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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2): 방그라, 드럼 머신과 레게를 만나다

방그라, 레게 그리고 랩과 만나다

지금은 다소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만 [100% Rap]이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이 있다. '힙합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입문용 음반이다. 음반의 네 번째 트랙의 제목은 "Boom Shak-a-Lak"이고, 주인공은 아파치 인디언(Apache Indian)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악곡 형식은 '12마디 블루스'를 따르고 있고, 사운드는 1990년대 초까지 랩 음악 대부분이 그랬듯 '빈티'가 난다. 보컬 스타일은 랩보다는 노래에 가깝지만 노래라기에는 한 음 한 음의 음고가 불명확해서 자메이카산(産) 라가(ragga) 혹은 댄스홀(dancehall)에 가장 가깝다. 이른바 '라가머핀(raggamuffin)'이라고 불리는 창법이고, 가사는 영국 영어보다는 '자메이카 영어', 이른바 파투아(patois)에 가까웠다.

음악의 주인공은 지난 번 시리즈에서 '아시아계 최초의 팝 스타'라고 언급한 바로 그 인물이다. 그가 '랩 음반'에 이름을 올린 점을 감안한다면 아시안계 랩 음악인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자메이카의 라가/댄스홀이 '랩의 한 장르'로 인식되기도 하니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펀잡의 잘란다르에서 태어나고 버밍햄에서 자라난 스티브 카푸르(Steve Kapur)라는 본명을 가진 이 인물은 '방그라 뮤지션'이 아니고 본인도 그렇게 주장한 적이 없다. 실제로 그는 레게 차트에 자신의 곡을 올려놓았고 뒤이어 팝 전체 차트로 이동하는 레게 스타들의 표준적 경력을 밟았다. 하지만 특이한 출신성분이라도 팝 스타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은 영국의 팝 음악 관련 미디어의 속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레게 차트에서 성공을 거두자 라디오와 잡지는 '아시안 비트', '방그라머핀' 등의 문구로 홍보했다. 이런 '미디어 하이프(hype)'는 "Boom Shak-a-Lak"이 발표되기 이전인 1993년 초 앨범 [No Reservation]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New Musical Express]와 [Melody Maker]가 모두 아파치 인디언에 관한 특집 기사를 내보냈고, 앞서 언급했듯 이듬해 [Billboard]가 방그라에 관한 커버 스토리를 내기도 했다.

1993년 8월 아파치 인디언은 유년 시절 떠났던 고국 인도를 방문했다. 'MTV Asia' 덕택으로 그는 인도에서는 '마이클 잭슨과 맞먹는'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공연도 '마이클 잭슨같은'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인도 여기저기를 돌아보다가 심각한 빈곤과 불평등을 목격한 뒤에는 카스트 제도를 비난하고  부패 구조를 꼬집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또한 마하트마 간디의 손녀를 만나서 융숭한 대접을 받은 뒤 "당신은 우리 할아버지만큼의 잠재적 영향력을 가졌다"는 말도 들었다.

인도에서 영국으로 돌아온 직후인 그해 9월의 지방선거직후에도 아파치 인디언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아시아계 주민들이 많이 사는 밀월(Millwall)의 타워 햄리츠(Tower Hamlets)의 지방선거에서 "백인을 위한 권리"를 주장하는 극우파 국민당의 후보 데릭 베컨(Derek Beackon)이 승리했고, 그날 밤 아파치 인디언은 '무언가 해달라'는 아시아계 주민들의 요구로 인해 전화통에 불이 났다. 아파치는 "Movin' On"이라는 곡의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서 비컨과 국민당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주민들의 요구에 부응했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말들도 적지 않았다. 인도 귀국의 경우 값비싼 화려한 호텔에 머물면서 '크레인에서 무대로 내려오는' 공연을 하는 팝 스타가 '자신이 태어난 곳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나라의 사회적 문제에 개입하는 일은  한계를 갖는 것이었다. 인도계 주민 내부의 문제의 경우에도 아파치 인디언은 힌두, 이슬람, 시크 사이의 종파적 폭력을 비판하고 '하나로 살자(live as one)'고 주장했지만 이런 비폭력 평화의 메시지가 얼마나 현실적이었는가는 의문이다.

더구나 아시아계 주민의 정치적 대변자라는 지위는 그의 팝 스타로서의 지위를 협소하게 만들었다. 1995년에 발표된 앨범 [Make Way for the Indian]에 수록된 음악은 정글의 영향을 흡수하는 등 팝 음반으로는 뛰어난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판매고는 데뷔 음반에 비해 실망스러웠다. 아시아계 주민을 기반으로 하고 서인도제도 주민과 일부의 백인까지 포괄했던 아파치의 청중 가운데 어떤 부분이 이 음반을 외면했는지는 알아내기 힘들지만, 정치적 대변자라는 부담스런 지위가 대중음악의 팬들의 선택에 미친 효과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아파치 인디언같은 팝 스타가 아니라 지역의 언더그라운드에 보다 깊게 연관된 방그라의 조류는 어떤 게 있었는가. 아파치 인디언이 스타로 등극하기 직전인 1991년 버밍햄에서는 나추랄(Nachural: 인도식 발음이다)이라는 레코드 레이블이 설립되었다. 나추랄 레이블은 [What is Bhangra?](1993), [East II West: Bhangra for the Masses](1994) 등의 컴필레이션 음반을 발표하는 등  '지하경제' 중심으로 유통되던 방그라 음반을 지상세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의 음악에서도 하우스, 랩, 레게와의 결합은 보편적이다. 이들 대부분은 아시아계 커뮤니티 밖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내부에서는 존중받는 아티스트들이었다. 이는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현상인데, 예를 들어 최근 방그라 아티스트의 인기 순위에 오른 뮤지션들을 보면 금시초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방그라 공식 서치 엔진에서 조사한 방그라 아티스트들의 인기 순위

이렇게 언더그라운드의 방그라 아티스트들이 지상세계로 진입하는 현상과 동시에 '방그라 음악인'에는 솔로 가수 혹은 래퍼 뿐만 아니라 클럽 DJ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다른 DJ 들과 구분하기 위해 데시 DJ(Desi DJ)라고 불리는 이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버밍햄 출신의 볼리 사구(Bally Sagoo)다. 자신의 음악을 "타블라와 인도 사운드도 조금 있지만, 기본적으로 훵키한 드럼 비트, 제임스 브라운의 샘플 위에서 만들어진다"고 설명하듯 그는 기본적으로 훵크에 기초를 둔 '리믹스 아티스트'다. 소니 레이블과 계약하여 방그라 아티스트로서는 아파치 인디언에 이어 두 번째로 다국적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한 인물이 되었는데 자신의 활동과는 별도로 Ishq라는 레이블을 설립하여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음반을 프로듀싱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1991년 말키트 씽의 리믹스 음반 [Golden Star Raggamuffin' Mix]를 제작하여 말키트 씽을 인도계 이민 2세대에게 대중화시킨 장본인도 바로 볼리 사구였다.

'방그라 DJ'가 많아지는 현상은 아시아계 가정에서도 '영국 물을 먹어서 부모 말을 듣지 않는 요즘 애들'이 많아지면서 밤 시간에도 클럽을 찾는 아시아 청년들이 많아지는 현상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한마디로 말해서 방그라는 클럽 댄스 음악의 한 장르가 되었고, 영국의 클럽 댄스 음악의 스타일이 극히 다양하듯 방그라라는 범주로 포괄되는 음악 장르도 극히 다양해졌다. 영국의 경우에만 한정하더라도 탤빈 씽(Talvin Singh)같은 '인텔리전트'한 언더그라운드 성향의 DJ부터 사호타스(the Sahotas)같은 밴드 형태를 거쳐 수흐비르(Sukhbir) 같은 댄스 팝 성향의 아이돌 스타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인들 모두가 방그라라는 이름 아래 포함되었다. 방그라의 가사로 사용되는 언어도 펀잡어만 사용하는 경우, 영어와 펀잡어를 섞는 경우, 주로 영어를 사용하는 경우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게 되었다. 가사의 메시지고, 메시지 역시 시크교의 입장에서 영국인의 지배에 대한 비판, 인도계 커뮤니티 내부의 삶에 대한 묘사, 소년과 소녀 사이의 낭만적 사랑의 표현 등을 망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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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예정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1): 타블라를 두드리면서 춤추는 '영국인'들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2): 방그라, 드럼 머신과 레게를 만나다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3): 정치 선동 그리고 파란 눈의 아시안들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4): 대서양을 건너간 아시안 비트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5): 아시아 대륙으로 돌아온 아시안 비트

 

관련 글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1) - vol.3/no.11 [20010601]

관련 사이트

펀잡 문화와 관련된 백과사전식 사이트
방그라 공식 서치 엔진

 

* 웹진 [weiv]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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