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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2): 방그라, 드럼 머신과 레게를 만나다

방그라, 드럼 머신과 하우스를 만나다

방그라라는 범주에 속하는 음악을 들어보면 알 수 있듯 '현대적' 방그라는 펀잡의 전통악기들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악기들 뿐만 아니라 음악 스타일 면에서도 하우스, 레게, 힙합 등과 뒤섞여서 새로운 하이브리드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까지 글을 쓰면서 참고한 자료에 의하면 1960-70년대에 펀잡에서는 쿨딥 마낙(Kuldip Manak), 참킬라(Chamkila), 아마르지요트(Amarjyot) 등 '모던' 방그라의 전설적 음악인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보다 흥미로운 현상은 이들의 영향을 흡수하여 펀잡(및 인도 대륙) 외부에서 만들어진 음악들일 것이다. 그 중에서 일단 영국의 몇몇 도시들에 시야를 한정해 보자. 일단, 로이 셔커의 [대중음악 사전](한나래, 1998)에서 방그라에 대한 항목을 인용해 보자.

"펀잡의 전통적인 민속 댄스음악에 기초한 인도계 영국인의 음악 장르 중의 하나로서 퍼커션 악기 위에서 연주된다. 방그라는 영국에서 세 가지 파장(wave)을 낳으면서 발전했다. 1970년대 후반 인도계 커뮤니티에서 신시사이저, 기타, 드럼 세트로 연주되었던 댄스 팝이었고, 두 번째는 1980년대 하우스, 댄스 음악, 드럼 머신과 결합되었고, 마지막은 1990년대 초 랩과 샘플링, 그리고 자메이카의 라가(ragga) 혹은 댄스홀(dancehall) 리듬을 결합하여 방그라머핀(bhangramuffin')이 되었다. 이들 중 마지막 경우는 셰일라 찬드라(Sheilla Chandra)와 아파치 인디언(Apache Indian) 같은 아티스트에 의해 아시아 전역과 영국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아시아계 청년들에게 방그라는 기성사회(estabilishment) 및 부모들의 정체성과 구분되는 문화적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의 일부이다"([Key Concepts in Popular Music], p. 26)

여기서 1970년대의 방그라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진 것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1970년대까지 방그라 음반들은 주류 음악산업의 시스템에 따라 배급된 것이 아니라 아시안계들이 밀집해 사는 지역의 구멍가게(이른바 코너숍(cornershop)!)나 아시안 식료품 가게에서 판매되었을 뿐이었다. 또한 이 시기 방그라 음악인들은 '라이브 아티스트'이긴 했어도 '레코딩 아티스트'는 아니었다. 말하자면 '정규 앨범'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는 뜻이다. 1994년 방그라에 대해 긴 커버 스토리를 발표한 [Billboard]에 의하면 그때까지도 방그라 음반들은 '에쓰닉 자영 소매업자(ethnic independent retailers)'를 통해 90%가 배급된다고 한다. 방그라 음반은 그곳에서 인도계 주민의 소득수준을 고려하여 아직도 저가의 카세트로 판매된다고 하니 한국의 '구루마 테이프'나 '고속도로 도롯도 메들리'와 비슷한 유통구조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도 1980년대 이후에는 방그라에서도 '레코딩 아티스트'가 등장하는 것은 1980년대 이후부터다. 위에서 셔커의 인용문을 참고한다면 이 시기는 이미 하우스 등 댄스 음악과 결합한 스타일이 만들어진 시기다. 이 시기 방그라를 대표하는 음악은 말키트 씽(Malkit Singh)과 알랍(Alaap)일 것이다. '펀잡의 황금의 목소리(Golden Voice of Punjab)'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말키트 씽은 1963년 펀잡의 잘란다르(Jhalandar) 태생이다. 그는 인도에서 성공을 거둔 뒤 자신의 밴드인 골든 스타(Golden Star)와 더불어 1980년대 중반 영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경우다. 공식적으로 발표한 앨범만 16장에 이르고 27개국에서 공연을 갖는 등 국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앞서 언급한 방그라의 전설인 쿨딥 마낙(Kuldip Manak), 파키스탄 카왈리의 대부 누스라트 파테 알리 한(Nusrat Fateh Ali Khan)의 영향을 받고 뒤에는 자메이카의 라가(ragga)를 결합한 음악으로 영국과 인도는 물론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기까지 인도인들이 있는 세계 각지에서 폭넓은 인기를 누렸다.

Malkit Singh Kali - Teri Choti Hai Paranda Tera Lal Ni

또 한 명의 아티스트는 런던의 사우쓰홀(Southall) 지역 출신의 찬니(Channi)가 이끈 그룹 알랍(Alaap)이다. 흰색 스카프를 두른 사람으로 유명한 찬니는 1982년 앨범 [Teri Chunni de Sitare]을 발표하여 방그라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전통적 방그라의 음악 어법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드럼 머신과 신시사이저를 사용하여 '팝'의 말끔한 사운드를 만들어낸 알랍의 사운드는 빈곤층으로 살아가는 인도계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문화적 뿌리를 환기시킴과 더불어 '영국물이 든' 인도계 유학생들의 엘리트적 취향에도 부합했다. 알랍은 음악 뿐만 아니라 번쩍거리는 의상과 흰색 구두 등의 스타일도 크게 유행시켰다. 이때부터 올 데이어(all-dayer) 혹은 데이 타이머(day-timer)라고 불리는 '족(族)'들도 탄생했다. 간단히 말해서 야밤에 클럽에서 춤추는 일을 허락하지 않는 아시아계 가정의 '엄한 규율'로 인해 퍼브나 학교의 작은 홀을 빌려 마련된 공연장에서 방그라를 들으면서 춤추는 이들을 말한다.

Alaap - Chunni Ud Ud Jai

알랍 뿐만 아니라 프레미(Premi), 헤에리(Heeri), 홀레 홀레(Holle Holle) 등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구사하는 아티스트가 등장하면서 미디어에서는 이런 새로운 유형의 방그라를 '사우쓰홀 사운드(Southall Sound)'로 부르기 시작했다. 1979년에는 미들섹스의 헤이스(Hayes)에서 방그라 전문 레이블인 멀티톤(multitone)이 설립되어 이들 아티스트의 '정규' 음반을 발매하는 일도 본격화되었다. '어쩌구 사운드'라는 명칭은 음악의 로컬리티(locality)를 부각시키면서 속으로는 전국적 나아가 국제적 성공을 거두려는 마케팅의 일환이다. 그러니까 '이 음악은 어떤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음악이므로 위로부터 급조된 음악과는 질이 다르다'는 뜻을 내포한다.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대한민국에는 그런 마케팅 전략이 없어서 문제니까. 그게 성공한다면 '돌파(breakthrough)'라고 표현한다.

그렇지만 1980년대의 방그라 아티스트들은 '전국적 돌파'까지 수행하지는 못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방그라의 가사가 '영어'가 아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서 방그라가 팝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방그라보다는 팝에 보다 익숙하고, 펀잡어보다는 영어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의 음악인이 탄생하는 것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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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예정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1): 타블라를 두드리면서 춤추는 '영국인'들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2): 방그라, 드럼 머신과 레게를 만나다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3): 정치 선동 그리고 파란 눈의 아시안들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4): 대서양을 건너간 아시안 비트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5): 아시아 대륙으로 돌아온 아시안 비트

 

관련 글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1) - vol.3/no.11 [20010601]

관련 사이트

펀잡 문화와 관련된 백과사전식 사이트
방그라 공식 서치 엔진

 

* 웹진 [weiv]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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