 뿐만 아니라 캐나다에도 많은 이민이 이루어졌다. 런던, 버밍햄, 맨체스터 등의 공업도시에 펀잡인들의 '아시안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Kuldip Manak - Udam Singh

이런 험난한 역사에서 방그라는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진화했는가.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의 침략에 맞서 전쟁을 하던 시기에 탄생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건 '고조선이 중국 대륙을 지배했다'는 주장이나 비슷하다. 이른바 방그라가 '저항적 음악'임을 강조하는 설이다. 그보다는 14-15세기경 농민들이 밭에서 일을 하다가 남는 시간에 부르던 노래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보다 우세한 학설이다. 이는 곧 바이사키(Baisakhi)라고 불리는 4월 13일의 수확(봄이므로 '추수'는 아니다)을 축하하는 페스티벌을 낳았다. 한국으로 치면 '추석맞이 놀이 한마당' 비슷한 행사일 것이다. 페스티벌에서는 자연스럽게 음악과 춤이 한데 어우러지게 되면서 특정한 양식을 낳게 되었다. 그 뒤에는 수확을 축하하는 페스티벌 뿐만 아니라 결혼식, 새해맞이 축제 등 동네의 대소사에서 춤과 어우러진 음악의 사용이 보편화되었다.   

방그라는 여러 가지 춤들을 아우르는 메타 장르로 사용되고 있다. 혹시 문헌에서 주마르(jhumar), 루디(luddi), 기다(giddha), 기다(giddha), 루디(luddi), 다앙카라(daankara), 다말(dhamal), 사미(saami), 가트카(gatka) 등의 단어를 만나면 방그라의 여러 변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들 중 주마르는 북 연주자 주위에 원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면서 추는(강강수월래 같은?) 춤이고, 루디는 뱀처럼 배배꼬면서 추는 춤이고 기다는 여자가 손뼉을 치면서 추는 춤이라는 정도만 알아두자. 한국 춤도 잘 모르는 주제에 인도 춤까지 알아둘 필요가 있겠냐만, 혹시 인도/파키스탄계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살면 '구청에서 개최하는 외국인 노동자 위민잔치'에서 혹시 이런 춤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춤을 출 때 입는 복장도 특이하다. 남자들은 보통 부가리스(Bhugaris)라고 부르는 터번을 쓰고 쿠르타(Kurta)라는 긴 상의를 입는다. 허리에는 룽기(lunghi)라고 부르는 복대(?) 비슷한 것을 찬다. 여자는 긴 상의와 헐렁한 바지를 입고 목 주위에 두파타스(dupattas)라고 부르는 것을 감는다. 복장이 촌스럽게 총천연색이라는 것은 그림만 보면 명확하다.

제일 중요한 악기 이야기가 마지막이다. 음악을 들을 때 '아, 방그라구나'라고 느끼게 된다면 열의 아홉은 돌(dhol)이라는 북 소리 때문일 것이다. 이후에 '돌'이라고 표기하면 장돌로 오해할까봐 앞으로는 '돌 드럼'이라고 표기하기로 하자. 15인치의 넓이를 가진 큰 북인 돌은 가죽끈으로 어깨에 맨 채 두 개의 스틱으로 두드리면서 연주한다. 베이스 음을 주로 담당하지만 음은 높은 편이다. 돌 드럼 위에도 다드(dhad), 다플리(dafli), 돌키(dholki), 담루(damru) 등의 북이 있다고 하는데 그걸 구별해내기 위해서는 앞으로 음악을 열심히 듣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편 현악기로는 툼비(tumbi)와 사랑기(sarangi)가 대표적인데, 툼비는 한 줄로 이루어져 있고, 사랑기는 여러 줄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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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예정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1): 타블라를 두드리면서 춤추는 '영국인'들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2): 방그라, 드럼 머신과 레게를 만나다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3): 정치 선동 그리고 파란 눈의 아시안들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4): 대서양을 건너간 아시안 비트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5): 아시아 대륙으로 돌아온 아시안 비트

 관련 글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1)

관련 사이트

펀잡 문화와 관련된 백과사전식 사이트
방그라 공식 서치 엔진

 

* 웹진 [weiv]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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