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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보 테크놀로지와 음악산업: 'mp3 상품'의 온라인 시장의 (불)가능성을 중심으로

3.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음악의 소비

1) 인터넷 시대의 음악의 소비

이제까지의 분석은 음악의 '생산'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테크놀로지의 변화가 생산에만 그치고 소비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순진한 것이다. 더구나 최근 들어 문제로 부상하는 것은 바로 대중음악의 소비영역에서의 혁명이다. 한마디로 인터넷 관련 테크놀로지는 음악의 생산은 물론 음악의 소비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음악을 듣는 경험과 음악의 본성에 대한 관념도 흔들어 놓고 있다.

먼저 확인해 둘 사항이 있다면 음악의 생산 못지 않게 음악의 소비 영역에서도 테크놀로지의 작동은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즉, 테크노 유토피아나 테크노 디스토피아적인 사고방식은 양자 모두 환상에 가깝다. 테크놀로지는 사회문화적 환경(setting) 속에서만 영향을 드러내며,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어떤 사회적 조건에서 새로운 음악의 생산과 소비에 가능성과 제약을 부여하는가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 확인해 둘 사항이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현재 인터넷 테크놀로지를 둘러싼 논쟁에서의 대립구도는 음악의 생산자 대(對) 소비자로 전개되는 양상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음악의 생산자측을 대변하는 쪽은 음악의 창작자 본인이라기 보다는 이들의 음악에 대한 저작권과 판권을 보유하고 있는 음악산업 관계자들이다. 그 결과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음악 소비자측에서도 의견이 통일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인터넷 접근가능성에 따르는 계급적 분열마저 존재한다.

그러면 무엇이 이렇게 현재의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가. 과거를 돌아보면 20세기에 발명된 모든 새로운 미디어들은 음악산업에게 근본적 위협을 주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20년대의 라디오, 1940년대의 텔레비전, 1980년대의 뮤직 비디오(및 MTV) 등이 그것이다. 물론 처음 등장했을 때 이들 미디어들은 음악산업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지만 결국은 새로운 시스템을 형성하여 통합되었다. 그렇다면 최근의 디지틀 배급(digital distribution)은 어떨까? 디지틀 배급이란 간단히 말해서 인터넷상에 게시된 음악 파일에 접근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제까지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고, 혹자는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고 주장한다.

2) 디지털 전송과 디지털 배급

스트리밍과 인터넷 라디오  

스트리밍(streaming)이란 문자 그대로 온라인 상에서 정보를 '흘리는' 것이다. 음악의 경우 대표적으로 리얼 오디오(real audio)나 윈도우 미디어 오디오(WMA) 등의 파일 포맷을 통하여 스트리밍하는 경우가 현재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다. 이때 '리얼'이라는 수식어는 '진짜'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실시간(real time)'이라는 뜻이 강하다. 웹 상에서 흘러 다니는 정보에 접근하기 원하는 사람은 이를 실시간으로만 접할 수 있다. 리얼 오디오는 CD 등 전통적 포맷의 음반을 판매하는 웹 사이트의 게시판에 샘플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도 전체를 다 게시하는 일은 없으며, 앨범의 경우 다섯 정도의 트랙을 선별하며 한 트랙 당 약 30초 길이의 '샘플'을 제공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인터넷 라디오 역시 실시간으로만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리얼 오디오와 동일하게 스트리밍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그렇지만 스트리밍이 개별 파일의 형태로 게시되어 청취자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트의 담당자가 스트리밍을 '계속한다'는 점에서 리얼 오디오와 다르다. 또한 소비자가 채널을 선택할 수 있는 고객중시형(customized)이라는 점에서 지상파 라디오와 다르다. 즉, 자신의 취향대로 음악을 선택하여 들을 수 있으며 지상파에서 잘 나오지 않는 음악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가지 더 지적한다면 스트리밍과 인터넷 라디오는 현재로서는 만족스럽지 않은 음질이나 전송 속도의 불안정으로 인해 소비자로서는 음악을 완전하게 감상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이 존재한다. 그 결과 대부분은 '오디오 샘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스트리밍은 다운로드보다 발전된 방식이다. 부분적으로 전송해도 파일의 컨텐츠를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스트리밍되는 파일의 경우 원칙적으로 '저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물론 스트리밍되는 정보를 포획(capture)하여 저장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는 스트리밍의 본래 의도와는 무관한 것이다. 따라서 스트리밍되는 음악 정보를 듣기 위해서는  인터넷에 온라인으로 접속해야만 한다는 전제가 있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정보 전송 속도가 '초고속화'되면서 이 점은 점차 문제가 되고 있지 않지만 문제는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는 시간'이 편하게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즉, 리얼 오디오를 '틀어놓고' 휴식을 취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고 더군다나 여러 개의 파일을 동시에 스트리밍하는 일도 번거롭다. 인터넷 라디오의 경우도 일반적 라디오처럼 '청각적 벽지(sonic wallpaper)'의 성격이 강하여 습관적으로 접속하여 이미 형성된 취향에 맞는 음악을 듣는 일이 지배적이다. 리얼 오디오를 통한 스트리밍은 전통적 포맷의 음반을 구매하기 전에 '시험삼아' 들어보는 테스트용 역할이 강하다. 두 경우 모두 기성의 음반산업의 배급 시스템과 그다지 모순되지 않게 통합되고 있다는 뜻이다.

다운로드

음악 파일의 다운로드는 보통의 파일의 다운로드와 다르지 않다. 특정 사이트나 게시판에 파일을 게시하면 그곳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간단하게 다운로드받아서 자신의 퍼스널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에 저장할 수 있다. 문제는 음향 정보를 담은 파일이 문서 파일 등에 비해 용량이 매우 커서 업로드와 다운로드하기에는 힘들다는 점이었다. 한 예를 들어 3분 길이의 대중가요(혹은 팝송)는 26메가 바이트 정도의 wav(웨이브) 파일로 기록된다. 따라서 가급적 음의 손실 없이 wav 파일을 압축시키는 방법이 디지틀 전송의 관건이었다. 대표적인 방법은 mp3이다. mp3는 본래 동영상의 압축기술인 mpeg layer 3에서 음향 부분만을 따로 분리한 형식으로 발전되었다. mp3의 압축 원리는 인간의 귀의 가청 주파수대를 고려하여  '인간의 귀로 감지할 수 없는' 음향 정보를 삭제하는 것이다. 그 결과 통상 웨이브 파일을 1/11로 압축하여 128 kbps로 전송한다(물론 압축률은 이밖에도 몇 가지로 설정할 수 있다). 이렇게 할 경우 비틀스나 조용필의 정규 앨범 전체가 CD 1장에 모두 수록될 수 있다.

mp3를 재생하는 방법은 일반 컴퓨터 관련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은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윈앰프(winamp)나 소닉(sonique) 같이 인기있는 mp3 재생 프로그램은 셰어웨어로(즉, 무상으로) 제공되고 있다. 프로그램을 통해 mp3를 재생하면 사운드카드의 출력 단자를 통해 PC에 부착된 스피커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혹은 출력단자를 기존의 아날로그 앰프에 연결해서 감상할 수도 있다(이 경우 PC의 잡음이 들어가므로 음질은 조금 저하된다).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디지털 출력 장치를 통해 보다 향상된 음을 들을 수도 있고, 이런 방법은 하루가 다르게 개선되고 있다.

문제는 mp3가 디지틀 방식으로 전송되는 방법들이다. '전통적' 방법은 특정 사이트에 mp3 파일을 게시하고 이를 다운로드해가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게시된 파일들 대부분이 음악작품의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으로 허락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미국에서는 1995년경부터, 한국에서는 1997년경부터 시작된 불법 mp3 파일의 게시는 복잡한 논쟁을 낳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저작권의 보호'라는 강력한 명분은 '사용자의 편의'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mp3 이용자들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특정 계층에 머물렀다. 특정 계층이란 대학가처럼 초고속 랜이 구축되어 있는 환경에 가까운 경우를 말한다. 일반 모뎀 사용자의 경우 mp3를 다운로드받는 일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었던 반면, 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하면 1-2분 내에 한 곡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따라서 mp3가 요즘같이 사회문제가 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 초고속 인터넷망이 가정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현상과 깊이 관련된다.
그렇지만 1997년 정도의 시점에서 mp3가 CD와 테이프 중심의 음악산업에 대한 위협이라고 말하기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mp3는 디지틀 파일 그 자체이고 유형의 실체가 없기 때문에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에 저장되어 있는 상태에서만 재생될 수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mp3가 '휴대용(portable)' 소프트웨어가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mp3는 기성의 음반 포맷에 대해 대안적이라기보다는 보완적 수단에 머물렀다. 사태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PC 이외에 mp3를 재생할 수 있는 하드웨어의 등장이고, 다른 하나는 P2P라는 다운로드 방식의 변화다. 먼저 하드웨어부터 살펴보자.
 
3) 새로운 음악 하드웨어: mp3 플레이어
 
1990년대 초까지 가정에서의 사적 복제의 수단은 소형 카세트 테이프였다. 1985년 미국음반산업협회(Record Industry Assocaiation of America)는 미국 하원에 공 테이프와 테이프 녹음기(한국어로 '카셋트 데크')에게 조세를 부과할 것을 청원하였다. 공 테이프는 한 개당 1 센트의 조세를, 테이프 녹음기에는 소매가의 25%를 조세로 부과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였다. 요구를 담은 법안은 가정 오디오 레코딩 조례(Audio Home Recording Act)라고 알려져 있고, 보통 '홈 테이핑 법안'이라고 부른다. 홈 테이핑 법안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테이프 녹음기가 일반화되면서 레코드(당시에는 주로 LP)를 테이프로 녹음해서 듣는 일이 많아졌으므로 그만큼 음반이 덜 팔리고 따라서 음반회사의 수입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이러한 허가받지 않은 복제는 창작자의 의욕을 감퇴시킨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좋은 음악이 만들어지지 않는데 하드웨어 제조업자가 책임이 있으니 일정한 조세를 징수하여 이를 아티스트들에게 분배하겠다는 이야기다. 즉, 조세란 일종의 '저작권료'인 셈이다.

그렇지만 홈테이핑 법안은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그 이유로는 무엇보다도 아날로그 테이프로 복제된 사운드의 음질이 원본에 비해 저하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두번째는 아날로그 레코딩이기 때문에 실시간(real time) 이상의 배속으로 복제하는 것도 불가능할뿐더러 상당히 수고스러운 작업이기 때문에 유별난 취미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하기 힘든 작업이었다는 점도 작용했다.

역으로 말하면 면 음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홈 레코딩의 편의와 속도를 확보하는 것이 미래의 가정용 레코딩 하드웨어의 필수 해결 사항이 되었다. 일단 테이프를 이용한 하드웨어는 DCC와 DAT를 들 수 있다. 두 기기는 디지틀 방식의 소형 레코딩 기기였는데, 저작권 문제와 충돌하면서 대중화되지는 못하였다. 이유는 RIAA에서 이들 기기에 대해 조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로비에 나섰기 때문이다. 즉, 이들 디지털 음향 녹음기들은 모두 과중한 저작권료의 부담으로 인해 매우 비싼 가격으로 출시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직업적 음악인을 비롯한 소수의 매니아들의 한정된 수요로 그치게 되었던 것이다.

1996년에는 CD로 홈 레코딩을 할 수 있는 기기가 필립스에 의해 개발되었다. 이 CDR(CD-recorder)은 블랭크 미디어(공 CD)에 디지틀 시리얼 넘버를 부여하여 저작권 소유자가 '구운' CD의 행방을 추적할 수 있게 하여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필립스 CDR 은 시장에서 참패하는 결과를 낳았는데, 왜냐하면 이 기기에서는 일반 공 CD를 사용할 수 없으며 저작권료가 지불되는 필립스사의 특수한 CD 롬을 사용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상대적으로 고가였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소니(Sony)는 MD(Mini Disc)를 개발했다. MD는 PC에 사용되는 플로피 디스켓과 유사한 소형 디스크를 통해 녹음과 재생을 겸하는 소형기기고, 이론상으로는 CD 음질의 절반 수준이다. MD는 일본을 비롯하여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권에서는 일정한 시장을 개척했지만, 미국과 유럽 등 거대한 음반시장을 가진 나라에서는 소니의 이전 제품들인 워크맨이나 디스크맨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상의 기기들은 디지틀 하드웨어인 것은 분명하지만 테이프나 디스크 형태의 유형의 소프트웨어를 전제로 하는 하드웨어들이었다. 따라서 디지틀 테크놀로지와는 관련되지만 '정보통신' 테크놀로지와 직접 관련되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하드웨어는 mp3의 재생(및 전송)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연구·개발되었다.

1998년 다이아먼드 멀티미디어사는 리오(Rio)라는 이름의 mp3 플레이어를 시판했다. 담배각 크기 정도의 mp3 플레이어는 몇 가지 점에서 이제까지의 음향재생기기보다 '혁신적'이었다. 휴대용이라는 점과 크기가 더욱 작아졌다는 점은 워크맨이나 디스크맨의 특징을 연장한 것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음원을 PC 로부터 전송한다는 점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것이었다. 이는 음향의 레코딩이라기 보다는 파일의 트랜스퍼링(transferring)이고 디지틀 복제의 속성 상 음의 손실은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PC의 사운드 장치를 통하여 재생하는 것에 비하면 주변 소음도 최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까지 단지 컴퓨터 파일로만 인식되었던 것이 이제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음악을 소비될 수 있게 된 것이다.

mp3 재생기는 디지털 복제와 관련된 저작권 문제를 법적으로 제기한 최초의 사건이 되었다. RIAA측은 다이아먼드사를 저작권 침해 혐의로 고소했다. 그렇지만 연방법원은 Audio Home Recording Act of 1992에 의거하여 "디지틀 음악 레코딩은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다이아먼드 멀티미디어사는 재판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산업계와 타협을 시도했고, 이는 '암호화 체계'의 도입이라는 논의로 이어졌다. 이른바 SDMI(Secure Digital Music Initiative)라는 시스템은  가전 산업, 정보통신 산업, 음반산업 등이 한자리에 모여 새로운 디지털 음악에 관해 논의하여 합의와 기술적 표준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취지를 갖는 것이었다. 그 핵심은 mp3 파일을 통한 음악 '해적행위(piracy)'에 대한 기술적, 제도적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즉, 해적행위로부터 안전한 음악 포맷을 확정하고 장기적으로는 이 포맷으로 mp3를 대체하고자 하는 것이 논의의 실제 목적이었다. 따라서 과도적으로는 '불법' mp3라도 재생할 수 있도록 하고 단계적으로 이를 제한하는 방향이 취해졌는데, 가장 유력한 안은 새로 제작되는 CD(음악 파일)에 '전자 지문(electronic fingerprint)'를 집어넣고(이를 통해 원본임을 확인한다), 무단으로 복제/유통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른바 디지털 워터마킹(digital watermarking)이다. 즉, 복제되는 횟수를 제한하여 인터넷이나 CD로부터 자신의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로 한번 다운로드받은 뒤 휴대용 플레이어에는 4번밖에 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복사하려면 CD에서 다시 굽던가 다시 다운로드 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이런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워터마크의 제거는 컴퓨터 파일의 '크랙'처럼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아가 SDMI의 작동은 오디오 신호에 영향을 주어 음질의 손상을 야기할 수 있으며 부가장치의 설치로 인해 가격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향상된 기술의 가능성을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제한하는 조처라는 비판을 낳고 있다.

결국 mp3 재생기를 둘러싼 논란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인터넷을 통한 음원의 다운로드의 매력은 단지 '공짜'이기 때문이 아니라 '편리'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저작권의 보호와 소비자의 편의가 충돌하는 일은 오래된 것이지만 mp3의 경우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를 지나치게 '귀찮게 하는'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mp3 플레이어에 복제하는 횟수를 제한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이미 보장된 권리(이른바 홈 레코딩의 '공정한 사용(fair use)')를 침해하는 것이다. 이는 정보의 공유라는 인터넷의 '본래의 정신'을 주장하는 네티즌의 여론과 상충되는 것은 물론이다. 실제로 SDMI는 각 업계들 사이의 이해관계의 충돌로 인해 합의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그 과정에 수많은 종류의 휴대용 mp3 플레이어가 보급되었는데, 이 모델들은 SDMI를 채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IAA 등은 1998년 이후 저작권의 보호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법정 투쟁을 불사하고 있다. 이는 온라인에서의 해적행위로 인해 오프라인에서의 음반판매가 감소한다는 주장과 더불어  mp3 사이트의 폐쇄나 고소 조치를 낳고 있다. 이 중에서 2000년 이후 가장 뜨거운 이슈는 냅스터였다.

4) P2P 전송과 '해적질'의 문제: '냅스터 논쟁'을 중심으로

1999년 12월 7일 미국음반산업협회(RIAA)는 냅스터 닷컴(Napster.com)이 음악 저작권을 침해한다면서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법원에 고소했다. 냅스터란 사용자들이 서로의 PC에 보관된 mp3 음악 파일을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소프트웨어다. 즉, 온라인 상에서 다른 사용자의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 안에 들어있는 mp3를 검색하여 원하는 파일을 자신의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로 전송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원작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불법 복제 mp3를 가려내는 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냅스터는 이른바 P2P(Peer to Perr) 방식의 전송이라는 점에서 또 하나의 혁명이었다. 즉, 이제까지의 디지털 배급은 배급의 주체와 배급의 대상이 명확했던 반면, 냅스터는 이런 구분이 불명료해진다. 한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한 파일을 다운로드받고 아직 들어보지도 않은 상태라고 하자. 이 사람이 온라인 상태에 있다면 다른 사람이 전송받아 먼저 들어볼 수도 있다. 냅스터의 서버에 접속한 사람들의 파일들은 거미줄같이 쌍방향으로 전송되고 각자의 파일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RIAA는 "냅스터는 거대한 온라인 해적 시장과도 같다... 냅스터는 사용자들에게 저작권 침해에 참가하도록 하는 수단을 제공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냅스터를 제소했다. 냅스터는 최초로 제소한지 1년이 더 지난 현 시점에서 항소심 판결을 받은 상태다. 2001년 2월 1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제9 순회 연방 항소법원은 냅스터를 다운로드받은 사용자들은 저작권법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에 냅스터 역시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말하면서, "냅스터에서 저작권법 보호를 받는 음악 파일들이 공유될 수 없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는 냅스터 사이트의 폐쇄를 명령한 2000년 7월 1심의 판결에 대해서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지 않은 음악 파일의 공유를 막을 수 있는 지나치게 포괄적인 것'이므로 사건을 1심 재판부로 회부했다.

냅스터가 폐쇄되지는 않겠지만, 인터넷을 이용한 파일공유 서버를 통해 저작권을 가진 음악 파일을 공유하는 행위는 '불법'이라는 판례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미국음반산업협회(이하 RIAA)는 후속조치로 저작권을 보유한 파일들의 리스트를 작성하여 공유를 금지하도록 명령한 상태다.

그렇지만 판결을 보는 시각은 각양각색이다. 먼저 RIAA의 회장 힐러리 로즌(Hilary Rosen)은 "이번 판결은 인터넷을 이용해 지적 재산권을 침해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경고"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그렇지만 이미 존재하는 디지털 음악 시장을 위축시킬 것이고 기술 혁신에 위험한 전례를 남길 수도 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스탠포드대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 교수는 "RIAA는 결국 패배자다. 그들은 고객을 적으로 만들어 불만을 샀으며 고객들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줬다. 만일 음악 산업에 의한 특정 곡의 삭제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저작권법을 향한 불만이 극히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뉴욕 타임스>의 존 패럴스(Jon Pareles)는 "냅스터가 시작된 1999년부터 지금까지 음반 판매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반사들은 냅스터 이용자들이 이윤을 갉아먹는다고, 냅스터 때문에 누구도 로얄티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음반사들을 비판했다.

현 상황에서 냅스터를 비롯한 디지털 음악시장에 대해서는 몇 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냅스터가 유료 서비스로 전환하는 것이다. 냅스터가 무료 서비스를 유지하면서 저작권법 보호받는 파일은 공유될 수 없게 한다는 건 매우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서 mp3 플레이어의 사례에서 본 것과 비슷하게 음원에 복사방지장치(워터마크 Watermark, 핑거프린팅 Fingerprinting 등)을 넣는 것도 허점이 많다. 또한 냅스터의 입장에서는 폐쇄를 막기 위해서라도 유료화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음악산업계의 입장에서도 온라인 시장에서의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냅스터를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실제로 2000년 10월 5대 메이저 음악기업의 하나인 BMG는 저작권자에게 매출액의 일부를 지급하는 유료 가입 모델 개발을 위해 6천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한 바 있다. 냅스터측은 7월부터 사용자들에게 매월 3달러에서 10달러 사이의 요금을 부과할 것이며 향후 5년간 10억 달러의 로열티를 지급하겠다고 다른 음악기업에도 제안한 상태다. 그 대신 자사 네트워크에 확실한 보안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불법복제 행위를 방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유료 서비스로의 전환을 통한 수익모델의 창출은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냅스터의 기존 이용자들이 사용료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료화에 반발하여 냅스터 이외의 다른 무료 서비스를 찾아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가지 전제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냅스터의 유료 파일 전송 모델은 실패할 공산이 크다.

두 번째 가능성은 냅스터와는 상이한 방식의 파일전송 프로그램으로 사용자들이 이동하는 현상일 것이다. 냅스터가 '불법'으로 판명된 이상 동일한 방식을 취하는 모델은 냅스터와 동일한 상황에 처할 것이므로(항소심 판결이 나온 3월 12일 다른 경쟁사들(Real Network, MP3.com, Liquid Audio, eMusic.com)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했다). 냅스터가 얼마나 이용자들을 유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단 그누텔라(Gnutella)나 프리넷(Freenet)같은 중앙 서버를 거치지 않는 방식은 현재의 통신시설로는 사용에 불편이 많다. 냅스터는 모든 사용자들을 냅스터의 중앙 서버를 매개로 연결시키는 방식, 즉 'A - 중앙서버 - B'의 모델이다. 반면 그누텔라의 경우 중앙 서버 없이 사용자들을 직접 연결시키는 방식이다. 즉 A - B - C - A의 모델이다. 이 경우 효과는 상반된다. A가 B를 거쳐 C의 파일을 내려 받을 때 B가 저속 통신망을 사용하고 있다면 전송 속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 경우 음악산업은 '해적'이 누군지도 모르게 되고 이에 대해서는 '단속'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수용자들은 P2P 방식의 전송 모델은 편리성(냅스터의 경우)과 안전성(그누텔라의 경우) 사이에서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전자는 유료화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반면, 후자는 기본적으로 무료라는 특징을 유지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전자의 경우를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산업으로 육성할 것이냐, 불법 복제라는 원론을 내세우면서 금지시킬 것이냐의 양자택일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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